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강의에 꼭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탄생과 죽음이라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에 대한 걱정을 영원히 끝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맨 먼저 발견한 사실은
우리가 애초에 특정 의식수준으로 태어난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태어날 때 이미 400대이고,
누구는 이미 성인이고,
누구는 간신히 40이고,
누구는 간신히 생존만 가능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카르마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의식수준의 '세계지도'를 만드는 작업중인데
이 지도를 보면 대륙별 의식수준 분포상황을 알 수있습니다.
북미는 431, 멕시코는 400으로 측정되고, 남미로 내려가면 300대로 측정됩니다.
남미 국가들은 300대이니 매우 양호합니다. 아이티만 빼고요.
서반구 정중앙에서 느닷없이 아이티가 55정도로 측정되었습니다.
유럽은 300대
러시아는 300정도
중국은 400정도
한국은 400대입니다
중동은 180정도로 내려갑니다.
아프리카에서는 125, 90, 70으로 내려가거나 심지어 40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인류의 의식이
거의 지리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인간으로서 카르마에 따라 현현하는 시점에서
운명적으로 정해진 장소에 우리가 태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이미 특정 의식수준으로 측정됩니다.
특정 의식수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출생의 순간부터 부여받은 의식수준 측정치가 있습니다.
부여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이전 생에서 도달한 지점이죠.
우리는 또한
정확한 죽음의 순간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죽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건 여러분에 달려있습니다.
용맹하게 죽을 수도 있고
질질 짜며 죽을 수도 있습니다.
대단한 전사로 죽을 수도 있고요
나는 전사로 살다 죽었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황홀했습니다.
의식수준이 어떤 수준이상이면 전생을 다 기억합니다.
그냥 다 의식이 됩니다.
모든 생은 결국 하나의 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을 끝내고 다음 생을 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두가 하나의 생입니다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전사가 한명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찔러 죽여서 함께 몸을 벗어났습니다.
나는 예수를 위해 그를 죽였고
그는 알라를 위해 나를 죽였습니다.
몸을 벗어난 우리는 마주보며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아무튼 죽음의 순간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지 않는 한,
영적으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없는 한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미카제 조종사가 높게 측정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탄복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럽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으니까요.
내가 전직 가미카제 조종사를 만난다면 서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더 높은 목표에 헌신했습니다.
국가에 충성했고
신에게 충성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순간의 선택으로
어떤 카르마적 목적에 기여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죽음이 어차피 겪어야 할 일임을 알고
거기서 얼마간 보상을 받는 거죠.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걱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죽음의 정확한 순간은 사람이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카르마적으로 결정된다
YES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수도없이 확인했습니다.
죽음의 순간
즉 어떻게 죽는지가 아니라 언제 죽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살아가는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가지는 어떻게든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63세에 죽게 되어 있다면
62세에 차여 치여 죽을까봐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63세까지는 이 세상을 떠나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은 온갖 건강문제를 걱정하는데
알다시피 우리는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지배됩니다.
그러니
그 모든 문제가 진짜라고 믿고 싶다면
온갖 부정적 믿음으로 자신을 아프게 만드세요.
그래서
건강 테러리즘이라는 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두려움에 떠는 걸 보면서 은밀하고 악의에 찬 만족을 얻습니다.
또 이야기하지만, 정해진 것보다 절대
더도 못살고 덜도 못삽니다.
그러니 그냥 삶을 살고 걱정은 끝내는 것이 낫습니다.
이전에 나는 근육테스트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진실과 진실의 부재를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침술경락을 따라 방출되는 오라의 에너지장을 의식이 제어하며
빠르게 응답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이면 팔이 즉시 강해집니다
근육테스트를 5분만 해봐도 응당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존재하는 순간
진실의 에너지가 더 강해져 팔을 따라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테스트를 여러번 하다보면
진술하는 순간 거의 즉시 답을 알게 됩니다.
답의 에너지가 팔을 따라 흐르는 것이 느껴지니까요.
진실이 부재하면 팔이 약해집니다
세상에서는 진실이 아닌 것을 거짓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진실이 부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비개인적 것입니다.
원형질 수준, 세포수준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것을 알아보니까요.
..
생명의 에너지는 파괴될 수 없습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지만
생명 보존의 법칙이 훨씬 더 강력하고 지배적인 법칙입니다.
생명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생명이 형태를 바꾸도록 강제할 수 만 있습니다.
파리를 때려잡으면 파리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에테르체로서 계속 날아갈 뿐 자기의 변화를 알아채지도 못합니다.
유체이탈을 해봤습니까?
유체이탈을 할때는 몸을 벗어나는 순간을 거의 알아채지 못합니다.
분명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다음 순간 방안을 떠납니다.
환상적이죠.
여러분은 몸으로 돌아가고 싶던가요?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을 벗어나면 밑에 누워있는 몸이 보일 뿐,
육체의 죽음은 경험하지 않습니다.
육체를 떠나기로 예정된 순간에 생명은 육체를 떠나고
여러분은 저 밑에서 죽어있는 육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저기 있는 것은 그것이고
여기있는 것은 나입니다.
