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6. 주일
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끝까지 위로의 자리를 지키는 자인가?" 욥기 11장
나는 순회 설교자이기 때문에 한국 나오면 여러 다른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를 한다.
초청을 받으면 보통 내가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설교는 몇 분 하면 되나요?"라는 것이다. 주일 설교는 보통 30분에서 길면 40분 부탁을 받고 금요집회나 수요집회는 50분이나 60분 부탁을 받는다. 세미나는 90분가량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목감기로 엄청 목도 아프고 기침도 나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등등등... 이러한 상황에서 연속 나는 하루에 2시간가량 연달아 설교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천보산 기도원은 한 시간 하고 좀 쉰 다음 또 한 시간을 했지만 어제 반월중앙교회에서는 2시간을 거의 연달아 세미나를 했다.
나는 90분까지는 연달아 설교해도 2시간은 사실 조금 힘들어한다.
그런데 어제는 거의 2시간을 연달아 강의를 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다. 오늘 내가 이 강의를 마지막으로 마치고 하늘나라로 간다고 해도 후회(?) 안 할 만큼 열심히 한 것 같다.
같은 여자 사역자로서 나랑 송정미 사모가 친하다.
송정미 사모가 나에게 가르쳐 준 좋은 태도가 있다.
송정미 사모는 매 찬양집회를 그 찬양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찬양집회를 한다고 나에게 말해 준 적이 있다. 그래서 자기는 찬양하다가 죽고 싶다고 했고 나는 설교하다가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송정미 사모처럼 설교할 때에 "이것이 내 마지막 설교일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안 한 것 같다.
나는 설교 하는 것을 무척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내가 하는 설교에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야 한다더거나.. 그런 생각이 별로 없다.
ㅎㅎ
물론 기도는 부탁해 놓고 나도 기도하지 왜 안 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아직도(?) 주님이 나에게 이러한 일을 맡겨 준 것을 신기(?)해 한다.
사람들이 내가 한 설교에 은혜 받았고 변화 받았다고 여러 간증을 해 주면 내가 신기(?)해 한다.
우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지?
요즘은 집회 다니면 나 만나기를 기도했다고 말하면서 내 손 한번 잡아 봐도 되냐고 하면서 감동해 하는 분들을 만난다.
어떤 분들은 내가 나중에 묵상 보내 준다고 전화번호 달라고 하면 전화번호 주면서 막 떨린다고 한다. ㅎㅎ
넘 귀엽다 그런 분들!!
나는 나 만나기를 원해서 기도했다는 분들이 감동이다. 앗? 왜 나 만나기 원하셨을까?
나를 사랑해 주는 한 분 한 분을 나는 "당연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앞으로도 평생 그러한 일이 나에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 않기를 원한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고 내 글 읽고 내 설교 듣고 주님이 더 가까와졌다는 모든 분들이 모두 고맙다.
어제는 두 시간가량 강의 마치고 집에 오는데 기침이 시작되었다. 강의할 때 기침 안 났던 것이 너무 감사!!
집에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기침이 시작 ㅎㅎㅎ
정말 사시겠다 사시겠어!
감기는 약 먹으면 1주일이요! 안 먹으면 7일이 걸린다더니 ㅎㅎ 온갖 약을 다 먹은 것 같은데 아직 감기는 완전 낫지 않았다.
오늘은 주일... 주일 설교는 길어도 40분가량 하면 되니까 어제보다 좀 낫다 ㅎㅎㅎ
어제는 내가 요즘 계속 이렇게 아프다 보니 갑자기 바울 사도가 생각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기도로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병은 낫지 않았고 또 그의 측근의 사람은 병이 들어서 어디 두고 왔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가까운 사람의 병 역시 그의 기도는 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감옥에 혼자 있으면서 추위에 떨었고 그랬기에 디모데에게 두꺼운 겉옷을 갖고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가 죽은 나이는 61세나 62세로 추정된다.
내 나이 만으로 60세이니 지금 딱 바울 사도가 천국으로 간 그 나이라고 하겠다.
그는 교수형을 당하면서 순교를 했다.
나는 나중에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나는 내가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지만 가끔은 내가 어떻게 죽게 될까?? 생각도 한다.
어제는 욥기 공부를 하면서 일본 시대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던 사람들이 받은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고문들이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딱히 고문과 고통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믿음 생활이 해이하고 날이면 날마다 "나" 하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과연 어느 날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하여 고문당하라고 한다면 그것을 감당해 낼 그리스도인은 과연 몇 %가 될까?
우리말 성경 욥기 11장
4. 자네가 ‘내 주장은 순수하고 나는 주가 보시기에 깨끗합니다’ 하는군.
5.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입술을 열어 자네를 치시기를 빌 뿐이네.
욥의 친구 소발이 말을 시작했다.
소발 역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
5절에 보면 아예 저주가 담겨있는 말을 내뱉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소발은 지금 욥이 받고 있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도 너는 싸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가 지은 죄의 벌로 너가 받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약하다는 것이다. 더 큰 고통을 너는 받아야 정신을 차린다... 이런 이야기이다.
불난 데 부채질하는 말이고
아픈 상처에 초를 뿌리는 경우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당한 고통을 이해는 못 할 망정 너가 받는 고통은 약과다 약과야! 넌 더 크게 고통받아야 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말로 욥의 친구일까?
그런데 이 친구들은 먼 곳에서 와서 1주일을 처음에는 욥과 함께 슬퍼해 준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함께 울어 주었으면 끝까지 함께 울어 주는 친구의 자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나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어떤 이웃일까요?
처음에 잠시 위로하고 얼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일까요?
처음에 함께 하다가 나중에는 함께 했던 위로가 다 무색할 정도로 잔인한 말로 "언어폭력"을 가하는 사람일까요?
조금 도와주었다고 있는 대로 "생색"을 다 내면서 상대편을 고치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그런 사람일까요?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나에게는 어떤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었는지요?
하나님이 기쁘시게 여기는 "위로의 언어와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천안순복음중앙교회 주일 설교라 천안으로 갑니다.
설교할 때 절대 기침 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개역개정 잠언 12장
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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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6. 16.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억만 번 더 들어도 기분이 좋은 말
“사랑하는 나의 아들 ( ) 야
사랑하는 나의 딸 ( ) 야
나는 너의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단다.
나는 오늘도
너를 보고 있으며,
너를 듣고 있으며,
너의 행보와 내가
함께 동행하고 있단다.
힘내거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자가 될지니라.
너는 이 땅에 빛과 소금이요.
여호와 하나님은
너에게 오늘도 해요
방패가 되어 주실 것이니라.
방패라고 함은
내가 막아주겠고, 보호하겠고,
도와주겠고, 무찔러주겠고,
그렇게 너에게 승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한다는 것을
오늘도 명심할지니라.
절대로 낙담하지 말지니라.
환란 날에 낙담하면
원수에게 너의
미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니
사랑하는 나의 딸아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낙담! 절대 금물!
낙담하지 말고
오늘도 오히려
감사의 말을 할지니라.
돌이켜서 감사의 말을 할지니라.
여호와 하나님
역사하는 힘이 크신
여호와 하나님이
감사하는 너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이
그대의 마음에 들려오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힘내시기를.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