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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加智山 ● 소재지 : 울산 울주, 경북 밀양, 경북 청도 ● 높 이 : 1,240m ● 특 징 : 산림청 추천 100대 명산(도립공원) 백두대간 남단의 중심으로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 수량이 풍부한 폭포와 아름다운 소(沼)가 많고, 천연기념물 224호인 얼음골과 도의국사 사리탑인 `8각운당형부도(보물 제369호)'가 보존되어 있는 석남사(石南寺)가 소재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등산로 : 관련사이트 참조 ● 관련사이트 ▲ 한국의산하 : http://www.koreasanha.net/san/gaji.htm ▲ 한국의산천 : http://www.koreasan.com/san-search/san_view_form.php?num=31&p=1&mode=1&keytext=가지산&flag_head= ▲ 오케이마운틴 : http://www.okmountain.com/ ▲ 울주군청 : http://guide.ulsan.go.kr/Common/Detail.neo?id=U0010417 ▲ 밀양시청 : http://tour.miryang.go.kr/01/01_04.php?pT_idx=5 ▲ 영남알프스 : http://www.mtkorea.net/ynalps/mt-kgs.html ●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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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지산 최고의 난코스중의 하나인 북서릉 코스의 암봉
높은 산, 깊은 계곡이 있고, 역사깊은 문화가 있으며 그러면서도 서울-경기일대와는 다른 풍토로 둘러싸인 영남의 깊은 내륙 그곳의 가지산과 운문산이며 운문산 계곡일원은 항상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서울에서는 적어도 2박 3일은 잡아야 가능한 이 산행을 이번에 결행했다. 가지산은 2회에 걸쳐 등반한 적이 있지만 운문산은 아직 등반하지 못해 숙제처럼 남아 있었던 산이다. 이곳의 거찰 운문사는 여승들의 사찰에다 승가대학과 승가대학원이 있어서 한국불교의 한 구심점임이 확실한데다 문화재도 보물급만 4종이나 있어서 더욱 산을 찾고 문화를 맛본다는 여행의 취지에 걸맞았다. 이곳 산행을 위해 충주-월악산-단양-죽령, 경북 내륙지방을 지나 영천-하양-금천-운문을 거쳐 운문사에 도착하는데만 승용차로 8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비 (수원-동대구 9600원)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단독 산행은 집문밖을 나설 때부터 시작된다고 했듯이 자유로움과 나만의 코스를 추구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지산은 이른바 영남 알프스라고 알려진 산군들 중 종주격인 산이다. 운문산은 가지산과 같은 능선에 솟아있으며 아랫재라는 약 800미터높이의 안부가 두산을 가르고 있다. 영남 알프스 일대의 산은 능선은 장대하고 억세고 길어 원경으로 보아도 산세가 호방하고 웅대하며 산괴가 커서 접근로가 길다. 그래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지만 어느 산이든 올라가면 긴 능선을 따라 솟아있는 봉우리들의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가지산에서 능동산을 거쳐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엄청나게 길고 가지산에서 운문산, 억산을 지나는 능선 또한 길어 두 능선이 나란히 달리는 광경은 가지산일대의 산들이 시원한 조망을 제공하는 첫째번 요인이 된다. 그 산세가 주는 등걸의 인상은 지리산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과 유사한 데가 있다. 계곡은 깊고 능선은 하늘에 닿은 듯 높다. 억센 능선과 그 아래 급경사 산사면의 폭과 산록의 각도를 보면 두타산에서 청옥산을 바라볼 때의 급경사 산사면이며 봉우리들과도 닮았다. 가지산 정상에 서면 산은 필요이상으로 크고, 길고, 우람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지산 산행은 언양에서 가까운 석남사에서 시작, 가지산 정상에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능동산, 천황산, 재약산을 연결한뒤 표충사로 내려온 적이 있고, 두 번째는 밀양군 산내면으로 들어와 석남터널을 통과하기전 호박소위쪽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안부에 올라온 뒤 정상으로 와서 운문산쪽 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산내면쪽 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탄 적이 있었다. 필자가 산행의 참맛을 온몸으로 체득한 첫 번째 장거리 산행이 이곳 가지산-천황산을 잇는 꼬박 11시간이 걸린 긴 코스에서 였던만큼 가지산을 다시 찾은 감회가 별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등반의 기회가 없었던 운문산을 넣어 가지산-운문산 등반을 하루에 끝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더니 이번 산행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암초를 만나 결국 두 산을 연결하는데 실패하고 가지산 코스만 끝내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 또다른 성공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지산 정상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가지산에 가면 항상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혹했던 가지산 북서쪽의 거대한 지능선 상의 암봉을 타고 넘었던 것이다.
