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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copyzigi
[제1회 블루시티 거제문학상 소설 당선작] 김득진
■금상
꿈꾸는 몽돌 / 김득진
폐왕성은 안개 낀 거제 앞바다에 항공모함이 뜬 것처럼 보였다. 거북선 함대보다 웅장한 그 곳에 올라서면 두려움이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한산도 쪽에서 불어오는 마파람에 끓어오르는 속을 다독거린 날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엄마는 날 낳자마자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뭍으로 떠났다고 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폐왕성에 뛰어 오른 나는 장터에서 배운 각설이 타령을 흉내 내곤 했다. 바닷바람과 각설이 타령이 아린 속을 달래주긴 했지만 날 보듬어 주는 손길이라곤 없어 엄마를 찾아 통영 행 여객선을 탔던 거였다. 고향을 떠난 지 어언 십년, 배가 고파 헛것이 보일 때면 상상 속의 폐왕성이 신기루처럼 눈앞에 둥실 떠올랐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둔덕기성 안의 제단에 다다랐을 때면 흘러내린 땀이 옷을 흠뻑 적신 뒤였다. 그럴 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몽돌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몽돌은 도시로 나간 뒤 막노동판을 떠도는 동안 닳고 닳은 내 삶의 모습일 것 같았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부모 형제들의 핍박은 이겨내기 어려워 밖으로만 나돌았으니까.
날품팔이 하는 동안 붙박이로 일 해 온 사람들에게 자주 휘둘렸다. 그럴 때마다 둔덕으로 유폐된 왕의 처연한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각설이 타령을 흥얼거리곤 했다. 질통을 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높이까지 모래와 자갈을 져 올리고 났을 때였다. 타들어 가는 목을 막걸리 한 잔으로 축이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타령이나 한 자락 뽑아 보라고 말했다. 주저하던 나는 못 이긴 척 곡조를 청승맞고도 길게 늘여 내뽑았다. 쌍소리를 섞어가며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나의 청승에 흔들렸던가. 그건 알 바 아니다. 오랜 막노동으로 등이 굽을 것만 같아 비명처럼 내지른 소리였다.
삭풍이 살을 에는 자갈치에서 배 밑바닥 냉동 창고에 쌓였던 오징어를 하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컨베이어에 실려 연이어 올라오는 사람 무게의 상자를 물양장에 죄다 부려놓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먼저 흐른 땀은 이미 얼어서 옷이 뻣뻣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손발에 감각이 없다는 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일손을 놓은 뒤 장작불을 피운 드럼통에 언 손을 녹일 무렵 둘러선 사람들이 각설이 타령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동상 걸린 발의 통증을 이기려고 각설이 타령을 겨울 삭풍 속으로 내뱉곤 했다. 그러는 동안 몽돌처럼 모난 곳이 깎여서 고향을 다시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났던 거였다.
유치환 생가를 둘러보고 폐왕성에 오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웃자란 풀을 베어 낸 산길은 드문드문 비포장이 드러나긴 해도 작달비가 씻어낸 듯 말끔하다. 성터를 백 미터 정도 앞두고 차에서 내린다. 둔덕기성을 알리는 입간판 옆에 붉은 글씨로 출입금지라고 씌어져 있어서다. 가랑비가 내리긴 하지만 오래 가물었던 탓에 마사와 황토가 섞인 땅은 젖은 기색조차 없다. 가파른 길 끝머리엔 쌓은 지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 성벽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문서를 통해 고증을 거친 뒤 허물어져 주위에 흩어진 돌들을 모아 성을 다시 쌓아올리고 있나 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확인하기에도 어려울 만치 공사 진척은 되어 있지 않다. 몇 년 전부터 향토사학자가 앞장서서 유적 발굴을 해야만 한다고 떠든 덕분에 쥐꼬리 만 한 예산을 타 내서 성곽 일부를 복원한 게 그 정도인 것 같다. 존재했다는 흔적만 간직하고 있던 성터는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광에 취해 오랜 세월을 곰삭이고 있다.
