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 한자 공부를 도와주러 딸네 집에 갔다. 꽤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몸이 아파서 한동안 못 갔다. 사위는 출타 중인지 안 보인다.
그놈의 공부에 찌들렸 지 외손녀는 곤하게 자고 있다.
늦잠을 자던 딸은 일찍 와서 잠을 깼다고 투덜거린다.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일이 한 두 번이랴!
사위는 매운 갈비찜을 사러 신촌까지 갔단다. 목동에서 신촌은 꽤나 먼 거리다.
아마 나 때문에 간 모양이다. 내가 두어 달 건강에 죽을 쑤고 있다.
늙어가는 티를 내는 모양이다. 요 몇 달 사이에 꿀꿀하고 꿉꿉한 일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추돌 교통사고 2번, 화상 2번, 발목 염좌 1번, 소화가 기관병이 연달아 나고….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하더니…. 그 바람에 지레 짐작 매꾸러기 속에 심신이
많이 지쳤다. 거기다가 구들장 신세니, 코로나 19로 꿉꿉하고 꿀꿀함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니까 나 먹이려고 유명한 식당의 매운 갈비찜을 사러 간 모양이다. 어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내일 회 먹을 거야!”, “내가 설사기가 있어 회는 그렇다.”
매운 갈비찜은 매우 깔끔한 맛이 있다. 그것도 나 때문에 제일 맵지 않은 것을 주문한
것이라 한다. 그래도 나에겐 매웠지만 뒷맛이 개운했다. 오늘도 딸이 으레 하는 말
“아빠, 이런 딸 없지?”
병원을 주살나게 들랑거리다 보니, 이제 남은 생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개 밝지를 않다. 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이 순간들을
지나기 때문인가 보다.
진료과 앞에서 오늘도 순서를 기다린다. 앞 책꽂이에 ‘연명의료 결정제도’라는
팜프렛이 있다. 부제는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떤 것인가요?“이다.
한국의 현실은 죽음에 임박해서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곳은 요양원이 대세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한다. 우리 딸이 선언했다. ”아빠 엄마, 치매에 걸리면 무조건
요양원에 넣을 거야!“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해볼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대개 마지막 순간은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때가 다번사이다;
그때면 내 의지를 반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전에 몸이 심하게 아팠을 때,
그저 75세쯤 살았으면 했다. 이제 삶의 욕심이 생겨서 그런지 건강나이 85세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딸은 가끔 “아빠 75세까지만 산다더니 왜 안 죽어!”
유구무언이다. 어느 누구의 소망이듯이 그저 어느 날 잠자듯이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그게 어디 엿장수 맘대로 되겠는가.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앓증을 많이 한 나는 그저 아프지 말고 죽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아빠, 엄마는 죽을 준비 다 했잖아?” / “그야, 그렇지.”
납골당 합장 묏자리를 계약하고, 상조회 두 군데 들어놨으니 그런 셈이다.
한번은 큰 처남 관을 내가 든 적이 있다. 머리가 하연 7080 노인네가….
더구나 평일이라 관을 운구(運柩)할 청년이나 아들 친구가 부족했다.
그래서 딸에게 부탁했다. 내가 죽으면 관을 들어줄 젊은 친구 6명을 미리 확보해
놓으라고.
딸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빠, 걱정을 하지 마. 아주 끌밋하게 잘 생긴 청년
여섯 명으로 관을 들게 할 테니, 상조회사에 부탁하면 쌔고 쌨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외아들 하나만 둔 가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으면
관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까 봐 지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들보고 적어도
친한 친구 여섯 명을 확보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 6명을 가끔 불러다 잘 대접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딸의 말대로 죽을 일만 남은 것 같다. 죽기 전에 할 일이 조금 남기도 하고….
“아빠, 엄마, 죽기 전에 할 일이 뭔지 알아?”,/ “내 몫은 챙겨주고 가야 해!” 우리 부부가
사는 작은 아파트 한 채와 두 양주 쥐꼬리 만한 장례비용만 남아있다.
어찌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 부부가 죽어서 갈 합장 납골당 준비, 상조회사
두 군데 가입. 우리 부부 죽으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자.
이제 마지막 준비는 ‘사전 연명의료 지향서’을 작성 확인하고 유언을 미리 하는 것이다.
의식도 없는 내 몸에 호스 주렁주렁 달고 주사바늘 이곳저곳 꽂고 싶지 않다.
인명은 재천이다. 이제 유언도 다 정해 놓았다. “고마웠다, 고맙게 살아라!”
우리는 이젠 생의 이별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 발 두 발, 어느 노랫말처럼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란다. 삶의 이별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시한부인생인 셈이다.
다만 이승의 삶의 길이만 다를 뿐. 시한부인생은 죽음 직전의 것만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시한부인생이다. 사전연명의료지향서를 작성하고 확인 받을 수 있는
병원 중에 하나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도 해당된다. 우리 부부의 단골 병원이다.
또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곳도 인천성모병원이다.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시술은 심폐소생술,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혈압상승제 투여, 기타 등이다.
또 무늬만 천주교 신자지만 천주교식으로 장례미사를 할 것이고, 기일 때마다 연미사를
넣어달라고 할 것이다. 아니, 미리 연미사를 봉헌하고 갈 수도 있겠다. 특히 이 부분은
골수 천주교 신자인 집사람이 그렇게도 원하는 부분이다. 죽어서 산 자들의 기도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 성당에 있는 납골당인 봉안당을 계약했다. 봉안당 비용은 딸과 우리가
반반씩 댔다. 우리가 딸을 꼬셨다. 우리가 죽으면 천상 네가 치다꺼리를 하야 하는데,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너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딸은 두 말 않고 선선히 승낙했다.
우리 아파트 베란다 앞, 소나무에서는 까치가 울고,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귄다.
혹 가다 청설모가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솔바람이 불고, 송홧가루가 날리기도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란다.
오늘은 남은 내 생애의 첫날이란다. 또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날의 첫날이란다.
살아온 기적인 살아갈 기적을 만든다고 한다. 그저 우리는 오늘을 살 뿐이다.
오늘,‘건행하자’. 건강하게 행복하자. “잘 살아보세!”
오늘, 강화 갑곶성지 기념성당에 다녀왔다. 소풍가는 마음으로 김밥을 사고,
커피를 준비하고, 디저트도 가지고 다녀왔다. 그곳에 우리 부부의 합장 묏자리인
봉안당 ‘천국의 문’이 있기 때문이다.
옛 나이 든 어르신들은 묏자리 준비하고, 삼베로 수의 미리 마련하여 장롱에 넣어두고,
꽃상여 타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소원이었다. 이곳은 명당자리다.
근처에는 성인(聖人)의 묘가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했다. 뒤에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자라는 산이 있고, 앞에는 서해바다가 보인다. 꽃상여 대신 리무진 타고 간단다.
여덟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꽃상여 타고 고향 산천 길 밟아가던 생각이 난다.
시인 천상병의 「귀천(歸天)」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그저 앉은자리가 꽃자리이니라’ 구상 시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부부도 이 세상에 소풍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