현재 운문산과 가지산산행을 하려고 해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쪽에서 가지산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98년 12월말까지 휴식년제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야영은 물론 입산금지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운문사뒷문 부근에 경비실이 있어 들어가는 등산객을 체크한다. 계곡을 오염시키거나 수목을 벌채하거나 아니면 귀중한 산야초를 채취하는 등 산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순수 등산인까지 이 제도에 묶여 자유로운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리암 주차장 위쪽으로도 경사진 데가 별로 없어 개울을 건너면 차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길고 넓다. 특히 심심계곡은 계곡 절반이상을 차로 올라갈 수 있고 놀기 좋은 포인트도 많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런 차들일 것으로 추측된다. 천렵이다, 뭐다하여 계곡 고기의 씨를 말리는 등 엉망으로 만들고 야영을 할 경우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기도 하며 이들은 차에 먹을 것, 취사용구를 잔뜩 싣고 들어오는 사람들이라 쓰레기 배출량도 엄청나다. 실어온 석쇠로 숲안을 불고기 냄새로 채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휴식년제는 운문사쪽에 국한해 실시중인데 밀양시 산내면에서 석골사 골짜기로 넘어오는 사람은 문제삼지 않는 모양이다. 사리암아래 주차장에 와서 내일 산행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대학생둘이 30킬로그램은 될 듯한 커다란 배낭을 지고 나타난다. 이들과 금방 친해져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밤의 운문계곡 하늘은 반짝이는 별이 천장을 이루고 밤에도 불야성처럼 불이 켜져 있는 사리암이 있는 산은 한쪽 벽, 천문지골과 심심계곡 사이의 능선은 또다른 벽이 되어 우리는 조금 큰 방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별빛 천장의 라이트는 결코 어둡지 않았다. 다음날(14일)새벽 5시에 가지산을 향해 출발했다.
심심계곡을 지나 운문학심이골로 들어서니 날이 새기 시작한다. 학심이 골로 들어서기 전에 민가가 나오는데 민가를 지나 평탄한 길로 계속 가면 산행은 허탕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길은 고개넘어 운문면 신원리로 빠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계곡을 따라올라가면(계곡 오른쪽으로 좋은 길이 있다)높지 않은 폭포 쌍폭이 나오고 계곡경치도 좋아진다. 곧 큰 바위들이 계곡안에 불규칙하게 박혀 산행이 힘들어질 즈음 학심이골 계곡은 곧 옆구리가 간지러울 정도로 좁아지고 조금 더 올라가면 막다른 골이 되고 바위모퉁이를 돌아서면 숨겨진 듯한 폭포가 나타난다. 학소대 제1폭포이다. 학소대제1폭포는 마치 네모난 거대한 각통안에 물이 쏟아지는 형상이다. 폭포맞은 편은 아스라한 단애를 이루고 있고 폭포옆으로도 단애가 높다. 길은 단애옆으로 나있다. 조금 올라가면 큰 길이 나타난다. 학소대 제1폭포에 이르러 단애로 변한 능선이 가지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이다.
