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번째 월요편지 - 45년 전 법대 어느 교수님의 우려
1978년 5월쯤이었을 겁니다. 법대 형법 강의 시간에 김기두 교수님은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군들 중에 혹시 돈과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법조인이 되지 마라."
당시는 서울 법대생 183명 중 182명이 남학생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돈과 여자를 좋아해서 법대에 왔는데요.'라고 키득거렸습니다. 45년이 흘렀지만 교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법학은 어떤 학문일까요?
칼 막스의 스승인 독일 철학자 포이에르바하는 대학 시절, 법학자인 아버지 포이에르바하(1775-1833)로부터 이런 취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철학을 좋아해 20살에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단다. 그러나 곧 너의 엄마와 결혼을 하고 너희 형을 임신하였지. 가난한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빵이 필요하였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빵을 위한 학문'인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단다. 그러나 너는 공부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
다음은 서울대 최종고 교수님의 법학통론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법학자 구스타프 라드부르흐(1878-1949)는 법대 학생을 관찰하면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지망해 온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법언 “유스티니아누스가 명예를 준다”(Dat Justinianus Honored!)는 유혹에 끌려 ‘빵을 위한 학문’으로 법학을 선택한 자들이다.
두 번째는 지식만 발달하고 인격성이 부족한 젊은이들이다. 중고등학교 때 우등생들로서 부모 권유에 따라 법대가 좋다고 하니까, 들어온 자들이다.
세 번째는 강렬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에 기울어지면서도, 외부 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고 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수 있다."
저는 아버님의 권유로 법대를 지망한 타입이니 두 번째입니다.
대한민국의 법학자와 법률가 중에 세 번째 타입이 많아야 법조계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나 두 번째 타입이 많아지면 법조계는 국가와 사회에 부담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제가 사법연수원 부원장 시절 자문을 해주었던 법조 드라마가 있습니다. <신의 저울>입니다. 당시 법조 드라마가 법조계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제가 작정을 하고 작가와 많은 시간 대화를 하여 법조 현실을 알려 주고 작가와 연수생이 같이 생활하게 허락도 해 준 작품입니다.
그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사법연수원 첫날 교수 두 분이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합니다.
"예전에는 사법시험을 합격하면 돈, 명예, 권력을 다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갔지.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한 가지라도 제대로 가지려면 최선을 다하시오."
"앞으로 여러분들이 배울 기술은 아주 위험하고 파괴적인 기술입니다.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고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기업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중에는 그 기술을 본인의 성공과 출세만을 위해 사용하는 돌팔이 법조인이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한 많은 법조인들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돌팔이 법조인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45년 전 김기두 교수님이 갈파하신 "돈과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법조인이 되지 마라."라는 말씀이 너무나도 정확한 말씀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법대 출신 저명인사들이 돈과 여자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아직도 현재형입니다. 이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법조인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법대에 들어가 처음 배운 단어가 <정의>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법언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의미를 세상의 정의를 세우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법조인으로 살아보니 세상에 정의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 안에 정의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사법부는 물론이고 행정부에도 법대출신이 다수 기용되어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용 될 것입니다. 아울러 입법부에도 법대출신이 많이 진출해 있고 앞으로도 진출할 것입니다.
법대 전성시대입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까요? 법조인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었다고 평가할까요?
대한민국을 이끄는 법조인들은 모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 안에 과연 정의가 세워져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45년 전 김기두 교수님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법조인이 되기는 쉬워도 법조인답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5.22.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