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 1:1-2
▣ 약속을 기다림-사도행전 1장-
1. 새로운 책(1:1-2)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눅 1:1-4) 누가는 그 책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 어떤 일을 시작하셨으며 무엇을 가르치셨는가에 대해서 말한다. 이제 사도행전은 주님이 이 땅의 교회를 통하여 계속해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을 말하고 그 진상을 정리한다. 누가복음은 주님이 육체로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 하신 사역을 말하고, 사도행전은 그의 영적인 몸인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서 하시는 사역을 말해 준다.
예를 들면, 1장 24절에서 신자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누구를 사도로 뽑으면 좋을지 보여 주실 것을 구한다. 2장 47절에서는 모임에 수를 더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며, 13장 1-3절에서는 첫선교사를 파송하시는 분은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14장 27절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행하신 일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누가의 복음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도행전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겠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출생과 생애와 교훈,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자신들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란 종교적인 일에 종사하는 조직체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거룩한 기관이며, 이를 통하여 주님의 생명과 능력이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잃어버린 바 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는데, 우리는 그 세상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행 1:3-8
2. 새로운 경험(1:3-8)
그리스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사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셨다. 이 구절은 누가복음 24장 36절 이하와 연관을 지어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군데에서 모두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남아 있어 성령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교훈하셨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성령의 세례(침례)는 세례(침례)요한에 의해 이미 알려졌던 일이다(마3:11/막 1:8/눅 3:16/요 1:33). 그리스도께서는 불로써 세례(침례)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음에 유의하자. 불의 세례(침례)란 환란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에게 임할 고난을 말한다.
성령의 세례(침례)가 성취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모든 신자들을 교회라고 알려지게 되는 한 몸으로 연합하게 했다(고전 12:13). 둘째로, 성령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자들에게 주셨다. 끝으로, 성령은 신자들이 방언을 말하며 유대인들을 일깨울 수 있는 다른 기적적인 일들을 이룰 수 있게 하셨다(고전 1:22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한다). 사실은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성령의 세례(침례)가 두 번 발생한다. 즉, 2장에서 성령이 유대인들에게 세례(침례)를 주셨을 때와, 10장(11:16 참조)에서 첫이방 신자들에게 임하셨을 때이다.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이 영적인 몸에 속하는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다. 성령의 세례(침례)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충만히 채워달라고 구하거나(엡 5:18), 또는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기름을 부어달라고 구할 수는 있지만(행 10:38), 성령의 세례(침례)를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다.
사도들이 왕국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구한 것은 잘한 일인가?(6-8절) 잘한 일이다 ! 마태복음 22장 1-10절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과 왕국을 영접할 또다른 기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었다. 마태복음 19장 28절에서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열 두 보좌에 앉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눅 22:28-30 참조).
마태복음 12장 31-45절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그를 대적하여 범죄한 후에라도 구원을 얻을 또다른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언급하셨으며, 그들을 격려할 표적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것은 죽음, 장사와 사흘 후의 부활을 나타내는 요나의 표적이었다.
사도들은 그들의 사역이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 될 것과 이스라엘에게 세번째로 왕국을 제시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서론 참조). 이제 이들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할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 이 민족이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 그리스도는 “예 또는 아니요“라고 응답하지 않으신다. 만일 부정으로 응답하신다면 사도들은 자기 백성들에게 왕국을 진정으로 제시하지 않을 것이며 사역에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온 세계에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행 1:9-11
3. 새로운 확신(1:9-11)
이 약속을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바울을 통하여 주신 신비로운 교회의 휴거와 혼동하지 말자. 여기서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감람산에 눈으로 될 수 있게 영광 중에 돌아오신다는 약속하고 있다. 누가복음 21장 27절과 스가랴 14장 4절에서도 똑같은 약속이 나온다.
만일 이스라엘이 사도들의 멧세지를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는 감람산으로 돌아오실 것이며(행 3:19-21)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었다. 유대의 선교사들은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이사야 35장 1-6절과 65장 19-23절에 약속된 것과 같은 모든 인류를 위한 축복의 중심지가 될 것이었다.
