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4.3.31. ) -부활절 예배 말씀/마가복음 5장 21- 34
만남의 축복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27-28)
인생 살아가면서 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만남의 축복입니다. 역사란 만남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행복한 역사도 슬픈 역사도 만남을 통해 일어납니다. 물론 무조건 만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던 자연 속의 꽃 한 송이 이던, 나무나 풀이나 짐승이던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서 역사의 방향이 설정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명문 귀족 소년이 시골에 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귀족의 아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또래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소리를 듣고 익사 직전의 그를 구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귀족의 아들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그 시골 소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13살이 된 시골 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커서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집은 가난하고 아이들도 아홉 명이나 되어 집안 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귀족의 아들은 가난한 시골 소년을 돕기로 결심하고 아버지를 졸라 그 친구를 런던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시골 소년은 런던의 의과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 후 포도당 구균이라는 세균을 연구하여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학업을 도운 귀족 소년 역시 정치가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26세의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어 영국을 이끄는 정치인으로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정치가가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 중에 폐렴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폐렴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의사는 자신이 만든 특효약을 들고 달려와 또 다시 그를 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 의사의 특효약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1945년 노벨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페니시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진 주인공은 세계대전의 영웅인 윈스터 처칠입니다. 플레밍과 처칠의 우연인 것 같은 기가막힌 만남은 서로의 생명을 구했을뿐아니라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려가자 마자 먼저 좋은 교회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를 인도하셨던 고등학교 때 전도사님이 늘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다가 자취방을 얻었는데 거기서 한 선배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를 따라 간 곳이 광주 대학생 성경읽기선교회 ubf였습니다. 거기서 성경 공부를 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 후로 저는 목자가 되었고, 스탭이 되었고, 제주도 개척 목자가 되었고, 그 후 87녀도 무안에 와서 지금껏 40년이 넘게 사역을 하고 있고, 지금은 또 우주교회를 하며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 예수님과의 만남이 한 사람의 생애를 결정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나중에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결국 인생의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잘 만나면 생명을 얻고 행복하게도 되고, 출세도 합니다. 그러나 잘 못 만나면 불행하게 되고, 죽기도 하고, 영창에도 가고 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대게는 순간의 만남,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만남 중에 서로에게 커다란 감동과 변화를 주고, 만남이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역사를 창조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많지 않지만 그런 만남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공감이 필요합니다. 당연 주님의 인도하심이 첫째이고, 다음에 시크릿에서 배우고 있지만 끌어당김의 법칙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시골이라도 좋은 제자가 되면 좋은 스승이 나타난다. 좋은 스승이 되면 시골이라도 좋은 제자가 나타난다. 배우는 열망이 강했던 황승은 강진 시골에서 정약용을 만났고, 정약진은 흑산도로 유배 가서 창배라는 제자를 만났고, 흑산도에서 물고기 잡아 먹고 사는 청년 창배는 정약진 스승을 만났습니다. 준비 되지 않으면 옆에 있어도 좋은 사람 만나지 못합니다. 사실은 이런 내면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만남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비단 사람뿐 아닙니다. 동물을 관심갖고 사랑하며 관찰하다가 동물 학자가 된 사람도 있고, 꽃을 좋아해서 연구하고 가꾸고 심고 하다가 식물 연구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길을 가더라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살피면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싹이 돋고, 꽃 몽우리가 올라오고, 풀섶에서 피어오는 작은 꽃을 살피며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늘 바쁘게 삶에 쫓겨 목적지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언젠가 산을 오르다가 길가 발치에 작은 야생화가 피어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머물러서 살펴보며 살펴보았습니다. 작지만 참으로 수수하고 청초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고 산장 텐트에 올라 성경을 읽고 책을 읽으려는데 그 꽃이 마음에 묵상이 되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가끔 산길을 가다보면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만난다. 그저 잡풀과 낙옆 속에 가려저있어 무심코 지나면 보이지도 않을 존재 이지만... 잠시 가던 길 멈추어 보다 보면 통성명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즐거운 마음이 오고 가고 연이 닿게 된다. 그러면... 그 작은 야생화는 더이상 하찮은 꽃이 아니라 나에게 큰 산이 되고, 우주가 되고, 내 마음속 하늘에 별 같은 존재가 된다. 나는 꽃에게서 인생살이 중요한 교훈을 또 받게 된다. 그래...아름답게 사는 거다.. 비록 작은 존재라도, 크고 화려하지 못해도 누가 알아주는 이 없어도 자기 자리에서 이처럼 최선을 다해 피면 되는거다. 내가 저 꽃을 봐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 한 분이 봐주시면 되는 거다. 세상의 화려한 꽃이 아니라 주님의 아름다운 꽃 이 되는 거다! 아! 나는 한 송이 야생화 이다. 산중 길가에 숨길 듯 피어나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주님 마음 언제나 내 안에 머물러 계시는 그런 행복한 야생화 이다. 보소! 어찌 그리 무심히 지나치시오? 안개 같이 짧은 것이 인생이요, 살 같이 빠른 것이 인생 이라지만 ..그래도 꽃 한송이 보고 가소! 마음이 머물면 역사가 일어날 텐데... 사랑의 역사, 행복한 역사~~ 그리 급히 가는 이유가 무엇이요? 몸이 바쁘다면 마음이라도 머물게 하소. 이;것이 그 때 슨 글입니다. 내가 그 날 만난 꽃은 각시 붓꽃이라는 야생화 였습니다. 만났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고, 또 그 은혜를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게 된 것이고 아직도 글로 남아 있으니 이 봄에 계절에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나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난다는 것은 몸만이 아닌 마음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대에게 머무는 것입니다. 머문다는 것은 관심, 사랑, 믿음, 공감입니다. 이런 만남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고 가치도 두지 않고 믿음 신뢰도 없다면 하루 수없이 만나도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피상적인 만남이 됩니다. 좋은 친구 좋은 스승도 만날 수 없습니다. 산길을 낙옆 밟고 걷는다고 저절로 시인이 되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머물러 관심을 가져야 시인도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사십 년의 목회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 행복의 가장 중심에는 여러분들과 새로운 만남, 진짜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여러분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열분들 넘어 새롭게 놀려올 양들을 봐라보았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만 보고 만납니다. 