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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창작 연구 스크랩 * 신동엽 시인 ( 시모음 )
은하수 추천 0 조회 201 16.03.05 14: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신동엽 시인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전주사범,단국대사학과,건국대 대학원 국 문과 졸업.
19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1963년 시집 "아기녀"를 간행
1967년 서사시 "금강"을 발표
1969년 간암으로 별세
1970년 "신동엽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되었으나 긴급조치 9호 위반 이유로 판금됨
1979년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 됨
1982년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신동엽창작기금"을 제정

 

 

 

가로수

 

 

 숱 짙은 소녀의 뒷꼭지 마냥

  오월의 푸라타나스에 바람 닿을 때마다

  무성한 잎가지가 푸짐하게 쫓기어
 
  머리다발 파듯 파듯 살에 붙었다
.

 

 

고향

 

 

하늘에
  흰 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고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교실에서

 

 

마음은 울고
  있었다

  눈은 책을
  보며도 뒷짐 진 채

  마음은 울고
  있었다

  온 방안이 웃어
  함빡 흐드러질 때도

  마음은 노상
  울고
  있었다

  아니라고 너는
  저을테지
  만

  그 소리, 들은
  분은 꼭
  있었으리라

  영원을 뚫고 가는,
  늘메기 울음보다
  아둡고 짙은

  그
  깊은 소리
  
  그
  답답한 소리
  
  마음은 울고
  있었다
  
  노상 걸음 걸으며도
  눈은
  반 감은 채.....
  
  그 무너지는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 가을

 

 

날씨는 머리칼 날리고
  바람은 불었네


  냇둑 전지(戰地)에.

 

  알밤이 익듯
  여울물 여물어
  담배 연긴 들길에
  떠 가도.

 

  걷고도 싶었네
  청 하늘 높아가듯
  가슴은 터져
  들 건너 물 마을.

 

  바람은 머리칼 날리고
  추석은 보였네
  호박국 전지에.

 

  버스는 오가도
  콩밭 머리,


  내리는 애인은 없었네.

 

  그날은 빛났네
  휘파람 함께
  수수밭 울어도
  체부(遞夫) 안 오는 마을에.

 

  노래는 떠 갔네. 깊은 들길
  하늘가 사라졌네, 울픈 얼굴
  하늘가 사라졌네


  스무살 전지에.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나의 나

 

 

 

사양들 마시고
  지나 오가시라
  없는 듯 비워둔 나의 자리.

  와, 춤 노래 니겨
  싶으신 대로 디뎌 사시라.

  한물 웃음떼 돌아가면
  나 죽은 채로 눈망울 열어
  갈겨진 이마 가슴과 허리
  황량한 겨울 벌판 돌아보련다.

  해와 눈보라와 사랑과 주문(呪文),
  이 자리 못 물고
  굴러떨어져 갔음은
  아직도 내 봉우리 치솟은 탓이었노니.

  글면 또 허물으련다
  세상보다,
  백짓장 하나만큼 낮은 자리에

 

  나의 나
  없는 듯 누워.

  고이 천만년 내어주련마.
  사랑과 미움 어울려 물 익도록.
  바람에 바람이 섞여 살도록.

 

 

 

내 고항은 아니었었네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허구헌 홍시감이 익어나갈 때
  빠알간 가랑잎은 날리어 오고.

  발부리 닳게 손자욱 부릍도록
  등짐으로 넘나들던
  저기
  저 하늘가.

  울고는 아니
  허리끈은 졸라도
  뒤밀럭,
  뒤밀럭
  목메인 자갈길에.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그 언젠가
  먼산바리 소녀 떡목판 이고 섰던 

  영 너머 그 떨린 소문 들은 안개 도시.

  ------눈물론 아니
             뱃가죽은 졸라도

             열차창(列車窓)
             꽃 언덕
             목메인 면회길에------

  내 고향은 아니었었네
  허구헌 아들딸이 불리어 나갈 때
  빠알간 가랑잎은 날리어 어고.

  발부리 닳게 손자욱 피맺도록
  조상들 넘나들던 
  저기

  저 하늘가.