유체이탈을 해본 사람이라면
나는 여기있고, 저 몸은 저기 있는 그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니 하품을 하다가 들어온 날벌레를 죽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길을 걷다가 벌레를 밟아 죽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양이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양이가 잘때
꿈꾸는 시간이 있는지 알아봤고,
그렇다고 측정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의 꿈속의 삶이 진짜라고 여길까요?
아닙니다. 구분하지 못합니다.
재미있는 꿈속 삶을 살다가 현실의 고양이 친구들에게 돌아가면
그 삶도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모두 하나의 삶입니다.
현실은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고양이의 진짜 삶은 당신 집안에서 사는 것이고,
꿈속 삶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성은 주제가 너무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과학자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과학자였지만요(웃음).
그래서 진실을 찾아 깊은 지옥까지 들어갔던 것입니다.
지성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집에 책이 많습니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을 모조리 읽은 분 있습니까?
아무도 없나요?
아이고, 챙피한 줄 아세요(웃음)
시간을 많이 아껴드리겠습니다.
진실은 지옥에 없습니다.
그러니 지옥여행은 안해도 됩니다.
여러분의 팔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200이상으로 측정됩니다.
약하게 만드는 것은 200미만으로 측정되고요
세계인구의 85%(78%)가 그렇습니다.
이 행성에 도달 가능한 궁극의 의식은
1000으로 지극힌 드문 것입니다.
몇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600은 천만명중 한명 꼴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수준인 540은 세계 인구의 0.4%입니다.
심장 차크라의 수준, 사랑의 수준인 500에 이른 사람은 4%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대체로 어느 수준일까요?
의식의 지도 맨 위쪽에 있는 사람은 불과 몇 안됩니다.
그런데 왜 세상이 아래쪽으로 무너져 버리지 않을까요?
의식수준은 그 값의 파워가 로그값입니다.
맨 위쪽에서는 실로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전세계의 부정성을 모두 상쇄할 수 있습니다.
1000 존재 하나가 지구상의
모든 부정성을 뒤엎습니다.
1000 수준의 깨달은 한 사람이 인류의 부정성 전체를 상쇄합니다.
미국은 421로 측정됩니다.
즉 우리 사회는 400대입니다.
지성, 대학, 책임감, 청구서 완납, 예의바름을 중시합니다.
400대는 이성의 수준이고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를 바랍니다.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입장인지 알겠죠?(웃음)
의식의 지도상에서 중동은 200보다 아래쪽에 ㅇㅆ고
미국은 400보다 위쪽에 있습니다.
이 아래쪽 사람이 여러분과 맺은 계약을 지킬 것 같습니까?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의 영국 외무부 장관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영국 총리는 190, 히틀러는 80정도였고
협정을 지킬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 수준의 사람들은 이성과 윤리에 따라 살지 않으니까요
영국측은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조약을 가지고 돌아갔고
히틀러는 회담장을 나서자마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우리가 조약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냐, 이 멍청한 것들아! 하면서요
마치 마약 딜러가 '그래, 이번 코카인 선적 건으로 2천만달러를 줘야지, 월요일까지 꼭 보낼께.
당신은 수표 오기만을 기다리면 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국제관계에서 해온 일입니다.
수세기 동안 국제관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대화하는 상대방의 의식수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화 상대방이 400대라면 계약을 지킬 것입니다.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는 법이 있고 계약이 있으니까요.
국제협정 운운하는데,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누구와 국제협정을 맺는 건데요?
이 아래쪽 사람들은 그런 걸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다수 인류가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인류 평균 의식수준은 207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인류의 의식수준은 얼마였을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네안데르탈인이 70나옵니다.
붓다 탄생당시 인류 의식수준은 90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당시는 100이었고요.
1900년때까지 계속 190에 머물러 있다가
1980년대 후반에 갑자기 207로 도약했습니다.
즉, 인류의 의식수준은 거의 모든 세기를 통틀어 진실성의 수준인
200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이반 4세의 폭정이나
몽골족이 수백만명을 학살한 이유입니다.
몽골족은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학살했습니다.
그런 뒤에 사회적으로 큰 진보가 있었는데,
그것이 노예제입니다.
학살하는 대신 팔아먹는게 낫다는 걸 알게된 것입니다.
노예제가 발생한 맥락을 보세요
노예제가 악일까요? 아닐까요?
죽느니 금화 몇 닢에 팔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느 생에서 나는 죽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갤리선 노 젓는 노예였기 때문에 노예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니까요.
그 생에서 나는 내 참모습이 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극심한데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계속해서 그 잔인한 학대를 견뎌야 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나를 잡아둘 수 없어. 죽으면 돼'
그리고 나는 육체를 떠났습니다.
세상에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머물려고 고문을 당할 필요가 없어'
이러고는 나는 내가 죽게 내버려뒀습니다.
그들을 엿먹였고요
굉장한 발견이었습니다.
와우! 다시는 누구다 날 때릴 수없어.
그냥 놓아버리고 잘 있어! 라고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