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 절약할 수 있는 것을 새해에는 하나씩 적어 나가기로 결심을 해 보는데, 이런 결론을 마음에 심기까지는 그동안의 주부생활에서 얻은 경제감각이 발동한 것이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지출되는 비용과 매일의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커서, 절약을 한다면 결국에는 이곳에서 줄이는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절약하느라 너무 빠듯해지면 사실 인생 사는 낙이 뭔고,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2013 절약 항목 1 - 커피
첫째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 청소 해놓고 점심에 장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커피점에 들러 원두 로스팅한 향이 그윽한 곳에서 초콜릿도 사먹는 사치를 가끔은 누리곤 했는데, 2012년에는 특별한 만남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들르지 못했다. 다행히 커피점에서 원두커피를 믹스커피처럼 물에 타 먹을 수 있는 신제품이 나와서 지난해에는 집에서 즐겨 먹었었다. 그런데 매일 한 포씩 먹다보니까 가끔 나가서 커피 마시던 것보다 비용이 더 드는 것이다. 간편하게 고급 커피의 쓴 듯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생활비에 쫓기면서는 이를 줄이기로 한다. 2013년에는 일반 블랙커피에 남편이 한 병 정도는 집에 키핑해 놓는 꼬냑을 조금씩 곁들이는 것으로 나의 생활비를 줄이고자 한다.
절약 2 - 공책
집안 정리를 하다보니까 쓰지 않은 공책들도 나오고, 필요할 것 같아서 사다 놓은 대학노트들도 나온다. 신문 스크랩 하기에는 아이들 그림일기장이 적당히 커서 좋길래 그것을 사다 썼는데 페이지 수가 적어서 금방 동이 난다. 아이들이 이미 썼거나 쓰지 않은 공책들을 활용해서 신문 스크랩을 하기로 한다. 집에 묵혀놓고 있는 것은 죄다 활용한다는 정신.
어제는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하고, 해양수산부 부활시킨 내용을 대학노트에 스크랩했고, 오늘은 둘째가 쓰다가 남겨둔 작은 영어단어 공책에 경제부처 조직 변천사 도표를 오려 붙였다. 그리고 아이들 방학공부 페이퍼 만들면서 읽은 신달자의 시 한 편도 스크랩 철에 붙였는데 나중에 스크랩 노트를 볼 때 다시 보면 느낌이 새로울 것 같다. 이야기 나온 참에 詩를 적어 본다.
아가(雅歌) * 6
신달자
해가 저물고 밤이 왔다
그러나 그대여
우리의 밤은 어둡지 않구나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어둠은
물처럼 부드럽게 풀려
잘 닦은 거울처럼
앞뒤로 걸려 있거니
그대의 떨리는 눈썹 한 가닥
가깝게 보이누나
밝은 어둠 속에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나는 글을 쓴다
첫장에 눈부신 그대 이름
절로 밝아오는 하나의 등불
내 생(生)의 찬란한 꽃등이 켜진다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시리즈 기사는 한 면을 그대로 뜯어서 절반 접어서 아이들 쓰던 화일을 펼쳐서 두겹 그대로 철끈으로 묶으니까 좋다. 철끈은 파나 시금치 한 단씩 묶는 농협끈(가느다란 철사가 포장종이로 싸여 있는 끈)을 사용하니 좋다. 철끈이 떨어져 문방구에 가려면, 설겆이에 청소에 책상 먼지떨이에, 세탁기에, 스크랩에, 인터넷 리뷰에, 그날 날씨의 외출복 코디에, 머리라도 감고 화장하고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에(한 가지라도 안하면 온갖 교묘한 태클이 길거리든 상점에서 나옴) 인생이 너무 괴롭다. 가능한 사야하는 일상 품목을 최대한 줄여나가기로 하는 것이 나의 복수이자 새해 결심이다.(2013년 1월 17일 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