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 들 만큼 겸손하지 말 것
글 * 김수현
한 에세이 작가가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지 않은 자신이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민망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가의 사전적 의미는 글이나 그림 등의 창작자일 뿐인데도,
십여 권의 책을 내고 두터운 팬 층을 보유한 그녀조차,
작가의 자격 앞에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어느 여행자의 일화가 떠올랐다.
여행자는 유럽 어느 술집에서 한 바텐더를 만났다.
바텐더는 여행자에게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에 여행자가 "당신 이름으로 나온 시집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바텐더는, "아뇨. 시집을 낸 적은 없지만,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죠"
라고 답했다.
왜 누군가는 열 권이 넘는 책을 내고도 작가라 불리는 것을 어색해하고,
다른 누군가는 시집 한 권 없이도
스스로를 당당하게 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개인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건 문화의 차이가 크다.
그 차이는 공교육에서도 보여진다.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생각의 지도》의 저자 리처드 니스벳이 밝히길
그의 고향에서는 교육의 목표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 중 어느 쪽이 더중요한가에 대해
논쟁까지 있었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선 별게 다 논쟁거리다 싶기도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큼 개인의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을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는 관계지향적인 사회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바른 생활〉이라는 과목을 배우며 관계 맺는 법을 가장 먼저 익힌다.
사실 따로 가르칠 것도 없다.
요약하자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지내란 이야기.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도록 교육 받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을 받았다.
영어에는 대응할 단어조차 없는 '눈치' 가 한국인은 유난히 발달한 것도,
서양인이 보기엔 자기비하에 가까운 겸손도 이러한 문화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오랜 수련의 결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하여,
주제파악 못하고 꼴값 떤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고도의 눈치와 겸손을 발휘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자격 앞에서 머뭇거린다.
물론 겸손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도 미덕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드는 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에 있을 뿐이고,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미덕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지칠 만큼 눈치를 볼 필요도,
주눅 들 만큼 겸손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가장 존중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 자신이다.
⊙
약간의 근자감과
어느 정도의 개썅마이웨이 정신이 필요하다!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中에서

2017年 10月01日,日曜日
『55~59p』
♬,,Classical Chillout:Healing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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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의 마음으로 올려주신 좋은글에 머물다감니다
추석연휴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겸손도 지나치면
나를 위해 
조금만 

사랑하는 마음이
많으면 
좋겠네요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