 

 

 

 

 

너는 모르리라

 

 

 

너는 모르리라
  그날 내 왜
  넋나간 사람처럼 고가(古家) 앞
  서 있었던가를

  너는 모르리라
  진달래 피면 내 영혼 속에
  미치는 두 마리
  짐승의 울음

  너는 모르리라
  산을 열 굽이 넘고도
  소경처럼 너만을 구심(求心)하는
  해와 동굴과 내 사랑

  너는 모르리라
  문명된 하늘 아래 손넣고 광화문 뒷거리 걸으며
  내 왜 역사 없다
  벌레 삥·····니까렸는가를

  하여
  넌 무덤 속 가서도 모를 것이다
  너 안 보는 자리서
  찬 돌 쓸어 안으며
  그 숱한 날 얼마나 통곡했는가

 

  그리하여
  넌 할미꽃 밑에서도 모를 것이다
  그날 왜 내
  눈물먹은 네 진주에 손대지
  안했는가를.
  그리고 그것은 몰라야 쓴다.

 

 

노래 하고 있었다

 

 

 노래하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 속에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풍경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물결
  양털 같은 세월 위서
  너는 노래하고 있었다.

 

  죄없는 사람
  가로수 밑 걸으며
  또각또각 구둣소리
  눈녹아 하늘로 번질 때

  하늘은 바람
  대지 위 고요

  노래하고 있었다.
  창가 기대앉아
  지나가는 들녘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로수 위
  구름 위
  보이지 않는 영화로운
  미래로의 소리로,

  거대한 신은
  소맷깃 뿌리며
  부처님 같은 얼굴로

  내 괴로움 위서
  노래하고 있었다.

 

 

 

 

 

너에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진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터
  새 순 돋듯

  허구많은 자연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눈동자

 

 

묻지 말고 이대로 보내 주옵소서
  잊어버리고만 싶은 눈동자여

  말곳 하면, 잘못
  꿈 깨어져 버릴
  깨끗한 얼굴

  눈물 감추우며
  제발 이대로 돌아가게
  못본 척 해주소서

  내 목숨 다 주고도
  떠나기 싫은 눈동자여.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우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눈 날리는 날

 

 

 

지금은 어디 갔을까.

  눈은 날리고
  아흔아홉 굽이 넘어
  바람은 부는데
  상여집 양달 아래
  콧물 흘리며
  국수 팔던 할멈.

 

  그 논길을 타고
  한 달을 가면, 지금도
  일곱의 우는 딸들
  걸레에 싸안고
  대한(大寒)의 문 앞에 서서 있을
  바람 소리여

  하늘은 광란······
  까치도 쉬어 넘던
  동해 마루턱
  보이는 건 눈에 묻은 나,
  나와 빠알간 까치밥.

  아랫도리 걷어올린
  바람아,
  머릿다발 이겨 붙여 산막(山幕) 뒤꼍
  다숩던
  얼음꽃
  입술의 맛이여.

  눈은 날리고
  아흔아홉 굽이 넘어
  한(恨),
  한은 쫓기는데
  상여집 양달 아래
  트렁크 끌르며
  쉐탈 갈아입던 여인·····

 

 

 

단풍아 산천

 

 

 즐거웁게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
  네 마음은 열두 번 뒤집혔어도
  즐거웁게 가을은 돌아오고 있었지

  여보세요
  신령님
  말씀해 주세요

  산과 난 어느쪽이
  더 아름다울까요

  그리고 그인
  나와 인연이 있을까요

  흐들갑스레 단풍은 피어나고 있었지
  네 마음은 열두 번 둔갑 떨었어도
  단풍은 내 산천 물들여 울었지

  보세요
  상천(上天)계신 한울님
  만날 수 있을까요
  옥(玉)으로 깎을
  출렁일 가슴

  보세요
  새 배 타고
  목성(木星)에나 가면
  우린 이 지구사람 사랑할 수 있을까요

  피 터지게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
  한반도 대관령 주막집에서
  입가리고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지

 

 

 

   

별밭에

 

 

 

바람이 불어요
  눈보라 치어요 강 건너선.