비가 내려서 발굴팀이 철수한 것일까. 폭 이 미터 정도로 파 놓은 고랑은 텅 비었다. 그 속에는 둥근 돌을 빼 낸 흔적만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주먹 두 개 크기의 몽돌들은 가파른 경사를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바닷가에서 주워온 것이란 게 짐작된다. 성터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선 뒤 철제 펜스를 쳐 놓은 곳에 다다른다. 각 파이프를 써서 만든 펜스 안쪽에는 수 백 개의 몽돌들이 모나지 않은 몸을 서로 맞대고 있다. 닳고 닳아 어느 한 곳 모난 데 없는 돌들은 성벽 위쪽까지 흩어져 있다. 나는 엄마 생각이 날 때 기대서서 각설이 타령을 흥얼거리곤 했던 둥치 큰 소나무 앞에 선다. 발 앞에 몽돌 한 개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한 시간을 견뎌줘서 고맙다는 듯. 여기까지 몽돌을 이거나 져 날랐을 친척들의 노고를 떠올려 본다. 상상만으로도 진땀이 흘러내릴 것 같다. 뜬금없이 군대 생활 하던 순간이 머리에 떠오른다. 고아인 내가 어떻게 해서 군대를 가게 됐는지 알 길은 없다. 진지 구축을 위해 사람 몸무게의 돌을 하루 종일 져 나른다고 등에 생겼던 피딱지가 문신이 되어 있다. 그때 기억을 하다보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즐겨 부르던 각설이 타령은 흥얼거릴 틈이 없었으니까.
안내판에 적힌 글을 읽어본다. 둔덕기성은 7세기 신라시대 축성법이 보존된 유적인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변천된 방법이 적용되었다고 적혀 있다. 사등면과 둔덕면의 경계가 되는 우봉산 자락에 자리한 둔덕기성은 성벽 둘레가 약 526미터이고 최고 높이는 4.85미터라 한다. 성 안의 저수 시설인 연지 속 뻘층에서 토기며 청자 접시, 청동그릇 파편, 화살촉, 유구, 멍에, 괭이, 목제망치와 소뼈도 출토되었다고 적혀 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뛰어오른 뒤 땀을 식히며 각설이 타령을 목청껏 불렀던 성의 북쪽, 큼직한 바위가 기우제를 지냈던 제단이라니 놀랍다. 의종이 배를 타고 건넜다는 통영과 거제 사이의 바다를 견내량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도 적혀 있다. 친구들과 뛰어 놀던 무덤가가 의종을 따라 온 고려인들이 묻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 함께 왔던 장군의 후손이 초등학교 친구 변 정기였나 보다.
열에 들떠 뛰어오르곤 하던 폐왕성은 숲이 좀 더 우거진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다. 이 산이 옛 성터란 걸 어릴 땐 몰랐다. 둔덕 사람들 입을 통해 폐왕성이란 뜻 모를 말만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마을 이름을 떨친 인물로는 유치환 시인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았다는 이영도 여사 정도다. 그때서야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여사와 사귈 무렵 지었다는 바위란 시가 있었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해 본다. 시를 통해 바랐던 대로 그는 죽어 바위가 되어 그리워 한 뮤즈의 파도를 실컷 안아 보았을까. 지난날들의 회상에 젖어 들쑥날쑥한 해안선을 둘러보지만 사람 모양의 바위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낙후되어가는 마을이지만 옛 모습이 간직된 걸 찾기가 쉽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만 예전처럼 철썩거리고 있다. 안개 낀 육지와 섬 사이의 바다를 살피고 있을 때, 예초기를 맨 외삼촌이 산등성이를 넘어온다. 머리에서부터 흐른 땀이 등산복을 흠뻑 적셔 칙칙하던 색깔을 오롯이 드러낸다.
“어, 병호! 너도 벌초하러 온 거야?”
땀 흘리며 예초기를 돌리고 난 외삼촌과 달리 말쑥한 차림의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는다. 뭍으로 나간 형제들이 적잖은 돈을 해마다 보내온 탓인지 외삼촌 표정이 밝은 게 그나마 미안함을 덮어준다. 둔덕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잘 알다보니 동네 혼사를 한 집들이 많다. 하지만 엄마는 뭍에서 나를 밴 채 여기로 시집와 아버지의 후처가 되었다는 외삼촌의 얘기는 의아하다. 그러니 외삼촌도 엄마 형제는 아니다. 큰엄마 동생이니 나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이다. 집안사람들 모두가 우두봉 아래 묘를 썼다곤 하는데 설령 엄마를 찾는다 하더라도 문중에서 봉분 하나 마련해줄 것 같지 않다. 나는 엄마를 찾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닳고 닳은 몽돌의 생김새를 가만히 살펴본다. 몽돌에다 방점을 찍은 나는 디테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색다른 작품 하나가 태어날 것 같아서다. 바닷가에서 몽돌을 주워 폐왕성까지 운반했을 친척들 모습이 다시 눈앞을 스쳐간다. 흙속에서도 몽돌이 더러 발굴된다니 그걸 지고 오르던 친척들이 떨어뜨리기도 한 모양이다. 그들이 흘린 땀에는 고려의 맥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염원이 담겼을 것 같다. 무신의 난 때문에 거제로 유폐된 의왕은 친척들이 져 나른 몽돌에다 어떤 결의를 새겼을까. 돌 하나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외삼촌이 측은한 눈길을 보내며 얘기한다.
