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엣더게이트(Enemy at the gates)
세계 제2차대전이라고 하면 미국, 유럽연합과 독일과의 전쟁을 많이들
생각한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 유명한 진주만 전쟁이 있다. 이것은 미국의 허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버린 우리가 미국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바라보기 때문 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 제2차대전 중에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이 엄청난 대규모의 전쟁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소련과 독일간의 전쟁이었던 스탈린그라드 전쟁이다. 이러한 역사 속의 뒷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만들어 졌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한명의 러시아 저격병과 그를 사살하려는 엘리트 독일 장교와의 쫓고 쫓기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사실적인 묘사로 영화의 전반을 장식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와 비슷하게 볼가강을 건너 전선에 투입되는 겁먹은 젊은 소련 병사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시작한다.
건너편에는 독일군의 포대와 소총부대가 버티고 있고, 후퇴하면 배신자로 분류되어 현장에서 사살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처한 젊은 병사들 앞에 놓인 것은 죽음 뿐이다.
차라리 독일군의 선전방송과 같이 항복하는 편이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리나 이 영화의 전투장면은 초반을 제외하고는 포탄과 총성으로 얼룩진 대규모의 전투장면 보다는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의 잔해를 오고 가며 벌어지는 저격병들의 치고 빠지는 식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연출되고 있다.
우리는 전쟁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기 있지 않다…라는 일종의 안도감 이라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영화를 감사하기 때문에 전쟁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는 우리에게 그러한 안도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기에는 너무나 긴장감으로 뭉쳐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러브 신에서 조차도 관객의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여러 병사들이 빼곡히 누워서 자고 있는 상황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랑을 나누는 쪽도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는 관객들도 들이키지는 않을까…하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어찌 보면 대규모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스팩타클한 전투장면과 웅장한 포탄소리로 가득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블렉 호크 다운 과 같은 영화를 선호하는 DVD 메니아들 에게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DVD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바실리와 코니그 소령과의 대결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대결을 떠나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양 국민간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소련의 입장에서 바실리는 다닐로프의 말 데로 인민의 희망이며 그들이 싸워야 할 의미를 일깨워 주는 하나의 상징인 셈 이였고, 이를 너무나도 잘 아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를 사살하기 위해 최고의 실력자인 코니그 소령을 불러 올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영화중간에 지역 사령관이 였던 독일장군도 풋내기 소련 저격수 한명 잡자고 너무 과분한 인물이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바실리 자신도 당의 선전용에 지나지 않은 자신의 영웅화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면서, 자신의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하루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살 뿐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 만이 존재하는 전쟁 속에서 국가가 무엇인지…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따위는 개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그에게 타냐는 자신이 코니그 소령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이자 상관인 다닐로프도 역시 타냐를 좋아하고, 마침내 다닐로프는 바실리를 죽음으로 내 몰 계획을 세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의 미국식 영웅주의로 넘쳐 나는 전쟁영화나 지욱의 묵시록과 같이 전쟁의 부조리에 무게를 둔 영화로부터 벗어나, 참신한 전쟁영화를 보고 싶다면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아마도 손꼽히는 전쟁영화의 명화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