행 1:12-25
4. 새로운 사도(1:12-25)
이 새로운 사도를 선출한 것은 옳은 일인가? 물론이다 !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왕국을 영접할 것이라면 약속된 열 두보좌에 앉을 열 두 사람이 있어야 했다(마 19:28/눅 22:28-30). 이들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었다(시 109:8/시 69:25). 그리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14, 24절). 새로 선택된 맛디아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오순절날 성령의 세례(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 모임의 책임을 진 것에 유의하자. 이것은 아마도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매고 푸는“ 능력을 사용한 예가 될 것이다. 하늘(Heaven)은 결정 과업에 있어서 그들을 인도하셨으며 결정이 되자 이를 인준하셨다.
바울은 열 두사도에 들 수 없었다. 그 한가지 예로는 1장 21-22절에 기록된 자격에 합당치 않았으며, 더구나 그의 특별한 사역은 왕국이 아니라 교회와 관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문제였으며 신자들은 오순절날이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락방에서 기도와 친교로 시간을 보냈다.
▣ 실천적인 교훈
참된 의미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땅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리라“(요 20:21)는 말씀에 따라 우리는 그의 증인들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주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셨다. 주님은 몸된 교회의 머리로서 하늘에서 교회의 일을 인도하신다(엡 1:20-23/엡 4:14-16). 육신의 지혜로써는 어떤 사람이나 교파나 의회도지교회를 인도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도록 인도하시는 일이 결코 없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바를 쓸데없이 추측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가 이미 나타내신 바를 준행하는 데 바빠야 할 것이다.
기도 모임에서 마리아가 평범한 신자로서 위치하고 있음에 유의하자(1:14). 그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있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행 2:1-47
▣ 오순절-사도행전 2장-
오순절(Pentecost)축제는 초실절이 지난 50일째 날에 시작된다(“Pentecost“란 50을 의미한다). 이 절기는 레위기 23장 15-21절에 요약되어 있다.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상징인 것과 같이(고전 5:7)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이다(고전 15:20-23). 또한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을 상징한다(고전 12:13).
그 날에 누룩있는 떡을 준 것은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음에 대한 상징이다(고전 10:17 에서 교회는 한 조각의 떡으로 묘사되고 있다). 떡 속의 누룩은 교회 안에 아직 죄가 남아 있음을 말한다. 사실상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세례(침례)가 두 번 발생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사도행전 10장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졌다. 이것은 오순절날 제사장들에 의해 나누어지는 두 가지 떡(누룩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1. 기적(2:1-13)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눅 24:49)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적절한 시간이 되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성령께서는 강림하시자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한 몸이 되도록 세례(침례)를 베풀고(행 1:4-5/고전 12:13) 증거할수 있도록 능력으로 채워 주셨다(2:4).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는 요한복음 3장 8절과 마른 뼈들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을 생각나게 한다(겔 37장). 불의 혀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거룩한 능력을 상징한다. 이것을 마태복음 3장 11절과 혼동하지 말자 ! 거기 언급된 불의 세례(침례)는 이스라엘의 환란의 때를 가리킨다. 불의 세례(침례)나 성령의 세례(침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인 일이 아니다 ! 모든 신자들은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는다.
신자들은 방언을 말했다. 이들은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2:11).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이들은 다락방에 있었으나(2:2), 많은 군중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성전 뜰로 자리를 옮겨야 했음이 분명하다.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로써 유대인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0장 46절에서 이방인들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방언을 말하였으며, 19장 6절에서는 세례(침례)요한의 제자들로서 에베소에서 사도로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방언을 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말하는 “방언의 은사“와 같은 것은 아니다."
행 2:14-41
2. 멧세지(2:14-41)
서론(2:14-21)-베드로는 우선 “술취했다“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응수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나 절기에는 오전 9시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는다. 이 때가 제 3시 곧, 7시였다.