“흔해빠진 그걸 뭣 땜에 들여다보는 거야? 선소리꾼 유 치수 집에 가면 더 멋진 것도 있다는데.”
외삼촌 얘기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혹시라도 인연이 닿을지 모르니 선소리꾼 유 치수와 만나게 해 달라는 뜻이다. 외삼촌은 오래 전 이장을 맡았던 반 노인을 찾아가 보라고, 미리 전화를 해 두겠다 말한다. 나는 건성으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탈을 바삐 뛰어 내려간다. 숨이 턱에 닿을 무렵 도착한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십 원짜리 고 스톱 판을 벌이고서 돈 한 푼 더 따려고 눈이 벌게져 있다. 나는 외삼촌이 미리 전화해 두겠다고 했던 반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이미 전화를 받았는지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유난히 반가운 척한다. 고개를 숙인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묻는다.
“저, 유 치수씨 집이 어디죠?”
“아, 그 사람! 지금 장승포 요양 병원에 있지.”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저번 하둔에서 초상났을 때 서창을 하다가 엉뚱한 소릴 지껄이더라고. 그런 뒤 입원을 시켰지. 며칠 전 병원에 가 봤더니 나를 몰라보더라니까.”
반 노인은 유 치수를 오래도록 키웠다는 걸 알고 있다. 뭍에서 건너온 그는 까닭 모르게 식구들이 하나 둘 죽은 탓에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고 말았다. 마을 유지들이 회의를 해서 이장이 된 사람들 집에서 그를 거둬 키우기로 합의를 한 거였다. 그들 중에서도 반 노인이 가장 오래 이장 직을 맡았던 까닭에 유 치수와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유 치수도 나처럼 외로움이 엄습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서 달랬다고 하질 않던가. 반 노인은 안 그래도 병원에 가 보려던 참이었다며 오토바이로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아랫목에 앉았던 노인 한 사람이 무슨 까닭인지 나를 째려본다. 모르긴 해도 반 노인에게 수월찮게 돈을 잃은 모양이다. 반 노인은 따 모은 돈을 방바닥에 죄다 던지고서 엉덩이를 턴 뒤 마을회관을 벗어난다. 국기게양대 옆으로 간 그는 비스듬히 주차해 둔 오토바이에 올라 앉아 시동을 건다. 몇 번 실패한 끝에 털털거리며 출발 준비를 마친다. 반 노인은 고개를 젖혀 나에게 뒷자리에 올라타라는 눈짓을 건넨다.
내가 엉덩이를 걸치기 바쁘게 오토바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회관을 벗어난다. 반 노인은 한참 만에 장승포 요양병원에 도착한다. 전봇대 옆에 오토바이를 대고 들어선 병원에는 보행기나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초점 잃은 시선으로 우릴 처연하게 바라본다. 그들 사이를 지나친 우리는 병실에 다다른다. 반 노인이 다가간 침대에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남자가 핏기 하나 없이 누워 있다. 반 노인이 남자의 두 손을 맞잡는다. 어린 시절부터 유 치수를 키웠던 반 노인은 허리를 굽혀 그에게 몸을 포갠다. 마을 어른들로부터 흘리듯 들은 것만으로도 그가 자라온 얘기는 나랑 별다르지 않다. 부모가 있어도 없는 것보다 못한 나처럼 혼자 부르곤 했던 노래가 그를 키웠다고 했다.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이라곤 없어 겨울 내내 기침을 달고 살았던 내 어릴 적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살 저미는 바람을 어찌 견뎌냈을까, 유 치수는.
“약은 잘 챙겨 먹겠지? 불편한 건 없고?”
“이장님, 여기가 천국이네요. 굶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고, 춥거나 더운 걸 모르니까요.”
듣던 것과 달리 유 치수의 기억은 또렷하다. 치매에 걸렸단 말이 헛소리였나, 그의 표정을 꼼꼼히 살핀다. 나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말을 건넨다. 집에 색다른 몽돌이 있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제게 보여 주실 순 없을까요.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것 만은 안 된다고 한다. 곁에 섰던 반 노인이 딱하다는 듯 나를 거든다.
“이 사람아, 그거 유물 불법 반출이란 거 몰라? 내 말 한 마디면 여기서 쫓겨나서 교도소 가야할 지도 모른단 말야.”
반 노인의 얘길 들은 유 치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의 눈빛은 자고난 뒤 거울을 들여다 본 내 모습과 비슷하다. 그의 눈과 내 눈을 통해 숱한 말들이 오간다. 그러는 동안 반 노인이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뜬다. 나의 젖은 눈을 들여다보던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건 내 목숨과 맞바꾼 거지만 병호, 너 살아온 게 나랑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 사랑채 삼층장 아래 감춰놨어.”
