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당도한 봄날은 부산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뜸을 들이던 봄 꽃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앞다퉈 피어나고 있습니다.
동요 가사처럼 여기를 보아도 울긋! 저기를 보아도 불긋!
삼천리 방방곡곡이 지금 꽃대궐입니다.
인간이 그리워하고 욕망하는 대상은 늘 유한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사랑하는 이, 무한히 늘리고 싶은 목숨.....
유한할수록 욕망은 커집니다.
신선한 공기와 푸른 숲, 맑은 물과 지천에 널린 꽃과 나무와 새,
그리고 해가 바뀌고 달이 가면 찾아오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은 무한한 것인양 여겨져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올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워서였는지 올 봄은 그만 욕망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찌감치 화려한 꽃을 잉태하고 있던 나무들은 심술궂은 겨울의 몽니에 애를 태우다
가혹한 산고를 겪고서야 옥동자를 난산했습니다.
달걀보다 더 매끄러운 목련, 노란 햇병아리 같은 개나리꽃, 조선족 처녀의 볼같은 진달래,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벚꽃, 진한 향기를 내뿜는 수수꽃다리(라일락).....
이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한꺼번에 불꽃놀이처럼 파열하는 봄날입니다.
법정스님은 봄에 피는 꽃을 '대지의 웃음'이라 하셨습니다.
겨우내 꿈꾸었던 대지가 붉게 노랗게 하얗게 소리없는 미소를 머금은 밤,
서울 이태원의 용산구청 '미르홀'에서는
어울림의 노래가 대지의 '한바탕 웃음'으로 피어났습니다.
'용비어울가! ' 장장 세시간 여에 걸쳐 펼쳐진 연주회는,
25주년을 맞은 어울림의 태동에서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을 모두 보여준
어울림 공연의 결정판이었습니다.
타악기 그룹 '타루'의 흥겨운 사물놀이로 새 봄을 활짝 열어젖힌 연주회는
어울림 창단 멤버였던 중견 국악인들의 중후한 연주로 이어졌습니다.
역시 대가들의 연주는 그윽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선율에 실려 나오는 우리 가락은 한층 곰삭아 깊은 맛이 있었고,
김일륜 교수께서 불러주신 '풀꽃의 노래'와 '검정 고무신' 같은 이병욱 선생님의 명곡도 격조를 더했습니다.
현재의 어울림 멤버들이 이어간 공연에서도 '모짜르트를 위한 아라리'와 '해금 기타 장구를 위한 우리가락 환상곡,
'능소화'같은 어울림의 간판곡이 쏟아졌습니다.
이어 이병욱 선생님께서 새롭게 옷을 입힌 '신사철가'와
황천수 선생님의 매혹적인 색소폰과 어우러진 '신한오백년'으로 화려한 공연1부의 막이 내렸습니다
어울림의 발자취 25년을 압축한 동영상에 이어 이영섭님이 이끌고 있는 젋은 퓨전 국악그룹 바이날로그의 환상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무대가 2부의 문을 열었습니다.
새삼 어울림이 25년 전 뿌려놓은 국악 현대화의 씨앗이 어떻게 발아하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또 열매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흐뭇한 연주였습니다.
이어 등장한 국민가수! 장사익님의 혼을 담은 노래 '찔레꽃'과 '봄비', 그리고 앵콜로 들려주신 '봄날은 간다'는
그렇지 않아도 꽃향기과 풀잎에 촉촉해지는 관객들의 가슴을 흥건히 적셔 주었습니다.
시간은 밤 열시를 넘었지만, 차마고도 유목민의 엄숙하고도 가슴아픈 삶과 죽음을 담은 '얄룽장보강'
'북청사자의 퉁소 가락에 의한 새곡', '이땅이 좋아라'로 어울림의 흥은 이어졌고 봄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번 공연을 맞아 김병준 작가님께서 특별히 지어주신 글에 이병욱 선생님이 곡을 붙이신
'용비어울가'는 이번 공연의 화룡점정이었습니다.
25주년을 맞은 어울림의 비전과 희망을 담은 '용비어울가'는 황세희 명창과 이병욱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새내기 제자들의 코러스에 얹혀 황룡이 승천하듯 훨훨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이땅이 좋아라' 노래가 울려퍼질 때는, 서예가 중리 하상호 선생님께서 멋진 서예 퍼포먼스로
봄밤의 흥겨움을 보태주셨습니다.
'악화민성 (樂和民聲)'
중국의 서경에 나오는 이 글귀대로 '음악으로 서로 화합하는 백성의 소리'는 바로 이 시대
어울림이 하고 있고 또 해 나가야 할 사명을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어김없이 이무성 화백님의 빼어난 배경 그림은 한층 공연의 품격을 높였고,
이영하 교수님의 매끄러운 사회도 공연과 공연 사이를 아리랑 고개 넘어가듯 부드럽게 넘겨주셨습니다.
이교수님은 특히 '마리소리골 예술원 건립 기금'을 현장에서 이병욱 선생님에게 전달해
어울림에 큰 격려를 해 셨습니다.
신미경 무용단의 우아한 춤사위도 어울림의 연주를 한층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 가슴벅찬 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연출해신 분은 뮤지컬 계에서 우뚝 서신 유희성 선생님이셨습니다.
현재 '달고나'라는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시는 중에도 기꺼이 어울림 공연 기획 연출을 맞아 주셔서
공연은 명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8백석이나 되는 객석은 꽉 들어찼고 11시가 돼서야 우리들의 봄날 잔치는 끝났습니다.
'신풀이'에 어 관객들 모두 일어서서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 가락에 봄 밤은 깊어갔고
봄 꽃 향기는 더욱 진동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강원도청 문화예술국장님과 과장님이 먼길 달려와주셨고, 이문원 수당기념관장님,
김종규 국민문화유산신탁이사장님, 박준영 국악방송 사장님도 소중한 걸음 하셔서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세계를 설레게 하는 국악이 정작 안방에서는 푸대접 받는 이 때,
어울림 25주년 생일 잔치는 푸짐했고 감동은 흘러 넘쳤습니다.
이 뜨거운 열기와 성원을 오롯이 음악에 담아 25년 걸어온 길이 그러했듯, 앞으로 50년 아니 영원히
이 땅에 어울림 가락이 울려퍼지길 바랍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함께 하지 못하셨던 모든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께서도 25주년 축하해주시고
또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2012년 4월12일 봄 날의 대지는 꽃으로 미소지었고, 이병욱과 어울림의 신명나는 연주로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 꽃들과 함께 우리들도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 여의도에서 어울사랑 위원장 임병걸 謹拜 -
첫댓글 장서를 읽고나니 소리는 그날 들었으니까 그감동 그웅장함이 그대로 다시한번 본것처럼 골을 때리는군요.우리 위원장님 대단하십니다.이런분이계셔 어울사랑은 앞으로 급속도로 발전하리라 믿고 항상 고맙고 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어울림이 오늘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 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장님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한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글을 읽고 보니, 그날 공연에 참여했던 분들뿐아니라 장시간 객석을 지켜주셨던 관객분들 그리고 안보이는 곳에서 어울림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계심에 성황리에 공연을 마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낌없는 격려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중리 하상호 선생님의 글귀를 가슴에 새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전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감동을 어찌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임병걸 위원장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