재중 집사님, 지홍, 명남, 정미 집사님은 지금까지 계속이지만 만남의 변천사를 겪은 분들입니다. 저에 있던 목자 이고, 전에 있던 성도인데 지금은 우주교회에서 전혀 새로운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재중 집사님 한 사람과의 만남은 가장 어려울 때 의리를 지키며 목회자에게 큰 힘을 주고, 교회 존속의 영향을 준 너무나 귀한 만남입니다. 명남 주정미 집사님 그냥 세월이 간 것이 아니라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교히에 기둥 같이 서서 교회를 끝까지 지켜주었고, 박경숙 집사님 친구가 마침내 열매도 자라고,, 김성권, 신순주, 정양숙 님들이 독서모임에 참석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홍 집사님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입니다. 철학자적 자세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은사가 있고, 김근오 형제님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주안에서 만남이라 이렇게 신비합니다. 김효주 선교사님을 지금 알기는 30년 전부터 알았습니다. 그냥 스처지가다 얼굴 한번 보는 문방구 주인, 한 사랑 선교 회원, 그런 피상적이고 무의미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인연이 닿아서 선교사님이 중국 선교사 파송 때에 제가 파송 예배 말씀을 섬겨드렸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돌아와 이제는 우주교회 없어서는 안 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등산도 하고, 무엇이든지 함께 하면 좋은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복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효주 선교사님을 통해서 천 권사님을 알게 되었고, 고현옥 집사님도 만나게 되고, 장영효 형제님도 알게 되고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서광호 목사님은 우주교회를 잘 만났다고 하지만 저 역시 정말 이 시대에 보기드문 금광석과 같은 목사님을 만난 것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축복입니다. 저는 요즘 매일 매일 말씀 속에서 큐티, 예배, 독서모임을 통해서 여분들과 만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피상적인 만남이 아닌 살며 사랑하며 서로 배우려고 애쓰고 눌고 나누는 만남이기에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때문에 굳어질 나이에 저도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살아가면서 좋은 스승, 좋은 목자, 좋은 사람를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제자가 되고 좋은 사람이 되변 시골 무안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스승이 나타나서 여러분들을 만나줄 것입니다. 믿음과 끌어당김의 법칙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으면 만물의 정기가 어려분들을 돕고, 보물을 찾을 수 있는 표지를 보여줄 것이지만, 열의가 없으면 옆에 보물이 있어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든 만물이든 무엇을 만난다는 것은 몸으로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공감으로, 영으로 믿음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인연이 이어지고 역사가 일어나는 만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만남, 정말 축복된 만남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한 혈루증 앓는 여인이 나옵니다(마가 5장). 12해 동안 하열을 하면 몸이 빼빼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피를 흘리는 병을 부정한 병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생활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롭게 살았겠습니까? 전국의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병만 중해지고 고통만 더하고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모은 재산도 다 탕진했습니다. 남은 것은 절망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낫고자 하는 소원이 불일듯 일어났습니다. 예수님 이시라면, 그 옷가에게라도 손을 대면 나음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열망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께 나갈 방법이 도저히 없었지만 몰래라도 사람들 틈에 숨어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다가가서 그 옷에 손을 댔습니다. 아무도 눈치 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시 몰래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능력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을 아시고 뒤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냐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것은 믿음의 손을 댄 여인 이었습니다. 여인이 능력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여인의 믿음의; 주파수와 일치하였습니다. 자신을 숨길 수 없어 여인은 주님과 사람들 앞에 나와 모든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축복을 하였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평생의 고질병에서 해방되고, 절망적인 인생이 소망의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구원도 받았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여인이 축복받는 여자가 되게 하였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고 예수님 몸에 손을 대었어도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자신은 비록 부정한 병자 였지만 주께 신뢰와 믿음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주님을 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만남은 생명의 만남 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살아났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과 믿음이 통한 사렙다 과부만 선지자를 섬기는데 쓰임을 받았고, 또 믿음 있었던 나아만만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마찬가지입니다. 대게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비린내 나는 무식한 어부들 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주변에 겨자씨 잡초 같은 인생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고 부르셨을 때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전적인 신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거목들로 자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간 조건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키워주시면 됩니다. 잡풀이라도 거목이 되게 하시면 그렇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였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주님이 하시면 겨자씨 작은 풀을 거목으로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우주교회는 적은 무리들이 있지만 그 안에 우주적인 거목으로 자랄 씨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주를 먹일 말씀이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오늘 정말 필요한 믿음이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믿음으로 보는 것같이 매일 매 순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결국 죽음 앞에서 무너집니다. 제자들 보십시오. 배 그물 부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음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자 유다는 배신을 했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을 했고, 모두가 물고기를 잡으러 고향으로 낙향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던 마리아와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면서도 슬픔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바른 신앙 위에 서서 각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순교자가 되기까지는 바로 갈릴리 바다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 이었습니다. 아멘! 만삭되어 난자 같고 죄인 중에 괴수였던 사울이 변화 되어 제자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며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 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바울은 외칩니다(고전 15:20). 예수님은 오늘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부활의 주님이 되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 부활의 주님이 나의 주님 이십니다. 이 부활의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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