나는 그에게 어째서 목숨과 맞바꾼 거라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는 반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뒤 대답한다. 열일곱 살 무렵 출생의 비밀을 안 뒤부터 왠지 살기가 싫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둔덕기성에 오른 그가 옆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에 준비해 온 노끈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목을 맨 순간 학동 바닷가 몽돌과는 모양이 딴판인 게 눈에 띄었다는 거다. 저녁 무렵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금덩어리 같았다며 얘기를 이어나간다.
올가미 매듭을 서둘러 풀고 주운 몽돌을 품속에 감춰 집으로 돌아왔어. 돌을 안고 잠들었는데 왕관을 쓴 사람이 꿈에 나타났지. 그는 내게 번쩍거리는 종 하나를 쥐어줬어. 거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길을 알려주는 일을 맡아달라고 말야. 꿈을 깬 뒤 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 날이 밝지도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둔덕기성으로 달려갔어. 목을 매려고 노끈을 묶었던 소나무 아래로부터 금빛 몽돌이 있던 곳까지 찬찬히 살폈어. 왕관을 쓴 남자 말대로 두어 발자국 벗어난 숲속에 이슬 한 방울 묻지 않은 꽹과리 하나가 놓여 있었지 뭐야. 나는 몽돌과 마찬가지로 꽹과리를 얼른 주워 품속에 감췄어. 남의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설렘과 떨림이 묘하게 교차되기도 했지. 오후가 되자 우연처럼 삿갓을 쓴 스님이 나타나 내게 사주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했어. 사주가 뭔지도 몰랐지만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내가 어떻게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스레 말했어. 스님은 그딴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머리를 쿡 쥐어박았지. 스님의 심부름을 하며 한 달 넘게 공부하고 나니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산을 내려 온 나는 그때부터 가까운 이웃 사람들의 길운을 점쳐주기도 하고 이사 방위를 정해주기도 했던 거야. 그 땜에 목을 매려고 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 버렸지 뭐야.
얘기를 죄다 듣고 보니 몽돌이며 꽹과리는 바로 유 치수 자신이었고 그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점괘를 뽑을 때나 초상이 났을 때 선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둔덕기성에서 주워 온 꽹과리가 꼭 필요했을 테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유 치수에게 고맙단 인사를 한 뒤 반 노인을 졸라 그의 집으로 향한다. 둔덕천변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집 앞에 오토바이가 멈춘다. 떨어져 나간 대문 너머로 허리가 굽은 여자가 마당에 비닐을 깐 뒤 고추를 말리려고 펴 너는 중이다. 반 노인이 그녀를 향해 고함을 지르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반 노인은 여자에게 다가가서 등을 쿡 찌른다. 그는 손가락으로 요양병원 쪽을 가리켜 보인 뒤 주먹 두 개를 붙여 어떤 모양을 만든다. 여자는 반 노인이 뭘 얘기하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바닥을 펼쳐 유 치수가 머무는 사랑채엔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것 만은 안 된다며 소리를 지른다. 유 치수가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찾아오는 손님들로부터 수월찮게 돈을 벌 수 있었을 물건이 거기 있다는 뜻이다.
한 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반 노인은 주머니를 뒤진다.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 한 장을 그녀 손에 쥐어준다. 반 노인과 지폐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녀가 그때서야 못 이긴 듯 길을 틔어준다. 나는 반 노인을 뒤따라 맞은편의 쓰러져 가는 방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긴다. 방안에는 유 치수 말대로 칠이 벗겨진 삼층장이 보인다. 나는 소매를 걷고 허리를 굽혀 삼층장 아래쪽으로 팔을 길게 뻗는다. 곧이어 나무 받침대에 담긴 몽돌 한 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몽돌은 어두운 곳이긴 해도 금빛이 반짝거린 탓에 시선을 확 잡아끈다. 나는 몽돌을 조심스레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돌을 받쳐 든 손바닥에 굴곡진 느낌이 전해진다. 햇살 아래서 금빛이 도는 몽돌을 뒤집어 본다. 거기에는 형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곁에 섰던 반 노인이 몽돌을 유심히 들여다본 뒤 얘기한다.
