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상승? 못 믿겠다”

[언제나]

“연구비 상승? 못 믿겠다”

[창간기획]MB정부 과기정책 긴급점검④…과학기술계 정부발표에 냉냉

2008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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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2012년까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5배 늘어난 16조2000억 원으로 늘리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원에게 고정출연 인건비의 비율을 현행 30%에서 7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장의 대학 교수와 출연연 연구자에게선 “피부로 체감하는 연구 환경 개선과 복지 증진은 없다”는 얘기가 곧잘 나오고 있다. 오히려 과학기술인의 사기가 더 떨어졌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3년마다 연구 끊긴다”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약을 믿기 어렵다”며 “정부가 연구비를 늘린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초 이미 공공기관 전체적으로 예산을 10%씩 삭감했다”고 했다. 그 결과 출연연 역시 예산이 줄어 연구자들의 기관고유사업 연구비도 따라서 감소했다는 것.

그는 “당장 수행 중인 연구비가 줄어들었는데 내년에 인상되리란 얘기를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연구비를 늘린다고 해도 결국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연구자 줄세우기’를 시도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를 활용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향후 60년의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기존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예산이 줄거나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며 “내년에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기존 연구를 포기하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새로운 연구계획서를 써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구자용 박사는 “일본은 올해 4명의 과학기술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에선 이제까지 단 한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며 “출연연과 대학을 기업과 경쟁시키는 상황에서 출연연은 갈수록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구 박사는 또 “일본의 연구자들은 적은 돈으로 기초연구를 하면서도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 자부심을 갖지만 한국의 연구자들은 유행에 따라가도록 강요받는다”며 “선택과 집중이란 이름 아래 3년마다 끊기는 연구 지원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연구과제의 평가가 3년마다 이뤄지기 때문에 연구주제의 트랜드가 바뀌면 탈락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우수과학자 확실히 밀어달라”

연구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10년 전 IMF 외환위기로 줄어든 연구원 정년을 65세로 되돌리고 스타급 과학자 집단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종화 박사는 “뛰어난 업적을 거두는 연구자가 해마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미래에 대한 신분불안이 큰 탓이다”며 “출연연 연구원의 정년을 IMF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학 교수는 정년이 65세까지 보장되고 사학연급의 혜택까지 받지만 출연연 연구원은 선임급 58세, 책임급은 61세로 정년이 줄어들었다. 이공계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정규직을 얻으려면 보통 30세 중반을 넘는 상황을 감안하면 연구자로 활동하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 문제다. 이 같은 신분불안은 연구자의 연구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윤영 교수는 “해외 고급두뇌를 유치하고 연구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우수 과학자에겐 1970~1980년대 같이 확실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외의 우수 한인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교수 월급의 두 배를 주고 집과 자동차까지 지급했던 것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통해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과는 차이가 있다. 김 교수는 “당시 국내 대학의 연구 수준과 환경은 미약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며 “무조건 해외 석학을 좇기보다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우수 과학자를 발굴해 육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