[찬샘통신 261/1004]‘혼불’ 누님이 다녀가다
명절이기에, 명절이랍시고 인사차 6km쯤 떨어진 인근(오수면 방축리)에 사는 ‘큰누님’이 다녀갔다. 추석연휴끝 주말이라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줄 알고 온 것인데, 복지관에 가셔서 만나지 못했다. 메밀묵을 정성스레 쑤어 투깔스럽게 많이도 가져오셨다. 우리 부모에게 친딸처럼 살갑게 잘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언제나 황감한 일이다. 그제는 광주에 사는 ‘막내딸’이 바라바리 싸갖고 인사를 왔는데, 명절은 명절인 모양이다. 이 딸도 <인간극장>으로 인해 맺어진 우리 부모의 수양딸이다. 글안히도(그렇지 않아도) 딸이 셋이나 있는데, 맨 위와 맨 아래 ‘두 딸’이 더 있는 우리 부모는 ‘딸 부자’이다. 지난해 어머니 돌아가시자 장지까지 부부가 오셔서 슬퍼하셨다. 시골에서 사시며 부의금을 너무나 과분하게 내놓아 놀라기도 했었다.
이 누님, 우리 나이로 일흔 하나. 나와 의남매가 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신가? 남원시 별정직 공무원으로 사매면에 있는 혼불문학관 해설사이셨다. 2002년이었을까, 해설을 듣고 명함을 교환한 게 시작이었다. 연말께 날라온 두툼한 편지 한 장, 한지에 붓펜으로 쓴 장문의 편지에 ‘한 감동’했다. 이후 수년간 편지와 메일이 오가며 정이 들었다. 필명이 ‘아침햇살’이었다. 햇살처럼 따사로운 여인이 보내온 편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젊은 시절 연애편지 못지 않게 소중하다. 그때부터 우리 부모를 친부모처럼 따르고, 오가고, 안부전화도 친자식들보다 더 자주 했다. 정말 그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위로 형만 셋이 있는 게 자랄 때 불만이었다. 누나가 있었으면 소원했는데, 그 소원이 대번에 풀린 것이다.
가방끈이 짧은 게 한스럽다며 소싯 적부터 책읽기를 유난히 뻗쳤다고 한다. 변변한 혼수도 없이 시집오면서 책만 몇 보따리 싸가지고 왔다던가. 중학생 아들 학교에 갔다가 교장실에 있던 대하예술소설인 최명희의 『혼불』 12권에 필이 꽂혔다던가. 『혼불』과의 만남은 운명이었을 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빌려보며 통독을 하여 장면이면 장면, 대사면 대사를 줄줄줄 꿸 정도가 되었다한다. 남도에는 『태백산맥』을 수십 번 읽어 내용을 환하게 꿰고 있는 공무원이 해설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남도에 『태백산맥』 해설사가 있으니, 북도에 『혼불』 해설사가 있는 건 어쩌면 필연必然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남원시에서 ‘혼불문학관’을 지으면서 시골 촌부村婦를 해설사로 특채했다. 더 경이로운 일은, 인근에 전라선(익산∼여수) 간이역으로‘서도書道역’이 있었는데, 전라선을 옮기면서 철거한다는 소식에 ‘1인 반대시위’에 나섰다. ‘혼불’무대 중의 하나인 서도역을 없애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결사반대, 오직 뚝심 하나로 철도청의 방침을 없던 일로 만들고, 서도역을 지켜냈다.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을 만나면 우리는 하다못해 박수라도 힘껏 쳐줘야 한다.
하여,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큰누님이다. 세월이 제법 되었으므로, 여동생 셋도, 나의 아내도 언니, 형님으로 호칭이 자연스럽다. 나라에서 치러준 우리 부모 회혼례回婚禮때 축시를 낭송해준 고마운 누님은 바빠도 너무 바쁘다. 자형이 20년도 넘게 했다는 동네이장직까지 떠맡고, 잔손질 많은 담배농사까지 짓느라 허리 펼 날이 없다. 문학관에 큰 손님들이 견학을 보면 은퇴한 해설사를 초빙한다. 누님만큼 『혼불』을 꿰뚫고 있는 분이 조선천지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명절때마다 유과와 백산까지 만들어 가져오신다. 천상 ‘조선의 어머니’상이다. 자형(남편)이 전주이씨 효령공파 종손이니, 당연히 종부이다. 그 많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이제 초로初老 여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어쩐지 슬프기도 하고 짜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누님, 고맙소이-. 만원 한 장도 아끼는 분이 택시를 대절하여 아버지께 명절인사를 온 큰누님의 건강과 건안을 빌 뿐이다.
첫댓글 나이들면 형제 자매도 멀어지고 이웃 사촌이 더 가까워 진다는데
친구는 덤으로 동생까지 생겼으니 복 터졌네ᆞ
오래 오래 좋은 관계 유지하길 빌어봅니다.
오늘은 코로나로 한주일을 강제로 문을 잠그었다가 성당미사에 참석하니 연휴중이라 그런지 성당도 썰렁하지만 조용하여 기도하기 딱 좋네요
조선팔도 모든 친구들 위하여 안녕과 화합과 코로나 종식을 위하여 기도하며 아침인사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주소서
따르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