“이게 무슨 글자지? 흘려 써서 도통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반 노인도 모르는 글자를 내가 알 턱이 없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몽돌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반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땅에다 아는 한자를 적어 돌에 새겨진 글자와 맞춰 본다. 하지만 엇비슷한 글자는 하나도 없다. 나는 둔덕 출신 친구들의 밴드에 찍은 사진을 올리고 새겨진 글자가 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묻는다. 모르긴 해도 부산으로 유학 가서 교수가 되었다는 친구라면 쉽게 답을 찾아 올려줄 것 같다. 글자 맞추는 걸 포기한 반 노인은 다시 장롱 아래를 뒤진다. 유 치수의 유일한 재산, 꽹과리를 찾아내려는 모양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 삼층장 아래서 꽹과리를 찾는 일은 쉽지가 않다. 반 노인은 방문에 기대 둔 지팡이로 장롱 아래를 샅샅이 더듬어 나간다. 아무리 애를 써도 꽹과리는 드러나지 않고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갈 뿐이다. 꽹과리는 유 치수에겐 없어선 안 될 물건이지만 나에겐 어떤 역할을 해 줄지 알 수가 없다. 엎드린 채 장롱 아래를 들여다보는 반 노인의 팔을 잡아끌고 마을회관 옆의 가게로 향한다. 날 위해 수고했으니 막걸리라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평상에 앉아 대접 가득 따른 막걸리를 마시고 난 반 노인의 얘기가 시작된다. 외삼촌으로부터 크게 신세진 일을 소상하게 꺼낸 것이다. 큰 비가 온 날 밤, 술을 마시고 둔덕천을 건너 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그를 외삼촌이 구해줬다고 한다. 그 뒤 외삼촌을 위해 무언가 보답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전화를 받았던 거라고 말한다. 그는 연거푸 두 대접의 막걸리를 들이켠 뒤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무렵 스마트폰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폰을 꺼낸다. 조금 전 밴드에 올린 사진에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고향 친구가 답을 올린 것이다. 거기엔 새벽 ‘효’ 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왜 그 글자를 몽돌에다 새겼을까 하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나는 그의 답글 아래 글씨체가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느냐고 댓글을 단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주인 여자가 또 한 병의 막걸리를 내온다. 반 노인의 표정은 더 이상 풀어질 수 없을 정도다.
“어려운 일 있으면 뭐든 얘기해. 유 치수를 키운 날 무시하진 못할 테니까.”
반 노인의 얘길 흘려듣는 동안 고향 친구 밴드에서 연이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우리 대화에 끼려는 친구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거들고 있는 거다. 골동품상을 찾아가 보라는 둥, 대학 문헌정보학과에 가면 알아낼 수 있다는 둥 갈피 잡지 못할 말들이 올라오고 있다. 두 병째의 막걸리가 거의 다 비었을 때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친구의 답글이 달린다. 서지학계에서 손꼽는 학자에게 물어보면 알아낼 수 있겠다고 한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양손 엄지를 치켜 올린 이모티콘을 그에게 보낸다. 불콰한 얼굴로 내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꼿꼿하던 발걸음은 어느 새 팔자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그는 좀 전에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되풀이 하면서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가게 주인 여자가 ‘저번에도 술 먹고 둔덕천에 처 박혔잖아요!’ 하며 반 노인의 팔을 잡아챈다. 이때다 싶어 반 노인에게 고맙단 인사를 한 나는 가게를 벗어난다.
둔덕기성을 다시 오르는 동안 눈에 띈 몽돌로부터 지난번과 판이한 느낌이 전해진다. 닳고 닳았으니 오랜 세월을 버티기에 수월했겠지. 성의 일부나마 다시 쌓아 올려둔 산길을 오른다. 허물어진 성곽의 윗부분에 이르는 동안 먼발치의 통영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개 낀 바다가 시야를 꽉 채울 무렵 등이며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순간 저만치 수평으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눈길을 잡아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유 치수가 목을 매려고 했던 곳이 아닐까 해서 소름이 돋는다. 고개를 돌린 나는 통영 항으로부터 둔덕까지의 뱃길을 어림잡아본다. 손을 펴서 견줘보니 한 뼘이 채 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린다. 우두봉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말고는 들르지 않는 곳인데 누굴까 하며 고개를 돌려본다. 손에 낫 한 자루를 든 외삼촌이 미소 띤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 나는 반 노인과 함께 유 치수를 만나러 갔던 일과 그의 집으로 가서 흔치 않은 몽돌을 봤다는 얘길 고맙단 말과 함께 전한다. 그가 통영 쪽을 가리키며 찬찬히 얘기를 건넨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견내량이야. 고려 의왕께서 건너오신 곳이지. 그 땜에 저 물길을 전하도목이라 이름 지었어. 견내량에서 여기까지가 바로 왕의 길이야. 그 분의 뜻이 제대로 펼쳐졌다면 거제가 지금과 딴판이 되었겠지. 그 분이 왕위를 되찾았다면 개경에 버금가는 임시 수도로 키웠을 테니 말야.”
