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물 사용에 대한 질문을 주신 풀코스님과 전화통화를 드리며 약속한 재래식 정수시스템을 소개합니다
6~70년 대 마을에는 공동우물이나 작두샘이라는 수동 펌프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퍼올려 시멘트로 만든 토관에 아래 그림처럼 물을 가두고 걸러 음용수로 사용하였습니다.
저희집도 70년도 중반까지는 이 정수통에서 걸러진 물을 음용하였지요.
당시는 지하수를 파는 장비가 열악하다보니 삼각대를 세우고 긴 관을 세워놓고 그 속에 막대봉끝에 달린 강가루(지금의 공업용 다이아몬드 날)를 붙인 쇠막대를 돌려 땅을 파고 들어가며 파이프를 연결해서 뚥어진 구멍으로 밀어 넣으며 작업을 하였지요.
머리허연 영감님이 오셔서 이 작업을 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전부 사람이 손으로 작업하던 시절입니다.
그 영감님은 조그만 키에 하얀 모시옷을 입고 단정하게 매무새한 옷이 진흙물에 젖을까 종아리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시고 팔 걷어부친 모습으로 막대관에서 나오는 흙의 종류를 구별하셨습니다.
제가 살던 논산은 평야지대라 맨땅은 진흙이었고 파고 들수록 강모래가 섞여 나왔지요..

제 기억으론 하얀색 가루가 나오면 그때 솟아 나오는 물이 좋은 물이시라며 파들어가기를 하셨지요.
이제 나이먹고보니 그 하얀색 가루와 맑은 물이 나오던 곳이 암반속 지하수 였던 것 같습니다.
암반가루가 나오면 파기를 멈추시고 물색을 보시고 물맛을 보시며 빙긋 해맑게 웃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남니다.
위 그림 중 숯 위에 자갈층을 두며 그 속에 백반과 유황덩어리를 넣어 놓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어른 주먹만한 누런덩어리가 유황덩이였고 하얀 반투명의 덩어리가 백반덩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한 해 한번씩 청소를 하시며 이것들을 갈아넣는 작업을 하셨죠.
그림에서는 뺏습니다.
유황의 유해성과 백반의 효능에 확신이 없어서요...
당시 없던 캐시미어 솜 층은 제가 임의로 넣고 그렸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한번은 아버지께서 푸릇푸릇한 깨진 돌을 한푸대 가져오셔서 자갈층 밑에 넣으시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그 돌은 맥반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제 그제는 글 쓰기못했습니다.
보일러 물집작업,,,,이제야 끝내고 올라왔네요...
어제는 잠간 부여 귀촌한 회원님댁에 갔다왔습니다.
오후 늦게 고속도로가 서부여를 통과하여 지나기에 고속도를 통해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더군요.
참 좋아졌습니다.
부여 공주 세종 조치원 청주...
예전 어릴적 국도 1호선 목포 서울간에 위치한 논산에서 서울 갈량이면 논산 상월 공주 연기종촌 소정리 천안 평택 오산 수원 서울로 이어졌던 구불한 좁은 도로를 타고 하염없이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그 길은 우리가족이 한꺼번에 서울가는 즐거움이 동반했죠.
이제 다 벌써 회한의 세월인가요?
ㅎㅎㅎ
2016.04.25 쟁이돌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