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수성동 계곡, 윤동주 문학관, 목인박물관 목석원을 차례로 찾았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수성동(水聲洞) 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성동(水聲洞)이란 말 그대로 '물소리가 끊임없이 나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 곳이 유명해 진 것은 개발 시기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선 곳이었으나, 2011.7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자연 친화적인 서울가꾸기 일환으로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남산 밑의 아파트와 이 곳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는 과정에 '돌다리(기린교)'가 드러나면서다. 이 돌다리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 가운데 '수성동' 그림에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바로 그 곳이다. 조선시대에 옥인동 일대를 장동이라고 했다.
'윤동주 문학관'은 시인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하며, 인왕산에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었다. 이런 연유로 종로구에서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방치되어 있던 '청운 수도가압장'과' 콘크리트 물 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든 것이다. 가압장은 상수도의 약한 수압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세상사에 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을 맑고 강하게 깨워주며,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한다. 윤동주 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다.(무료 관람)
'목인박물관 목석원'은 2006년 종로구 인사동에서 '목인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가, 2019년 부암동으로 이전하여 '목인박물관 목석원'으로 재개관하였다. 6개의 실내 전시장에는 세계 각국의 목인이 전시되어 있으며, 약 3,000여 평 규모의 야외 전시장에는 한국의 문인석, 무인석, 동자석 등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다채로운 석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도심 속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 자연과 예술을 감상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관람료 1만원, 경로 8천원, 유료 입장한 모든 관람객에게 음료 1잔 제공, 주차장 협소 / 대중교통 권장)
오늘의 투어 코스는 전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 위치한 버스정류장(KT 광화문지사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종로 09번'을 타고 출발하여 종점(수성동계곡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수성동 계곡 - 인왕산 둘레길 - 윤동주 문학관 - 부암동 주민센터까지 걸어가서 여름철 주말에만 운행한다는 셔틀SUV 차량을 타고 목인박물관 목석원까지 왕복구간을 이용하였다. 귀가 시에는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지선버스 7022, 7212번을 타고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에 하차하여 광화문역 전철을 이용하였다.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 입구(마을버스 '종로 09번' 종점)
수성동 계곡의 기린교(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31호로 지정)
큰 바위 암석을 연결하는 돌다리 '기린교'가 놓여 있다. 기린교는 너비와 두께가 각각 35cm(총 너비 70cm), 길이 3.7m의 장대석(長臺石) 2개를 붙여 만든 것으로 한양도성 내에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로 교량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에 그려져 있는 돌다리이다.
사모정(정자)
*** 수성동 계곡과 안평대군 ***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형 수양대군에게 맞서 어린 조카 단종을 위해 목숨까지 걸며 신의를 지킨 왕자였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그는 이곳 수성동 계곡에 '비해당(匪懈堂)'이라는 별장을 짓고 살며 시와 그림을 즐겼다고 한다. '게으름 없이'라는 뜻의 비해는 시경에 나오는 구절인 '숙야비해 이사일인'에서 따온 말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이다.
인왕산 둘레길
무무대 전망대
'수성동 계곡'에서 '윤동주 문학관'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인왕산 둘레길'의 전망대, 서울 시내을 바라보는 전망대의 왼편으로 북악산이 보인다.
무무대(無無臺) : 아무 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무무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사진 전면 중앙에 저 멀리 남산이 보인다.
'인왕산 초소책방'(구. 인왕CP) 카페
이 건물은 1968.1.21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하여 지난 50년간 인왕산 지역을 부분 통제해 왔던 경찰초소로 이용되어 왔으나,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에 따라 서울시와 종로구가 뜻을 모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기존 건물의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살려 폐쇄적이었던 내부공간을 개방하고 일부 훼손되었던 자연을 복원하여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과 전망데크로 조성하였다. 옥상에서는 도심을 전망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것이 특징이다.
인왕산 초소책방(카페) 옥상에서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민족 정신이 강한 지식인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문학에 재능을 드러냈으며,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문과 재학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 등의 작품을 썼다. 특히 '별 헤는 밤'이 널리 알려져 '별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사용이 금지된 우리말로 시를 써 '민족 시인', '저항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이러한 시 창작을 통한 저항때문에 1943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2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울한 식민 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민족 시인 윤동주을 기리기 위해 종로구는 용도 폐기된 수도 가압장을 운동주 문학관으로 조성하였다. 문학관을 통해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시인 윤동주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출생
1925년 명동소학교 입학
1936년 일제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숭실중학교 자퇴, 용정 광명중 4학년 편입
1938년 법대 또는 의대를 원하는 부친과 대립 끝에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41년 정병욱과 함께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 연희전문학교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시를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942년 부친의 권유로 일본유학을 결심하고 히라누마로 창씨 개명, 고국에서의 마지막 작품 '참회록'을 씀,
4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 입학, 10월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학과에 전입학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송몽규 검거 4일 후)
1944년 송몽규와 함께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후쿠오카형무소 이송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3월 7일 송몽규 역시 운명)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시집 출간
서시(윤동주, 1941.11.2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대학 시절
연희전문학교에서 송몽규, 정병욱 등과 함께...
목인박물관 목석원
목석원 뒤로 인왕산 '기차바위'가 보인다.
다양한 문인석 및 무인석
동자석
무덤 앞에서 망자의 시중을 드는 역할로, 경기도 지방의 사대부나 양반의 무덤에 있다. 왕릉에는 문인석, 무인석, 석수 등이 있으므로 동자석은 따로 없다. 남쪽지방에서는 무덤에 있는 작은 석상을 동자석이라 부른다.
하얀집
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현관같은 건물이다. 이해인 수녀 님의 시화전이 시 낭독 영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으며, 안경신(1923~2019, 목인박물관장 김의광의 모친) 여사 님의 자수 전시 공간이 함께 하고 있다
하얀집 옥상에 있는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옹기들, 저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 북한산 ***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산의 북쪽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서울특별시의 북부와 경기도 고양시 사이에 있는 산으로 백운대 - 인수봉 -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불렸다. 화강암 지반이 침식되고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곳곳에 깍아지른 바위 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 내리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이루고 있다.
제주의 뜰
제주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석조물을 전시한 곳이다. 목석원 둘레 뒷편으로 인왕산을 오르는 한양도성(길)이 있다.
너와집
호랑이 바위
해태동산의 해태·해치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로 '해태' 혹은 '해치'라고 불린다. 예로부터 해태는 화재와 재앙을 막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궁궐 입구 등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