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이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 지금 이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며,
여기서 함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는 것 아닐까 ?
1883년 개항이후 형성된 근대도시로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장소인 인천에 대해 전문 문화해설사의 상세하고도 정확한 해설을 듣는
호사를 누리며 또 한편으로는 정겨운 우리 7276동기들과 하루종일 낄~낄 깔~깔 마음껏들 웃으며 모두 함께 즐겼던 정말로 뜻깊은
하루였다.
아침 일찍 동인천역에 모인 우리의 정겨운 동기들....... 멀리 부산에서 날아온 미숙, 문경에서 달려온 영식, 용산에서 뛰어온 숙자,
수원에서 슬라이딩해온 덕로, 전의에서 달려온 국현, 가뿐하게 안양에서 걸어온 샤방샤방, 바로 옆 부천에서 온 원철, 강남구청역
에서 만나 한꺼번에 떼거리로 몰려온 기현, 영란, 종선, 분당에서 돌아온 동찬, ( 그리고 저녁때 연안부두 횟집에서 만난 광득이,
얼마전 상처한 아픔을 딛고 옛추억을 같이한 동기들이 보고싶어 광득이와 같이 나타난 대식 ! ) 우리들은 참 행복한 동기들이다 !
길건너 호떡집에서 원철이가 사준 호떡을 오뎅국물과 함께 맛있게 해치운 우리는 바로 전동, 내동 경계에서 전동 쪽으로 우회전,
고기현 생가를 방문하고 그앞에 모두서서 기념촬영을 마친다음,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인 홍예문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전문 문화해설사 (기현, 원철의 제물포 고등학교 5년 선배)를 조우하여 본격적인 문화기행 해설을 들었다.
하루가 지난 지금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인천이 짠물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기억해야 할 문화유산이 많은 매우
뜻깊은 곳이란 생각을 확고히 갖게해준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홍예문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은 철도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의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한 것인데 당시 일본이 자국의 조계지를 확장하기 위해 조성한 축조물인바, 현재 인천의 남북을 연결하는 인천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으며 당시의 일본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사료로서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소중한 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향한곳은...
인천 내동 성공회 성당 (당초 1908년에 고요한 신부에 의해 지어 졌으나 한국 전쟁때 소실되어 현재의 건물은 1956년에 중건 되었다함)인 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는 헨리8세가 최초의 수장이었으며 현재의 수장은 엘리자베스여왕이라는 상식도 늘었고 은근히
멋을부린 건축양식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유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오른쪽 밑으로 보이는 제물포 고등학교, 인일여고와 그 위쪽으로 보이는 인천 기상대가 우리의 눈길을 자꾸 가게 만들었고, 곧바로 이어지는 자유공원 (1882년 한국 최초의 국제조약인 한미수교에 이어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후 5년 뒤인 1888년에 중구 응봉산 일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서울 탑골공원보다 9년 먼저 만들어진 공원 )으로 들어서니 눈에 확 들어오는 맥아더장군 동상...머얼리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졌던 격전지인 월미도 앞바다도 보인다.
조선에 일본과 중국, 영국과 프랑스등...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인천항은 붐비고 도시가 생겨나면서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로 만들어진 이 공원은 처음엔 외국인 거류민단이 공원을 관리하면서 '만국공원'이라 불렸고, 이후 세력을 넓혀가던 일본에게 각국거류민단이 살던 거류지를 내어 줌으로서 공원 관리권까지 일본부로 넘기게 되면서 '서공원'으로 불렸다 한다.
광복이후에는 '만국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57년 맥아더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부터 '자유공원'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으며 멋드러진 탑과 그 아래 가운데에 있는 조각물이 어우러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존스턴 별장터)을 시작으로 공원 광장의 시원스러움을 느끼며 광장의 한켠으로 향하니 인천 앞바다를 한눈에 만날 수 있었다.
이후...선린문(패루)을 거쳐/차이나타운 거리로 내려와/삼국지 벽화거리 등을 지나/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자유공원의 팔각정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인 바 이 계단을 경계로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일본의 조계지였다)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화교 중산학교를 들러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공갈빵이 유명한 곳이 있었는데 원철이가 얼른 들어가 우리들 모두에게 공갈빵을 사주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한꺼번에 밀려와 우리들의 두뇌가 감당을 못하게 될 즈음, 드디어 아주 잘할 것 같은 중식당 (사람들이 줄을 쭉 서있어 너무 오래 기다리겠다 싶은 共和春은 피했다) 으로 들어갔다 ! 바야흐로 이제부터가 진짜다 ! 아니나 다를까, 탕수육, 만두, 팔보채, 란자완스, 새우튀김, 짜장면에다가 마오타이/죽엽청주를 시킬까 하다가 시킨 고량주까지 곁들이니 이것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겠는 바로 그맛 ! 아뭏든 너무나도 맛있게 싫컷 중화요리를 맛보았다. 추억속의 동창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같이 먹는 맛, 이것 정말 살살 녹는다는 표현 그 자체로도 표현이 안되는구나... 좋은 줄은 알겠는데, 표현이 안되네... 한마디로 딱이야 !
모두들의 혀를 엄청나게 호강시키고 나온 우리는 (구)제물포 구락부 및 옛 共和春자리 (지금은 자장면 박물관으로 공사중인 곳) 로 가서 우리들의 뇌를 엄청 호강시켜주신 전문 문화 해설사님의 마지막 강의(?)를 잘 들은 후 그 분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고하고 월미도로 향했다.
월미도에서 갈매기들과 그 옆에 꼽사리(?) 붙은 비둘기들에게 갈매기 밥(새우깡)을 신나게 던져 준 후 한바퀴 잘 구경한 우리 일행은 저녁으로 회를 쏘겠다는 광득과 대식을 만나기 위해 3대의 택시로 연안부두를 향해 고고 씽 !
드디어 광득과 대식을 만난 우리는 횟감 및 해삼, 멍게등 이것저것을 골라 음식점으로 들어가니 그곳 아줌마들이 능수능란하게
요리를 해다 바친다 ! 산사춘, 쐬주와 어울린 회들이 모두들의 입에서 어찌 그리도 빨리 없어지던지... 추가로 시킨 놈들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와 ! 이 엄청난 식욕들은 도대체 어디에서들 온 것인지~~~~~ (바로 얼마전에 그렇게 많이들 해치우고선...)
그것도 모자라 대식이가 우리들을 그냥 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여 들른 노래방에서 2시간 가까이 목청들을 드높인 후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동인천역으로 가서 전철에 장시간 앉아있다 보니 드디어 집에 도착하더라 ! 자정이 가까이 되어... 좋았던 하루 !!!
좋았던 동기동창들.....
7276이여 영원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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