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11:1~11)
본문은 하나님이 애굽으로부터
불러 구하셨음에도 지금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두고,
오히려 멸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긍휼로 감싸고 그들의 집에 돌아와
머물게 하시겠다는 뜻을 보이시는 내용이다.
은혜를 범죄로 답하는 나와 사람들.
언제 상식, 정상으로 돌아오려나.
반복된 배신을 되돌릴 힘에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의지에 어떤 감흥도 담기지 않고 건조하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은 마음 깊은 곳의 감동이 동력이 되어
눈물로 회개하며 나의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도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동력이 되어야 할 텐데
여전히 감동보다는 세상의 여러 가지에 현혹되어 있나보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어진다.
나는 무관심해도 하나님은 그 사귐을 이어가신다.
사귐의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외면하고 배반한 결과에 대한
답변, 다른 나라를 섬기게 되는 징벌이다.
괘씸죄로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계기를 마련하신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에 사랑이나 증오로 반응하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에 언제나 사랑으로 반응하신다.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징벌을 주시지만
그때도 사랑의 마음은 변함이 없으시다.
그 점에서 큰 감동이 있다.
그 점이 우리와 다르시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 멈추지 않음을 보이신다.
죄악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므로 징벌을 받아도 부족할
에브라임에게 긍휼이 솟아오른다고,
멸망시키지도, 진노함을 보이지도 않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배신을 당했다면 응당히 징벌을 통한 보복이 따르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도 그 목적이 다르고
그 징벌마저도, 이후에는 항상 불타는 사랑과
애끓는 긍휼로 마무리하신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하나님의 독생자,
아니 그분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기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그런 존재에게 등을 돌리는 일이
도대체 있을 수 있는가?
<오늘의 명언>
스스로 마음속의 문을 닫기 전에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오즈월드 체임버스-
“하나님, 세상에 범람하는 죄악도 놀랍고
그런 죄악을 품고 용서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도 놀랍니다.
저는 분개하는 일에서 멈춰있습니다.
피해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지만,
가해자를 품는 일이 힘겹습니다.
그래서 자꾸 분을 표출합니다.
주님, 제게 어떤 영혼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주님이 제게 주신),
이 시간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팔로 품어주시옵소서.
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지려는
양정환을 위로해 주시고, 힘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