나는 외삼촌의 얘기를 들으며 둔덕기성 주위의 산세를 살핀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건 좀 전에 쳐다본 뒤 소름이 돋았던 소나무다. 로프를 매서 그네를 타도 넉넉할 것 같은 소나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쫓던 외삼촌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유 치수가 살아갈 힘을 잃었을 무렵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노끈을 맸다는 바로 그 나무야.”
폐왕이 천제를 지내던 제단 바로 옆 소나무에 노끈을 맸었다는 얘길 유 치수에게 나도 들었지 않은가. 나 또한 각설이 타령을 불러가며 모난 성격을 다스리지 않았다면 여기쯤에서 노끈과 소나무의 힘을 빌렸을지 몰랐을 거란 생각에 먹먹하다. 세월을 이기며 둥글어진 주위의 몽돌을 가만히 살펴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게 됐던 것처럼 둔덕기성이나 개경의 궁성 아니면 황성으로 보이는 돌도 있다. 혹시나 해서 고개 숙여 살피지만 글자가 새겨진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 무렵 외삼촌 배에서 난 쪼르륵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그는 함께 저녁 먹으러 집에 가자며 팔을 잡아끌지만 다른 약속이 있다며 고개 숙여 고맙단 말만 건넨다. 때맞춰 스마트폰에서 김광석의 ’광야에서’ 노래가 컬러링으로 울려 퍼진다. 노랫소리가 주변 풍경과 어울린단 생각에 한 동안 듣고 있다가 느지막이 화면을 펼친다. 전화한 사람은 뜻하지 않게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친구다.
“무슨 일이야? 바쁠 텐데 내게 전화할 시간이 있었던 거야?”
“네가 보내준 사진의 몽돌, 거기 글씨를 정과정곡을 지은 정서가 쓴 거란 게 밝혀졌어!”
“난, 그 사실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
“그건 역사 시간에 배운 거잖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당시 기록을 좀 더 찾아봐야 해.”
친구 얘기를 듣고 난 나는 정신이 멍하다. 둔덕기성에 관련된 역사를 배운 적도 없는 데다 정서니 정과정곡에 대해서도 금시초문 이어서다. 전화를 끊고 난 나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잠시 후 찾아낸 자료에서 정서가 고려 의왕의 이모부라고 적어둔 건 뜬금없다. 그때서야 정과정곡이며 정서와 의왕의 관계가 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의왕의 명에 의해 그의 고향 땅 동래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문신의 난 이후 거제로 옮겨 왔다는 사실까지. 몽돌에 새겨진 글씨, 새벽 ‘효’ 를 보더라도 두 사람은 둔덕기성에서 오랜 만에 만나 뜻을 모으고 화해를 한 것 같다. 그러니 세속에 물들지 않은 거제는 화해와 화합의 땅이다. 내려다 본 견내량과 통영은 의왕과 정서의 심적 거리만큼이나 가깝다. 두 곳으로 나뉜 바다를 화염으로 맞붙이려는 듯 벌겋게 변해간다. 바다가 저리 붉을 수도 있나 보다.
나는 택시를 타고 은행 ATM이 설치된 곳으로 간다. 날품팔이해서 모아둔 통장의 잔액을 죄다 인출하려는 거다. 대기시켜 둔 택시로 유 치수가 입원한 요양병원을 향해 달려간다. 좌우로 굽은 해안길을 달리는 동안 궁리를 시작한다. 몰입을 하다 보니 멀미가 나서 어지럽지만 그깟 일 쯤 어떠랴 싶다. 어쩌면 내가 고향을 위해 자그마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 때문이다. 어둠이 깃들고 있는 요양병원은 멀리서보더라도 간판에 불이 훤하게 밝혀져서 찾기가 수월하다. 급한 마음에 주머니를 뒤진다. 잔돈이 보이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지폐 한 장을 내밀고는 나머진 팁이라며 문을 급히 닫는다. 입구 편의점에서 주스 한 통을 사서 한달음에 유 치수의 병실로 들어간다. 식사를 마친 그는 누군가가 병문안을 오며 사다 놓은 요구르트를 빨대를 꽂아 빨아들이는 중이다. 한때 거제 사람들의 명운을 들었다 놨다 하던 사람이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고 있다. 나는 막 사 온 주스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연다. 이 정도는 돼야 그의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목이 마른 유 치수가 목울대를 꿀럭거리며 주스를 들이켜는 동안 넌지시 얘기를 건넨다.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을 몽땅 드릴 테니 하시던 일을 제게 전수해 주실 순 없을까요?”