급경사를 열심히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숲사이로 보이는 조망이 시원하지는 않지만 숲과 계곡이 보이고 학소대 제2폭포가 마치 산중턱에 하얀 로프를 걸쳐놓은 듯 아스라한 산중턱에 보인다. 폭포부근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임을 알 수 있었다. 길은 바위투성이의 계곡을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물을 담고 다시 올라가다 보니 대학생들이 가는 곳은 학소대 제2폭포쪽으로 가고 있다. 반신반의하며 정상으로 바로 이어진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따라가면서 폭포를 보러가는 길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곤충처럼 그냥 가는 길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렇게하여 직벽이나 다름없이 보이던 폭포옆길을 통해 골짜기로 올라갔고 반 너덜지대나 다름없는 계곡으로 나와 한동안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의 돌밭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30킬로그램에 가까운 배낭을 진 사람들은 행동이 극히 부자유스럽고 급경사에서의 속도가 말할 수 없이 느리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생들은 엄청난 배낭무게 때문에 급경사나 타고 넘어야 할 큰 바위가 나오면 전전긍긍해 했다. 그래서 골짜기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붙기로 하였다. 이제 상황은 확실해졌다. 가지산에서가장 험준한 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800미터 능선에 도착한 시간은 대충 산행시작 4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능선은 평탄했고 노송이 우거진 곳도 있어서 위로 보이는 거인의 뒤꼭지처럼 숲이 무성하지만 마치 암벽 아닌 숲의 벽처럼 생긴 급사면이 압도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게 조망된다. 첫 번째 암봉의 경사는 급했다. 최근에 울산의 "바우"라는 산악회가 표지리번을 달고 지나간 흔적이 반가왔지만 길은 토끼무리가 지나 다닐 정도의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예상외의 코스로 잘못 접어든 오류에 대한 보상은 시시각각 중첩되어 왔다. 능선 전망대를 찾아 주봉쪽으로 바라본다. 이때만 해도 능선의 위압적인 모습에 압도되기 전이었다. 노송 사이에 눈앞에 가로놓인 암봉과 그 뒤 밥주걱 끄터머리 아웃라인처럼, 거인의 뒷머리처럼 허공을 찌르고 있는 모습은 은근히 암봉의 보이지 않는 쪽의 코스에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을듯한 느낌을 주어 불안했다. 봉우리의 생김새로 보나 기억을 더듬어 보나 저쪽은 암벽이나 급한 암사면이 틀림없이 있을 듯했다. 영봉에서 보는 주흘산을 상기하면 비슷한 인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혼자라면 모르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안간힘을 쓰는 일행을 생각하면 될 수 있으면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행을 뒤에 두고 먼저 첫 번째 암봉을 천신만고 끝에 올라보니 봉우리의 끝은 직벽을 이루고 있어서 내려갈 수가 없다. 봉우리를 왼쪽으로 끼고 우회하면서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암봉을 우회하는 시각은 지루했다. 학생들은 귀찮을 정도로 "길이 있어요?"하고 물었지만 길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우회로가 있을 듯했지만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학생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악전고투끝에 덤불과 산죽이 뒤엉킨 밀림을 지나 완만한 곳으로 나온 뒤 주걱처럼 생긴 암봉 뒷사면을 올라가는데 길흔적과 울산 "바우"산악회의 표지기만 간혹 보이는 길의 경사도는 살인적이다. 거의 직벽이나 다름없다. 거친 풍상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철쭉 가지들이 앞길을 가로막았고 잘못 디딘 돌멩이가 구르면 한없이 굴러내려가 저 아래쪽에서 둔중한 소리를 내며 멈추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곤 한다. 나무 뿌리를 붙들고 한참 올라가니 이번엔 암릉 날등이 나온다. 배낭이 무거울 경우 균형을 잡기가 어려운 곳이어서 학생들이 걱정되었다. 암릉 위에 올라서니 1시가 가까워온다.
학생들의 페이스에 맞춘다는 게 정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8시간이 후딱 달아난 것이다. 암릉위는 비교적 평탄한데다 노송이 몇그루 있어서 9월의 뙤약볕을 피하기가 좋았다. 물론 암릉 양쪽은 대단한 벼랑을 이루고 있다. 학생들은 거의 한시간 후에야 도착했다.
