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나무[胡桃]】 「[胡桃]_가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호두나무는 호두라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이다. 감이 달리면 감나무라 하고 사과가 열리면 사과나무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하면 목본 수종의 이름에 나무라는 접미사를 당연한 것처럼 붙인다. 하지만 과일 나무 이름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 한자어에서 유래하는데 중국에서는 원래 열매와 나무를 같은 단어로 쓴다. 예를 들면 호도(胡桃)는 그 열매를 뜻하지만 그 나무 자체도 뜻한다. 원래 한자가 생성될 때 나무 목(木) 변(邊)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열매라기보다는 나무 그 자체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인 것이다. 즉 호도(胡桃)에서는 도(桃) 자에 나무를 뜻하는 목(木)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에 와서 열매와 나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나무를 의미할 때는 거의 철저하게 끝에 --나무라는 접미사를 붙이려고 애쓴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열매 뒤에 –열매라는 접미사를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매 자체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서 그런지 원래 나무를 지칭하기 위하여 만든 글자가 이제는 열매가 차지하고 나무는 끝에 접미사 즉 혹을 달게 된 것이다. 이런 습관이 우리나라에서 비롯되어 점차 일본과 중국으로 전파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호도(胡桃)에서는 아직 우리나라 외에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호도수(胡桃樹)나 호도목(胡桃木)이라는 말보다는 열매에다가 접미사를 붙이는 호도과(胡桃果)나 호도실(胡桃の実)이라는 단어가 더 흔하다. 그대신 우리나라에서는 호두열매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호두는 원래 한자 호도(胡桃)에서 온 말이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음운변화를 일으켜 호두로 변했다. 이는 자도(紫桃)가 자두가 되고 앵도(櫻桃)가 앵두가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모두 두로 변한 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그래서 식물학계에서도 호도(胡桃)는 호도나무가 아닌 호두나무를 정명으로 하고 자도(紫桃)는 자도나무가 아닌 자두나무를 정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앵도(櫻桃)는 아직도 앵도나무라고 등록하여 표준말에 어긋나게 쓰고 있다.
호두는 워낙 오래 전부터 열매를 먹기 위하여 인류가 널리 재배하던 수종이므로 그 원산지가 명확하지 않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또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좀 더 넓게 서쪽으로 페르시아를 지나 튀르키예까지 동으로는 중국 신강성 즉 서역까지를 원산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기원전 300년대 인물인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에서 귀국하면서 가져왔다고 Persian walnut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walnut라는 영어 자체가 외국 즉 foreign을 뜻하는 wealh와 nut의 합성어라고 한다. 왜냐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호두가 로마 즉 이탈리아를 거쳐서 그 당시 Gaul로 불리던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을 통하여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서역(西域)에서 온 복숭아를 닮았다고 호도(胡桃)라는 이름을 붙였다. 胡(호)는 중국에서 고대 서역과 북변(北邊)에 살던 소수민족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중에 중국 영토에 포함된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전체를 서역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확하게 어디서 도입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중국 신강(新疆)이 파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중국도 호두의 원산지라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호두가 중국 원산으로 오래 전에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서방에서는 중국 원산지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호도(胡桃)의 호(胡)를 서역이 아닌 이상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우선 호(胡)를 단단하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단단한 복숭아라는 뜻으로 호도(胡桃)라고 엉뚱하게 설명하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설은 녹색 껍질 속의 단단한 핵(核)을 과일로 식용하므로 핵도(核桃)라고 하다가 신강어로 核(핵)과 발음이 같은 胡(호)로 변하여 胡桃(호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글쎄 후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명대 본초학자인 이시진(李时珍)이 본초강목(本草纲目)에서 언급한 내용이라서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따르려고 해도 이것만은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원산지 중 하나이든 아니든 중국이 전세계 호두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어 압도적인 세계 최대 호두 생산국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호두의 학명 Juglans regia L.는 린네가 식물분류학을 창설하면서 직접 명명한 학명이다. 린네가 1753년 그의 저서 식물의 종에서 엄청난 숫자인 약 5,000종의 식물들에게 학명이라는 새로운 2명법 체계의 이름을 붙였지만 대부분 기존에 유럽에서 널리 불리던 이름으로 붙였다. 하지만 이 속명은 기존 이름을 제쳐두고 그가 특별히 만들어 붙였다는 것이 후문이다. 종전에 있던 이름을 사용하였다면 아마 속명이 Juglans가 아닌 Nut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왕인 주피터의 Ju에다가 견과 즉 nut라는 뜻의 라틴어 glans를 합하여 만든 신조어인 것이다. 린네 또는 그 당시 유럽인들이 호두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특히 전세계에 호두나무속 21개 수종 중에서 식용으로 가장 적합한 수종인 이 호두나무에는 국왕 또는 왕족을 뜻하는 영어 royal에 상응하는 라틴어 regia를 종소명으로 썼다. 그렇게 하여 하늘의 왕을 속명으로 지상의 왕을 종소명으로 한 학명이 탄생한 것이다. Juglans regia! 세상에 이보다 더 고귀한 학명이 있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이 호두나무는 북위 30~50°에서 남위 30~40°까지 그러니까 극한지역을 제외한 지구 전 지역에서 재배하고 있어 그만큼 전인류에게 사랑을 받는 인기 높은 소중한 유실수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두가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자생종 가래나무가 있었다. 이 가래를 추자(楸子)로 알고 그렇게 불렀기에 호두가 도입되자 당나라 추자라는 의미에서 당추자(唐楸子)라고 불렀다. 그 기록이 고려 고종 때인 1216∼1230년 사이로 추정되는 시기에 한림의 여러 유학자들이 지은 경기체가인 한림별곡의 唐唐唐(당당당) 唐楸子(당추자) 皂莢木云云(조협목운운)이라는 대목에 당추자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건 누가 봐도 중국에서 본 호두나무가 아니라 국내서 자라는 호두나무를 두고서 노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후 고려말 대유학자인 목은 이색(李穑, 1328~1396)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에서는 호도(胡桃)가 나오지만 이건 원나라에서 유학하고 벼슬까지 한 목은선생인지라 아무래도 중국에서 본 호도로 판단된다. 1349년 원나라시절 작시한 것으로 보이는 敬僮索胡桃(경동색호도)라는 제목의 시와 서천(西天) 제납박타존자(提納薄陁尊者)의 부도명(浮屠銘)이라는 문장에 大理國(대리국) 吾却衆味(오각중미) 但食胡桃九枚度日(단식호도구매도일)이라고 즉 ‘대리국(大理國)에서는 내가 모든 음식을 물리치고 호두[胡桃] 알 아홉 개만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라는 내용이다. 둘 다 배경이 고려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천안시에 있는 광덕사라는 절에 가면 수령 약 400년의 천연기념물 호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간 무신 류청신(柳淸臣)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나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호두나무의 수명은 대개 100~200년으로 400년이라면 최대치이다. 글쎄 한림별곡에서는 이미 그 이전에 당추자라고 노래하고 있으므로 그 당시 류청신선생이 광덕사에 호두나무를 심었다는 것이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고려 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지금의 광덕사 나무는 그 후손이겠지만 말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 호두가 당나라와 교류가 빈번하였던 신라시대에 도입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초기에는 당추자(唐楸子)와 호도(胡桃)가 함께 보이다가 점차 당추자(唐楸子)는 사라지고 호도(胡桃)로만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와서 호도가 호두로 변하여 오늘날의 표준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