주스를 마시던 유 치수가 컥컥거리며 가슴을 두드린다. 나의 뜬금없는 제의에 사레가 걸린 거다. 멀쩡한 사람의 숨통을 끊을 듯한 말을 들어서다. 꿈에 왕관을 쓴 남자가 나타나 죽으려던 자기를 살려 지금껏 버텨 온 목숨 아닌가. 그가 천장을 올려다본 뒤 고개 숙여 뼈만 남은 몸을 찬찬히 훑어본다. 의사 말로는 얼마 안 가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지만 한 번 망가진 몸이 낫는다는 게 쉬운 일인가. 나이가 있는데. 그의 입에서 보일 듯 말 듯 한숨이 새 나오는 게 보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쥐고 있던 봉투를 그에게 건넨다. 아저씨 몸이 낫게 되면 제 자릴 돌려 드릴게요, 라고 말한다. 반노인은 그가 입원한 후 병원비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고 했다. 봉투를 본 그가 눈을 번쩍 뜬 뒤 고개를 숙이고 한 동안 들지 않는다. 얼마 후 어깨를 들썩거리던 그가 환자복 바지에 굵은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받아 쥔 봉투를 두 손으로 구기고 또 구긴다. 구겨진 봉투는 말라가는 팔 다리며 허리의 참담한 몰골이랑 비슷하다.
구겨진 봉투를 살피던 그가 나를 향해 젖은 눈망울을 들어 보인다. 곧이어 왼손으로 침대 아래를 더듬어 얇은 대학 노트 한 권과 또 다른 무언가를 꺼낸다. 뒤의 것은 오방색 꽃수술 달린 꽹과리채다. 두 가지를 함께 내 손에 쥐어준다. 나는 낡고 때 묻은 노트를 살핀다. 겉장에는 내용을 알 수 없게 문서라고만 적혀 있다. 뼈만 남아 버석거리는 그의 손이 내 손등에 포개진다. 어린 나이에 피붙이들의 죽음을 연이어 지켜본 게 한 평생을 장례 도우미로 살아가라는 운명이었을 거라고 한다. 내가 각설이 타령을 구성지게 해 낸다는 소문이 쫙 깔렸으니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꽹과리채의 오방색 꽃수술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낡아빠진 노트를 펼쳐본다. 첫 장에 삐뚤빼뚤 글씨가 적혀 있다. 어하넘 어하넘 어하리 넘차 어하넘. 그의 가슴에 맺힌 한이 구불구불 적은 몇 글자 속에 죄다 녹아있는 느낌이다. 각설이 타령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자료 찾느라고 방방곡곡을 누볐어. 선소리꾼은 그게 재산이니까. 노인이 죽으면 회심곡이나 백발가를, 젊은이는 화초타령이나 갑자문을 읊어주면 되지만 말야. 출상 전 부모은중가를 부르면 상주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지. 오장육부를 써서 소리를 낸다는 게 신들리지 않고는 못 해. 멀쩡한 정신으로 세 시간 동안 고함을 질러 댈 장사가 어디 있겠어? 그러니 난 이제 글렀지 뭐야.”
나는 어릴 때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는 유 치수의 선소리 하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영정과 혼백, 향로를 실은 영여를 앞세운 장례 행렬에서 스무 명 장정이 울러 맨 대여 위에 올라가 토해내는 짧은 소리는 하늘로부터 울려나는 것만 같았다. 귀를 거쳐 가슴 언저리를 휘돌아 머리를 궁궁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밑바닥에 눌어붙어있던 삶의 더께를 일시에 걷어주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때문에 상여가 나갈 때마다 뒤따라 다니며 그의 흉내를 내곤 했다. 내려다보는 유 치수의 얼굴 위로 지난날들의 쩌렁쩌렁한 패기가 덧씌워진다. 포개진 그의 손을 통해 묘한 기운이 전해져 온다. 묘한 긴장이 담겼던 가슴에 더운 기운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온 몸이 근질거린다. 입에서 각설이 타령이 절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의 손을 살며시 걷어낸 나는 꽹과리채와 노트를 들고 병실을 벗어난다. 등 뒤로부터 달려든 그의 메기는 소리가 고막을 마구 때리는 것 같다. 그가 왕관을 쓴 남자의 염력을 보태서 나를 둔덕기성으로 떠민 걸까. 어느 때보다 몸이 가볍고 걸음에 힘이 실린다. 밤새 각설이 타령을 불러 젖혀도 너끈할 정도다.
