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셋째주 메시지 놋뱀처럼 장대에 달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3장 문제 2부 놋뱀처럼 장대에 달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3장 9-15
요절 요한복음 3장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는 교만과 불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에게 야곱이 이스라엘로 어떻게 거듭났는지 가르쳐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위하여 놋뱀처럼 장대에 달리신 것을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거듭나는 두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손을 들고 항복해야 합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거듭남은 십자가와 성령으로 되는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먼저 성령께서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셔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남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묻습니다. 거듭남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런 거듭남의 초보적인 진리를 모른다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어떻게 이스라엘로 거듭났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듭난 후에 하나님께 받은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듭나기 전에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니고데모처럼 관심이 명예와 사랑과 돈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먼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고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형을 피해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 있으면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비롯한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6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금의환향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의 자녀 아내 재산 명예가 죽음 앞에서 아무 쓸데없었습니다. 그는 심히 두려움과 답답함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선물을 보내고 말씀을 잡고 기도하고 여차하면 도망하려고 자기 혼자만 얍복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두려워서 그 밤에 하나님께 처음으로 단독자로 나가서 기도의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강한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고관절을 치셨습니다. 이제는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려 울며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 써랜더 곧 항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손을 들고 항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항복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너의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는 야곱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야곱은 과거 이삭의 복을 받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왔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기도의 응답받은 자,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는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의 황태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주인 되는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야곱은 이스라엘로 거듭난 사건입니다.
그때 날이 밝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도 해가 돋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에서가 자신을 죽이는 살인자로 보였으나 이제는 에서가 하나님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난 자는 세상이 밝아집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자 세상이 하나님 나라로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난 것처럼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야곱과 많이 닮았지만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지만 거듭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몸만 이스라엘이고 마음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육신의 할례를 하였지만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은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마치 장로나 신학교수나 목사가 거듭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실제 종교지도자 가운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그가 왜 예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는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나라보다 세상 나라에 소망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헛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거듭나기 전 야곱처럼 세상을 사랑하였고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려면 나의 힘으로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해야 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생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인간성이 강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죽음 앞에서 세상의 모든 소유가 아무 쓸데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자신이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은 죽음을 맞닥뜨릴 때 이런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극한 어려움에 처할 때 회개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파블로 스타오 선교사는 스페인 대사를 지낸 능력자입니다. 그는 큰 교통사고로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은 후에 세상 부귀영가 쓸데없고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거듭났습니다. 이어령 박사는 초대문화부 장관을 지낸 석학입니다. 그는 딸 이민아가 실명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지식이 아무쓸데 없음을 깨닫고 항복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정근모 장관은 사울대를 3년에 졸업하고 과기부 장관을 하신 분입니다. 그는 아들의 중병 앞에서 자신의 지식이 쓸데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환도뼈가 부러지기 전에 항복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다.
(2) 거듭남을 알아야 부활도 알 수 있습니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땅의 일은 땅에서 일어나는 거듭나는 일입니다. 거듭남은 영의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목동선서하신 분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다 이해합니다.
우리가 거듭남의 땅의 일을 이해해야 하늘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 일은 우리가 죽은 후에나 예수님이 재림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날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갑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불 못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도 않은 니고데모에게 하늘 일을 말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가 땅에서 거듭나 하늘 일을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분은 하나님나라를 얼마나 아십니까? 이차대전때 독일 병사와 영국 병사가 싸우다 동시에 죽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씨에스루이스는 둘이 안고 허허 웃었다고 합니다. 그들인 천국에서 생각하니 지상에서 싸움이 우습게 보였다고 합니다. 월드컵에서는 이긴 팀은 기뻐서 환호하고 진 팀은 슬퍼서 웁니다. 진팀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고 이긴 팀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이긴 사람도 웃고 진 사람도 웃습니다. 저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제가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찬양의 은사가 없어 찬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면 마음껏 찬양할 수 있습니다. 너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곳은 잘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담이의 고통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말할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를 위로해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고통을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한 눈물을 다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천국을 니고데모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자신이 달리실 것을 가르치십니다.
(3)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거듭나지 않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그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당신도 들리신다고 하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백성은 출애굽할 때 에돔 땅을 통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돔 사람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돌아서 나갔습니다. 돌아가는 그 길은 돌이 많고 모래 바람이 불어오는 길입니다. 좌우에는 절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이 험하다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뱀에 물리자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치료의 방법을 말씀하여주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놋뱀을 보면 누구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놋뱀의 주형을 만들고 놋을 부어서 만들어야 합니다. 놋뱀을 보면 산다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순종하여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워서 놋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서 놋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놋뱀을 보았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만 보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놋뱀을 본 자는 다 살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의 뱀에 물린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교만과 탐심과 불신의 뱀에 물린 자들입니다. 음란과 원망과 이기심의 뱀에 물린 자들입니다. 우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죽음의 독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서 놋뱀을 장대에 달게 하셨습니다. 뱀은 사탄을 말하고 놋뱀은 심판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게 하셔서 사탄을 심판하셨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 하여 저주 받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대신 심판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습니다. 죽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영생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집에서 믿어도 되고 예배당에서 믿어도 됩니다. 길에서 믿어도 되고 학교나 직장에서 믿어도 됩니다. 누구든 어디서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믿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결론)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놋뱀처럼 장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온 지구의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높이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항복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재산과 가족과 지혜와 능력이 죽음 앞에서 아무 쓸데 없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내 대신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여기에는 박사학위도 돈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3장 강해 2부 놋뱀처럼 장대에 달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3장 9-15
요절 요한복음 3장 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한복음 3장 강해 이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