이 설교 전체를 통하여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만 연설을 하고 있음에 유의하자(14, 22, 29, 36절).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였으므로 이방인은 개입되지 않았다. 이 설교에서 베드로는 유대민족에게 연설하는 가운데 그들의 메시야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증거한다. 16-21절에서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요엘서 2장 28-32절을 언급한다(이 구절을 조심스럽게 읽자). 베드로는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요엘서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땅에 오시는 환란의 끝에 가서야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요엘이 말하던 성령과 같은 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17-18절은 오순절에 있었던 일이며, 19-21절은 이 때의 일이 아니고 또한 종말이 이르기까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8절과 19절 사이에 교회의 전시대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베드로가 그 때까지 알지 못했던 비밀이다.
해명(2:22-36)-이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유대인들에게 입증한다. 그는 대단히 확신을 주는 다섯 가지 논거를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뒷받침한다(22-24절/ 요 10:17-18). 다른 사람들을 부활시킨 사람이 스스로 죽어 있을 수는 없다.
-시편 16편 8-11절은 부활을 예언한다(25-31절).
-사도들 자신들이 증인이었다(32절).
-성령의 오심이 그가 살아 계시다는 증거이다(33절).
-시편 110편 1절은 주님의 부활을 약속하였다(33-35절).
명심할 것은 베드로는 오늘날 우리가 전파하는 것과 같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큰 죄를 고발하고 있으며(23절) 그들 자신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경고하고 있다(36절). 베드로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들은 세례(침례)요한을 살해했으며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또다시 기회를 주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약속된 “요나의 표적“이었으며 주님이 메시야임을 입증하였다(마 12:38-40).적용(2:37-40)-사람들은 죄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베드로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사도행전 2장 28절은 성경에서 잘못 해석되거나 잘못 적용되기가 가장 쉬운 구절 중의 하나이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세례(침례)를 받아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세례(침례)요한의 멧세지와 같으며(막 1:4), 예수님의 멧세지와도 같다(마 4:17). 세례(침례)를 구원과 성령받는 일의 필수 조건으로 만드는 것은 사도행전 10장 44-48절에 나오는 이방인들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인데, 이 경험이야말로 오늘날을 위한 하나님의 본보기이다(사도행전 서론 참조).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세례(침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았으며,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들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으며,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이방인들도 그러했다. 물세례(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한다면 이러한 오류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베드로는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외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언급한다(39절/ 단 9:7 참조). 이 약속은 이방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방인들은 약속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엡 2:11-12)."
행 2:42-47
3. 군중(2:42-47)
신자들이 성전에 머물러 있음을 유의하자 ! 성령은 이들에게 마음과 정신의 연합을 가져다주었으며, 날마다 믿는 이들이 이 총회에 더하여졌다. 이 구절들은 장차 왕국 시대 동안에 어떤 생활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이다. 그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교회는 하나님의 심중에 존재하고 있어서, 나중에 바울이 사역하기까지는 교회에 대한 온전한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도행전 2장은 유대적인 배경이므로 이 구절들을 통해서 후에까지도 드러나지 않는 진리들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유대인의 성전에서 모임을 갖는 것도 아니고 공산체제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왕국에 대한 제시는 여전히 열려진 상태로, 그 민족의 지도자들이 성령께 대항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때인 7장까지 계속된다.
▣ 실천적인 교훈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인내하며 기도하는 중에 기다린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것이다.죄를 깨닫게 하고 확신을 주는 전도는 개인적인 경험(2:32)과 성령의 충만함(2:4)을 통하여 온다.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연약한 베드로가 이제는 담대한 증인이다 !
성령이 역사하실 때는 언제나 믿지 않는 세상이 조롱하고 깜짝 놀란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에 있어서 가장 증거가 뚜렷한 사실들 중의 하나이다.
진리에 대해 죄인들을 깨우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라. 베드로는 요엘서와 시편을 인용하여 자신의 강조점을 입증한다. 그 결과 3,000명이 회심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신자들은 함께 친교를 나눌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양이며, 양들은 함께 무리를 짓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뜯어진 것은 무효“라고 쓰인 표식과도 같다. 만일 우리가 다른 신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면 고난을 당하며 연약해질 것이다.
이 신자들의 기쁨에 주목하자. 참된 구원은 지속적인 기쁨을 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