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최현숙
분갈이 외
하루만 관심을 줄여도
벵갈 고무나무는 위에서부터 빠르게 시들어
오늘은 분갈이를 한다
화분의 흙을 퍼내는데
예고 없이 너에게서 살만하냐는 문자가 왔다
맘을 고르고 맘을 퍼내며 사람 속에 들어 산 적 있다
꽃삽은
언제나 단도직입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옮겨놓았을 때
그때의 통증을 잘 알기에
뿌리와 잔털을 털어 화분 안에 넣고 새 흙을 채우고
줄기는 다른 화분에 꽂아 흙을 덮고 물을 흠뻑 줬다
꽃삽은
모든 게 일방적이다
한쪽의 뿌리가 자리를 잡는 동안
한쪽은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하는
분갈이를 잘 끝내고
살만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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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삶기
나물 삶는 일은
본질은 살리고 본성은 죽이는 일
본성이 죽지 않으면
질기거나 쓰거나 억세거나 독해서 나물 노릇을 하지 못한다
본질이 변하지 않도록
향은 더 강하게 오래 남을 만큼, 색은 더 짙게 살아있을 만큼, 맛은 부드럽게 감겨 살살거릴 만큼
우려낸 다음
본성을 죽이기 위해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움큼 뿌리고
시간과 불을 조절하며, 나물이 견뎌 온 힘든 시간을 만지며, 땅속의 시간을 뒤집어 가며, 독기와 쓴맛을 빼내면 된다
그런데 나는
데쳐진 시간이 얼마나 여러 번 있었던가
쓴맛을 빼지 못하고
아직도 제멋 대로다
생의 소금이 불량품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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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2024년 《모던포엠》 신인상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