  우리들의 마을
  지금 한창
  꽃다운 합창연습 숨 높아가고 있는데요.

 

  바람이 불어요.
  안개가 흘러요 우리의 발 밑.

  양달진 마당에선
  지금 한창 새날의 신화 화창히
  무르익어가고 있는데요.

  노래가 흘러요
  입술이 빛나요 우리의 강 기슭.

  별밭에선 지금 한창
  영겁으로 문 열린 치렁 사랑이
  빛나는 등불마냥
  오손도손 이야기되며 있는데요.

 

 

 

 

둥구나무

 

 

뿌리 늘인
  나는 둥구나무.

  남쪽 산 북쪽 고을
  빨아들여서
  좌정한
  힘겨운 나는 둥구나무
  다리 뻗은 밑으로
  흰 길이 나고
  동쪽 마을 서쪽 도시
  등 갈린 전지(戰地)

  바위도 무쇠고
  투구고 증오고
  빨아들여 한 솥밥
  수액만드는
  나는 둥구나무

 

 

 

보리밭

 

 

 

건, 보리밭서
  강의 물결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꿈이었지
.

 

  아무도 모를 무섬이었지
  우리네 숨가쁜 몸짓은.

  사랑하던 사람들은
  기를 꽂고 달아나 버리었나,

  버스 속선 검정구두 빛났고
  우리 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

  그건, 보리밭서
  강의 물결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꿈이었지.

  너의 눈동자엔
  북부여 달빛
  젖어 떨어지고,

  조상쩍 사냥 다니던
  태백줄기 옹달샘 물맛,
  너의 입술 안에 담기어 있었지.

  네 몸냥은 내 안에
  보리밭과 함께
  살아 움직이고,

  맨 몸 채, 뙤약볕 아래
  서해바다로 들어가던
  넌 칡순 같은 짐승이었지.

 

 

 

 

 

봄의 소식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봄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불바다

 

 

 

 줄줄이 살뼈는 흘러내려 강을 이루고
  산과 바다는 마음밭을 이랑 이뤄 들꽃을 피웠다.
  칠월의 태양과 은나래 젓는 하늘 속으로
  신주알 향기 푸른 치마폭 찬란히 흩어져 가고
  더위에 찌는 울창한 원생림(原生林)
  전쟁이 불지르고 간 황토배기 벌판에
  한가닥 바람길이 열려 가느른 꽃뱀처럼
  노래가 기어오고 있었다.

  오월의 숲속과 뻐꾸기 목메인 보리꺼럭 전설밭으로
  황진이 마당 가 살구나무 무르익은 고려땅 놋거울 속에
  아침 저녁 비쳐들었을 아름다운 신라 가인(佳人)들.
  지금도 비행기를 바라보며
  하늘로 가는 길가에
  고개마다 나날이 봇짐 도시로 쏟아져 간
  흰 젖가슴의 물결치는 아우성을 들어 보아라.

  해가 가고 새봄이 와도 허기진 평야
  나무뿌리 와 닿은 조상들의 주막 가에
  줄줄이 태고적 투가리들이 쏟아져 오고
  바다 밑에서 다시 용트림하여 휘올라
  어제 우리들의 이랑밭에 들꽃 피운 망울들은
  일제히 돌창을 세워 하늘을 반란(反亂)한다.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魂)을
  갈가리 찢어
  꽃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으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孤孤)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주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의 세상을 밟아 디디며
  포도안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은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여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 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 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의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눈
  깊게. 높게.
  땅속서 스며나오듯한
  말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 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 
  오, 인간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서시

 

 

아담한 산들 드믓 드믓
  맥을 끊지 않고 오간
  서해안 들녘에 봄이 온다는 것
  것은 생각만 해도, 그대로
  가슴 울렁여 오는 일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또 가을
  가을이 가면 겨울을 맞아 오고
  겨울이 풀리면 다시 또
  봄.

