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1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4장 1절 – 14절 –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생수와 그것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벌써 주말의 아침을 맞이하며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쏘아 놓은 화살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는 것은 주 안에 거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어리석은 자처럼 살지 않게 하시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주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또한 그 뜻 가운데 순종하게 하사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주 안에 거하는 삶은 시간을 뛰어 넘어 영원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품 안에서 세상을 이기고 참 지혜자로 사는 은혜를 오늘도 경험케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본문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세례 요한 보다 많아진 것을 바리새인들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피해 유대에서 갈릴리로 사역 장소를 이동하신다.
여기서 중간의 삽입구로 세례를 준 것이 예수님이 아닌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는 사도 요한이 당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제자로 오해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독자적 가르침의 결과로 제자들이 세례를 준 것을 밝히고 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베레아의 먼 길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는데 예수님은 가장 빠른 사마리아를 통과하며 한 여인을 만나신다.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시며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에 잠시 쉬게 되셨다.
그때를 요한은 6시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의 시간으로 낮 12시를 의미한다.
이때 사마리아 여자 한 명이 물을 길러 왔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신다.
예수님이 친히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이유는 당시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동내에 들어가서 제자들이 없었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이 유대인으로써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님을 밝히며 놀라는 태도로 예수님의 의도를 질문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여겼고 또한 랍비가 여인과 대화하는 것은 당시 랍비의 명성에 치명적인 불명예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에 금기시 했던 일이었다.
이때 예수님은 여인이 모르고 있는 2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두 번째는 대화하는 이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지적하신다.
하나님의 선물은 문맥으로 보아 생수를 의미하며 대화하는 이는 그리스도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이 깊은 우물물을 퍼 올릴 그릇이 없는데 어떻게 생수를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함으로써 예수님이 말하는 영적인 생수를 육신의 물로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마리아인은 야곱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믿고 있었으며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여인은 예수님이 야곱보다 큰 자가 아니라고 확신했었다.
이에 예수님은 육신의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게 되지만 자신이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이 됨을 선포하신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마찰을 피해서 갈릴리로 이동하시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지나치지 않는 사마리아를 통해 갈릴리로 향하게 되신다.
예수님은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러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마을에 들어갔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나오게 되었고 그와 대화하신다.
유대인의 일반적 가치관으로는 여인과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랍비에게는 그 명성에 치명적 불명예를 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평가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에 더 큰 관심과 초점을 두셨으며 이에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고 영생을 얻는 일을 깨닫게 해주신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것에 관심을 두며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음이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자신들이 야곱이 살던 곳에 살고 있음이 자부심이었으며 자신들이 비록 혼혈족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야곱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처럼 취급되었고 하나님의 영적 진리에 대해서도 무지한 가운데 있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만족을 삼고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할수록 사람은 가치 없는 삶을 살게 되며 제한적 상황으로 인한 갈급함과 부족함을 경험한다.
또한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죄와 타협하게 되고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거짓으로 만들고 갈등과 배신, 미움과 분열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세상의 구원을 가져올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우물물이라는 매개체로 대화를 이끌어 가시고 여인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 가치관과 기준을 무너뜨리시고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영적 기준을 가르쳐주신다.
예수님과의 대화는 보이는 세상의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마지막은 늘 하늘의 것을 사모하게 만들고 하늘의 것을 맛보게 함으로서 참 만족을 경험하게 만드신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간 예수를 생각하고 연구하려고 하고 그리스도요 구원자 되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오히려 외면하는 태도를 가진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얻는 데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누리는 삶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의 문제, 노동자의 권익, 정치적인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지만 정작 영혼이 생명으로 살고 주와 교제함으로 하늘의 만족을 누리는 일에는 무지함으로 반응한다.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시 다른 우물을 파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한 남편에게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다른 남편을 구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만이 아닌 과거 예수님 당시에도 동일한 모습 중 하나였다.
마가복음 6장 2절과 3절에서 당시 예수님 고향의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대우한다.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인간 예수, 단순히 눈에 보이는 예수가 아닌 메시야로 오신 예수,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보지 못한 결과는 결국 예수를 배척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고 지옥게 가지 않게 해주는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모습은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게 될 때 생수의 선물을 주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로 영적 만족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다.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적만을 구하던 유대인들은 결국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서 죽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 되게 하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으로써 말씀하신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고 참 만족의 자리로 이끄신다.
오늘도 그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발견하며 영적인 만족과 영생으로 이끄신 은혜에 감사하며 나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지체들도 영생으로 인한 만족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생으로 만족을 주시고 그 안에서 얻는 자유와 기쁨, 감사와 소망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는 마르지 않는 생수이며 영생으로 인도하는 샘물이 됨을 고백합니다.
그 은혜의 샘물을 날마다 누리며 또한 다른 사람도 이 은혜를 누리도록 힘쓰게 하옵소서.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리게 하시고 많은 이들이 그 길을 찾고 함께 걸어가도록 은혜로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에서도 눈에 보이는 세상에 집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능력을 바라보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로 풍성하게 채우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