홀린 듯 택시를 타고 둔덕기성 유적지에 다다른다. 여느 때와 달리 숨도 가쁘지 않고 땀이 흐르지도 않는다. 눈앞이 환해지면서 한 번도 왼 적이 없는 부모은중가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회심곡을 부를 때는 부모의 정을 알지 못하는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각설이 타령은 어느 때보다 구성진 리듬을 탄다. 흥에 겨워 타령을 쏟아내는 동안 우두봉 너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메기는 소리를 받으려는 뒷소리꾼들의 후렴이다. 어널 어널 어어화 어화 넘차 어어화. 메기고 받는 소리가 둔덕기성을 가득 메우는 동안 옛날 개경에서 거느리던 장수와 병사들이 다시 모여든 것 같다. 왕관을 빼앗기고 둔덕으로 쫓겨 왔던 의왕의 혼령이 이제야 가슴에 품었던 한을 내려놓고 저승길로 떠날 모양이다. 그의 애첩이었던 반 여인을 앞세우고 떠나가는 보랏빛 행렬이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흔들린다. 나는 의왕의 행차가 멀어지는 걸 쫓기 위해 눈을 번쩍 떠본다. 눈을 씻고 살펴도 보이는 건 엇비슷한 크기의 몽돌뿐이다. 한때의 호령이 이토록 오래 둔덕기성에 기념비처럼 세워져 있나보다. 의왕은 같은 시기 기독교 세력을 물리치고 이슬람권을 통일 시켰던 영웅 살라딘을 알고 있었을 것만 같다. 이슬람 민족의 영웅인 그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동상까지 세워져 있다. 순간,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거제대교며 거가대교가 놓여 육지로 변한 섬에 새벽의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를 거라는 가르침을 이 곳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종은 정중부로부터 왕권을 되찾자고 의병을 일으킨 신하 김보당과 함께 경주 계림으로 갔다. 김보당의 모의가 정중부의 귀에 들어가 반란은 실패하고 말았다. 위협을 느낀 무신 세력이 김보당을 죽이고 이의민을 계림으로 보냈다. 그는 의왕에게 술 한 잔을 건네 안심시킨 뒤 등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말았다. 그 뒤 의왕의 시신은 곤원사 북쪽 연못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졌다. 그 얘길 떠올린 나는 의왕을 위해 해원가를 불러드리려고 오장육부의 힘을 끌어 모은다. 뼈가 꺾이는 아픔이 몰아치던 순간을 잊으시라는 뜻이다. 그때였다. 천문이 열렸는지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손에 쥔 꽹과리채 오방색 꽃수술이 너풀거리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깨갱 깨갱 꽹과리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두봉 너머에서 길 끄는 소리의 박자에 맞춰 받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어하넘 어하넘 어하리 넘차 어하넘. 시해 당해 왕위를 되찾을 거란 꿈을 이루지 못한 의왕이지만 그가 정서에게 적도록 한 새벽 ‘효’ 글자가 새겨진 몽돌이 둔덕에 남겨져 있지 않은가. 항공모함 못지않은 둔덕기성과 마을 사람들이 땀 흘려 져다 나른 몽돌이 가득 쌓여 있는 고향, 이곳에 새벽처럼 강한 기운이 머잖아 뻗칠 거란 걸 돌에 새긴 글씨가 말해 주고 있다.
<79매, 끝>
제1회 블루시티 거제문학상 소설 심사평
거제문학의 발전을 항상 기원해온 입장에서 <블루시티 거제문학상> 제정에 진정으로 박수를 보낸다. 문학의 융성에 상이란 제도가 꼭 필수는 아니지만, 긍정적 촉진역할을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첫 회인만치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으나, 회가 거듭될수록 규모가 커지면서 실질적 안정이 정착되리라 기대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세 작품 <불의 땅>, <꿈꾸는 몽돌>, <풍경>을 읽어보면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소설은 문학의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인간과 그 삶을 구체적으로 극명하게 다루는 표현형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이상의 엄격한 기본형식과 규칙에 순응함으로서 ‘소설의 품위’를 지니고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다운 작품이 된다.
<꿈꾸는 몽돌>은 다른 두 작품과 견주어 비교우위가 뚜렷하다. 참신한 소재를 예술성으로 빚어낸 솜씨가 뛰어나고, 소설의 가장 기본인 문장 구사력이 안정적이다. 총평하자면 소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흠을 잡자면 몇 군데 눈에 거슬리는 고의성 모호함이다. 쓴 사람 본인은 개성적 ‘장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여행가이드와 관광객 관계에서 ‘명확한 정보전달’이 바람직한 소통의 첫 번째 기본이듯, 소설가로 성공하려면 독자의 입장에서 자기 작품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가지라고 충고하고 싶다.
당선을 축하하며, 이 작가의 더 우수한 다음 작품에 기대를 걸어본다.
(소설부문 심사위원: 손영목/김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