  농삿군의 아들로 태어나
  말썽 없는 꾀벽동이로
  고웁게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워? 때 걷워? 듯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 짤랑 
  꽃가마 타 보고

  환갑 잔치엔 아들딸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 평생 살다가
  조용히 묻혀가도록 내 버려나
  주었던들

  또, 가욋말일찌나, 그러한 세월
  복 많은 歌人(가인)이 있어
  (蜂蝶風月(봉접풍월)을 노래하고
  장미에 찔린 애타는 연심을 읊조리며
  수사학이 어떠니 표현주의가 어떠니
  한단들 나 역 모르는 분수대로
  그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자탄에 맞은 사람
  태백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 제비 돌아와 흙 묻어 나르면

  솟아오는 슬픔이란 묘지에 가 있는
  누나의 생각일까.....?

  산이랑 들이랑 강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머지 않아 나는 아주
  죽히우러 가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이라.

  잘 있으라.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구름이 끼던
  두번 다시 상기하기 싫은
  人種(인종)의 늦장마철이여

  이러한 노래 나로 하여
  처음이며 마즈막이게 하라 
  진창을 노래하여 그 진창과 함께

  멸망해 버려야 할 사람이
  앞과 뒤를 헤쳐 세상에
  꼭 하나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
  두고 두고, 착한 인간의 후손들이여

  이 자리에 가는 길
  서낭당 돌을 던져

  구데기.
  그런 역사와 함께 멸망한 나의
  무덤, 침 한번 더 뱉고
  다시 보지 말아져라.

        

 

 

사랑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북함 가득 담고 오너라
  
  참새처럼 깡똥한, 날매
  가슴차게 안겨 오너라
  
  경(憬)이여
  
  장미처럼 매선 향기
  가시로 쏘아라
  
  화염(華艶)한 눈웃음은
  다음 장(章)으로

 

 

  

 

사랑의 고정(苦情)

 

 

사랑의 고정(苦情)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답니까?
  말슴 마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도
  겉으로 웃으면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되는 거랍니다.

  천지신명이 대자연에 밝으니
  나는 아무델 가나
  알머리처럼 따가워라.

  너의 방에선 너의 보금자리 남새가 난다.

  자신(自信)이 흔들리는 지라
  자꾸
  역확인(逆確認)을 얻으려고

  <자신 있느니라고>
  강조해 보는 것이리라.

  석(石)을 두고의 순수한 상모(想慕)가 아니다.
  어느 누구의 것과 비교하기 위한
  빌미로써의 석(石).
  또는 그것에 반동적으로 대립하기 위한
  방패로써의 석(石).

 

 

  

 

살덩이

 

 

우리들의 이야기는
  걸레

  살아있는 것은
  마음뿐이다.

  마음은
  누더기

  살아있는 것은
  뼈뿐이다.

  오, 비본질적인 것들의
  괴로움이여

  뼈는
  겉치레

  살아 있는 것은
  바람과
  산뿐이다.

  그렇게 많은
  비단을 감았지만

  너를 움직이는 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고깃덩어리 알몸

  물건 없는 산
  소나무 곁을
  혼자서 너는 걸어가고 있고야

  오, 작별한 냄새여
  살덩이가

                             지금 저 산을
                           내려가고 있고야

 

 

 

새해 새 아침을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하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보라
  발 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

  새해엔
  아내랑 꼬마아이들 손 이끌고
  나도 그 깊은 우주의 바다에 빠져
  달나라나 한 바퀴
  돌아와 봤으면,

  허나
  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 않는다.

  금가루 흩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안창
  영원으로 가는 수도자의 눈빛 속에서
  구슬짓는다.

       

 

소녀의 앙탈

 

 

 내가 운다고 


  오는 비가 안 오나 뭐 


  개구리도 우는데 


  울테야, 울테야..

  

 

 

소박 (素朴)한 꿈 

 

 

여름날 어느 산고랑 쓰러져가는 초(草)집
  
  그늘진 마루에선 호리한 처녀 하나가
  
  매방아만 돌리고 있더라.

 

  

 

 

아니요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 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 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 입은 도시계집 사랑했을 리야.

 

 

 

애정 (哀情)

 

 

너 다신 안 돌아온달지라도 


  나 너의 곁에 살리라


  너, 날


  저?란달지라도


  정녕 나 누굴 원망하리야


  지난 날 이내 넘도 널


  괴롭혔음 이래샤.