암릉 끝으로 세 번이나 내려가 울산 바우산악회의 표지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왔다. 험로를 통과한 그들에게 편한 곳에서 야영을 하라고 하고 작별을 고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암릉을 지나 암봉 꼭대기에 와서야 그동안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정상을 볼 수 있었다. 눈물겨울 정도로 반가웠다. 정상에 꽃혀있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게 보인다. 800미터쯤 되는 거리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심이 된 것은 우려하던 대로 암봉은 직벽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바위사이로 또렷한 길도 보였다. 이 암봉은 정상에서 보면 높이는 정상보다 훨씬 낮지만 가지산을 빛내주는 걸출한 봉우리중의 하나이다. 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탄한 길이었다. 암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약간 홈이 패인 바위사잇길로 5미터 정도만 내려오면 길이 나온다. 너덜바위지대를 따라 똑바로 조금 내려오면 산죽이 수북히 자라 길이 보이지않는 떡갈나무 숲길이 나온다. 키를 넘는 곳도 있는 산죽에 뒤덮여 눈으로는 길이 안보이지만 발은 길을 찾아 갔다. 이런 길은 발에게 맡겨야 하는 법이다. 발에 부딪치는 게 있으면 즉시 행로를 수정해야 한다.
숲의 식생은 평범하고 나무들도 키가 작아 이곳에서도 산불이 났거나 벌채가 광범하게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 산죽이 없고 사초들이 고운 잎을 땅에 누이고 있는 평탄한 길로 나오자 큰대자로 들어누워 숨을 골랐다. 정말 어려운 산행의 순간이 끝난 것이라는 안도감이 온몸에 전혀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무거운 페이스를 함께 한 것이 심리적으로 난코스라는 인식을 심어준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지만 2개의 암봉은 장비를 지고 타고 넘기에는 위험한 구간임에는 틀림없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선다는 것은 산행의 한 획을 긋는다는 것, 난관을 극복한 순간의 희열의 의미이상의 것임을 느꼈다. 단순히 부근의 산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는 데서 오는 기쁨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 오를 것이 없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보다도 훨씬 강열한 것이었다. 김수근(건축가)은 종묘에 가서 정전 앞 넓은 광장에 서면 하늘이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 "하늘"이라는 표현은 하느님 또는 신이라고 바꿔도 좋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나의 가지산 정상에서의 감회는 그것과 흡사했다. 하늘이 가까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평일이라 사람이 없는 한낮의 산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투명한 서기가 정상에 어리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산록에는 쑥부쟁이며 억새가 피어 역광에 반짝인다. 이런 정상사면의 정갈한 풍경은 지상 최고의 정원에서라도 보기 힘든 경관일 것이다. 햇살이, 바람이, 대기가 이보다 투명하고 무엇보다도 배경이 푸른 하늘인 아름다운 정원은 없을 것이므로.
가지산이 3면에 거느리고 멀리까지 뻗친 능선은 모두가 장대하다. 북동으로 갈래진 능선은 언양쪽으로 단애를 이룬 거대한 쌀바위를 지나 1114m봉, 귀바위를 거쳐 운문령에 다다른 뒤 북으로 방향을 돌려 계속 뻗어나가고 동남쪽으로 뻗은능선은 남서쪽으로 깊게 파고든 호박소 위쪽 계곡으로 올라온 코스가 능선과 만나는 곳에 형성된 안부넘어 높이 솟은 능선봉을 지나 방향을 정동으로 틀어 기분좋게 하강하면서 비행기가 선회하듯 완만하게 선회하면서 울산쪽으로 내리뻗다가 석남고개에서 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석남터널을 타고 넘은 뒤 능동산(982m)을 향해 달리고 이 능선은 가지산에서 운문산으로 뻗은 또하나의 억센 능선과 능동산부근에서부터 가운데 산내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남서쪽으로 뻗는다. 1000m와 900m를 넘는 두 개의 능선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남서로 달리는 진풍경은 아마 영남 알프스의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두개의 능선중 남쪽 능선은 천황산에 이르고 재약산을 넘어 사자평으로 가면서 넓은 억새밭을 일구고 다시 남으로 향해 삼랑진 아래 물금에 가서야 멎는 대능선이다. 능선중 북쪽능선인 가지산-운문산-억산 능선은 서남쪽으로 계속 뻗어 밀양강에 가서야 멎는다.
