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우리 동네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두 명. 아직 검거되지 않은 그들의 첫 대면 현장을 탐문했다.
<우리동네>|감독 정길영|제작 ㈜아이엠픽쳐스|출연 오만석, 류덕환, 이선균|개봉 2007년 12월 예정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가지다. 철없이 뛰어노는 아이부터 하루하루가 힘겨운 수험생,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 황혼기의 노인, 그리고 조용하고 친절한 연쇄살인범까지…. 모든 살인범들은 따지고 보면 어느 동네의 주민이다. 심지어 운 없는 어느 동네에는 두 명의 연쇄살인범이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지독히 운 없는, 그런 동네가 여기 있다. 바로 성북구 석관동에서 한창 촬영 중인 <우리동네>다.
<우리동네>에 사는 두 연쇄살인범의 이름은 경주(오만석)와 효이(류덕환)다. 경주는 10년 전 충동적으로 벌인 살인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백수 추리소설가 지망생. 효이는 선량한 얼굴과 눈빛으로 경주의 소설을 교본 삼아 이미 4번째 살인을 즐기고 있는 연쇄살인범이다. 경주의 살인본능이 되살아나고, 사건을 담당하는 강력반 형사이자 경주의 절친한 친구 재신(이선균)이 가세하면서 세 명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효이가 일하는 ‘어린왕자 문구’에 경주가 찾아오는, 두 살인마의 첫 대면을 찍고 있다. 건너편엔 초등학교가, 문구점 주변으로는 오래된 꽃집과 경쟁 문구점 등이 늘어선 평범하고 좁은 거리가 살인마들의 첫 대면 장소라니,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문구점 일대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동족끼린 알아본다고 했던가, 효이와 언제나 함께하는 알래스칸 말라뮤트 ‘쏘냐’마저 모르는 그의 본 모습을 경주는 알고 있는 듯했다. 문구점 입구에서 오래된 가족사진에 맞는 액자가 있는지 묻는 장면일 뿐이지만 오만석과 류덕환의 눈빛은 경계심 어린 살의로 번득였다.
그들의 만남을 예의주시하던 정길영 감독은 두 살인마의 동선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또 한 명의 등장인물 같았다. 류덕환에게 “인기척을 느끼면 이 정도부터 돌아봐”라고 연기시범을 보이다 어느샌가 줄자를 들고 거리를 재고 있다. 몇 차례 촬영 끝에 오케이 사인이 났건만 모니터를 확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탭들이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감독이 둘의 모습을 더 타이트하게 잡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카메라와 배우의 간격은 불과 한두 발자국이다. 재촬영, 또 재촬영. 붐 마이크를 든 녹음부 스탭 얼굴이 땀범벅이다. 몇 차례 대사가 더 오고 간 후에야 다시 오케이 사인이 나온다.
바쁘게 장비들을 정리하는 스탭 사이사이로 서성거리는 이들이 있다. 촬영 중인 동네의 주민들이다. 대부분을 석관동 주변 야외에서 촬영하는 <우리동네>의 일일 현장시사회 관객들인 것이다. 그들이 보았던, '우리동네 살인마’들의 속마음은 올해 말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선원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