 

 

여름고개

 

 

산고개 가는 길에
  개미는 집을 짓고


  움막도 심심해라

 

  풋보리 마을선
  누더기 냄새


  살구나무 마을선
  시절 모를 졸음

 

  산고개 가는 길엔
  솔이라도 씹어야지


  할멈이라도 반겨야지

 

    

 

 

초 가을

 

 

 

 그녀는 안다
  이 서러운
  가을
  무엇하러
  또 오는 것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진 궤상(机上) 앞
  초가을 금풍(金風)이
  살며시
  선보일 때,

  그녀의 등허리선
  풀 맥인
  광목 날
  앉아 있었다.

  아, 어느새
  이 가을은
  그녀의 마음 안
  들여다보았는가.

  덜 여문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익은 사람은
  서러워하는 때.

  그녀는 안다.
  이 빛나는
  가을
  무엇하러
  반도의 지붕밑, 또
  오는 것인가·····.

 

 

 

       

 

 

여름 이야기

 

 

 

  팔월의 하늘에는
  구름도 없고
  바람 부는 가로수,
  피난가는 내 소녀는
  영어를 알고
  있었지.

  나뭇게 끄을며
  절길 오른
  바랑,
  산골길 칠백리엔
  이마 훔치던
  원효선사.

  원두막 밑에선 미국 간 아들
  편질 읽으며 칠순 할아버지가
  사관침 장죽에 쑥을 버무려 넣고
  있었지.

  패랭이 달린
  황토 언덕
  젯트편대가
  강을 울리면
  배꼽 내논 아해들은
  풀뿌리 씹으며
  구경을 하고.

  마(馬), 진(辰) 사람네
  조개무덤 쌓던
  댕댕이 넌출 고을엔
  수평 멀리
  함성소리만
  불 질려 오른다.

 

  꽃신 놓인 토방
  놋거울은 닳고,
  콩밭 매는 뒷곁
  황진이 숲속선
  땅 즐겁게
  멍석 딸기가
  익고
  있었다.

 

 

    

 

 

 풍경

 

 

 

쉬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우럽
  이곳 저곳에서
  탱크 부대는 지금
  쉬고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화창한
  도오꾜 교외 논둑길을
  한국 하늘, 어제 날아간
  이국 병사는
  걷고.

  히말라야 산록
  토막가 서성거리는 초병은
  흙 묻은 생고구말 벗겨 넘기면서
  하루삔 땅 두고 온 눈동자를
  회상코 있을 것이다.

  순이가 빨아 준 와이사쓰를 입고
  어제 의정부 떠난 백인 병사는
  오늘 밤, 사해(死海)가의
  이스라엘 선술집서,
  주인집 가난한 처녀에게
  팁을 주고.

  아시아와 유우럽
  이곳 저곳에서
  탱크 부대는 지금
  밥을 짓고 있을 것이다.

  해바라기 핀,
  지중해 바닷가의
  촌 아가씨 마을엔,
  온 종일, 상륙용 보오트가
  나자빠져 딩굴고.

 

  흰 구름, 하늘
  젯트 수송편대가
  해협을 건느면,
  빨래 널린 마을
  맨발 벗은 아해들은
  쏟아져 나와 구경을 하고.

  동방으로 가는
  부우연 수송로 가엔,
  깡통 주막집이 문을 열고
  대낮, 말 같은 촌색시들을
  팔고 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
  동방대륙에서
  서방대륙에로
  산과 사막을 뚫어
  굵은 송유관은

  달리고 있다.

  노오란 무꽃 핀
  지리산 마을.
  무너진 헛간엔
  할멈이 쓰러져 조을고

  평야의 가슴 너머로.
  고원의 하늘 바다로.
  원생의 유전지대로.
  모여 간 탱크 부대는
  지금, 궁리하며

  고비 사막,
  빠알간 꽃 핀 흑인촌
  해 저문 순이네 대륙
  부우연 수송로 가엔,
  예나 이제나
  가난한 촌 아가씨들이
  빨래하며,
  아심 아심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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