가지산-운문산 능선을 걸으며 대학시절 가지산-천황산-재약산 능선을 종주하던 그 때를 생각하니 감회가 서린다. 석남사에서 가지산을 오를 때 절에 있던 보살님 한 분이 산에 호랑이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칼을 빼들고 산을 오르던 생각이 나면서(어쩔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그때는 등산인구가 극히 적었다)마치 30년을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종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시계를 30년전으로 돌리면 산내면 계곡 저쪽 950여m의 시원하게 펼쳐진 평활한 능선에 과거의 내가 천황산과 표충사를 향해 정신없이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지산-운문산 능선은 산내면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해발 1000m를 유지하는 장쾌한 능선이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는 구름속을 걷는 듯 발걸음은 가볍고 상념은 전광석화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온당할까? 풍경은 초를 함께하듯 변화하고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은 자유롭다. 서쪽으로 가는 행로에 억새꽃이 역광으로 반짝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필연적인 요소들의 합일점 그 타이밍이 아름다운 것이다.
가지산 정상에서 운문산으로 가는 능선에 산내면 쪽으로 3,4개의 암릉이 있다. 암릉의 그늘을 배경으로 억새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광경은 바위능선의 실루엣과 함께 환상적이다.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는 광경이다. 아무리 늦어도 그 광경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사진이다 동영상이다 하여 촬영하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낚싯꾼이 월척을 포획한 느낌이다. 능선은 마지막 여름이라는 듯 훅훅 더운 김을 퍼올리고 기울어진 햇살은 따가왔지만 내 마음속에는 명징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의 산과 능선, 계곡과 바위가 마치 환영처럼 지나간다.
나는 비로소 30킬로그램의 배낭을 지고 혼자 일어서지도 못해 부축을 해야만 일어나던 학생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것은 운문산이 가까워지고 산내면쪽 능선이 중첩되면서 능선마다 그 만큼 씩의 그늘이 지면서 릴리프처럼 윤곽이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상승과 하강의 다이내믹한 곡선이 어울어지는 기막히 포인트에 나는 서 있었던 것이다. 황소처럼 우악스럽게 솟아있는 운문산의 실루엣은 아랫재 이쪽편의 산내면 능선과 어쩌면 그렇게도 일관되게 조화로울까. 나는 산의 윤곽과 능선의 스카이라인이 이곳처럼 군더더기없이 쪽 뻗은 라인으로 어울린 선들을 여태 본 적이 없다. 아랫 길로 내려서는 지점에 이르자 이미 시간이 5시를 넘고 있다. 산으로 들어온지 12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발걸음을 빨리하느라고 돌끄트머리에 걸려 넘어져 선글래스 다리가 깨어졌다. 처음엔 암릉에서 카메라, 두 번째는 암릉을 내려오면서 삼각대, 세 번째는 산죽밭에서 만년필을 분실했지만 다 회수했는데 깨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운문산과 가지산의 안부인 아랫재의 넓은 곳엔 키를 넘는 억새밭에 억새가 무성하고 꽃이 피어 바람에 나붓기고 있다. 억새바다 뒤에 마치 두륜산의 암봉 같은 모양을 한 고행했던 암릉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멀리 솟아있다. 내려가는 길은 그 암릉아래로 가까워지는 길이다. 내려가는 계곡길은 평탄하여 속도를 빨리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계곡이름이 심심계곡이라 심심할 정도로 한가한 산행으로 변한다. 풍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동소이하다. 계곡은 동네가 하나 들어와 앉아도 여유가 있을 만큼 넓다는 느낌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지는 개울과 개울안의 바위며 암반과 소에서 나는 물소리가 요란해질 뿐이다. 숲은 신갈나무등 활엽수일변도의 수종이고 침엽수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억새밭을 지나면 조그마한 샘터가 있어 물이 차갑다.
한참 내려오면 민가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상하다. 사람이 없다. 다시 보니 폐가들이다. 폐가의 한 창문엔 커텐을 말아 묶은 데도 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떡깔나무를 썰어 버섯을 재배하던 곳이 나타난다. 4km 가까운 심심계곡을 통과하고나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다. 사리암 밑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7시 30분경. 14시간 이상의 산행이 끝난 것이다.정상적인 산행이었다면 7시간 30분 정도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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