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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정보 기상청 스크랩 울진 천축산 20140816토
둔재(윤재연) 추천 0 조회 177 15.06.06 08: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울진 천축산

20140816토

 

 

 

 

울진 천축산 (天竺山 653m)

 

 

 

♣ 소개 / 특징 / 볼거리

 

 

   높  이 : 653m

   위  치 :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 천축산(天竺山)

천축산은 경북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 경계에 솟아 있으면서 북쪽을 가로지르는

불영천은 불영계곡군립공원이 지정되어 있으며 서면에는 불영사가 자리잡고 있다.

 

천축산 동쪽에 살짝 솟아있는 선유산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성류굴이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고 동해 바닷가에는 망양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으며 옆에 기암절벽 밑에 자리잡고 있는 망양정 정자는 두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특히 천축산은 산보다 불영사와 한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100리길의 불영계곡이 더 유명하며 얼마나 아름다우면 비단 금자(錦)에 시냇물 계(溪)자를 써서 금계계곡이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한다.

 

울진군의 서편 내륙 쪽에 있는 통고산과 연화봉에서 발원한 불영천은 심한 S자(字) 곡선을 그리며 천축산 북쪽 사면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다가 광천교 아래서 잠시 쉬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동해로 흘러 내려가는 약 20km의 계곡이 바로 불영계곡이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불영사(佛影寺)와 선유정, 불영정 등의 정자가 늘어서 있고, 구룡폭포 등의 절경도 있어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여행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명승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영계곡 구경은 울진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울진읍 남쪽에 있는 수산교에서 영주로 이어지는 36호 국도로 우회전 하면 군립공원 불영계곡이 펼쳐진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감상하게 되는 불영계곡의 풍광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불영정에서 불고개를 넘어 광천교에 이르는 약 15km 구간이다. 그 사이 전망이 좋은 곳에 팔각정인 선유정과 불영정이 세워져 있어 더욱 운치를 돋운다.

 

계곡은 성류굴의 맞은편인 수산리로부터 노음리, 천전동, 건작, 밭치밭, 하원리 등으로 이어지는데 하원리에 위치한 신라 때 고찰 불영사를 중심으로,광대코 바위, 주절이 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각종 이름이 붙은 명소가 30여개소에 이른다. 흰 빛을 띠는 화강암이 풍화된 기암괴석으로 된 절벽은 맑은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룬다.

 

왕피천(王避川)의 지류인 광천(光川)이 심한 감입곡류를 하면서 생긴 계곡이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깊은 계곡과 푸른 물줄기가 어우러진 창옥벽(蒼玉壁)·의상대(義湘臺)·산태극(山太極)·수태극(水太極)·명경대(明鏡臺) 등 30여 개의 명소가 있다.

 

불영정, 선유정을 비롯 크고 작은 폭포가 도사리고 있고 사시사철 옥수가 흐르고 계곡수에 비취는 암봉과, 설화, 단풍은 불영계곡의 백미(白眉) 이다.

 

▶ 산행코스

A코스 : 전치버스정류장 ~ 산불감시탑 ~ 천축산 ~ 전망바위 ~ 북바위봉

            불영사 ~ 주차장 ( 약 4시간 )

 

B코스 : 주차장 ~ 불영사 ~ 북바위봉 ~ 불영사 ~ 주차장 ( 약 3시간 )

 

▶ 산행지도

 

■ 울진군 소개

 

● 불영사[佛影寺]

불영사는 구룡폭포 근처 천축산 아래 금강 소나무 숲 속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대사가 당시 수도인 경주에서 해안을 따라 단하동

해운봉에 올라서 북쪽을 바라보니, 이 곳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다 하여 산 이름을 천축산이라 하였다.

 

큰 연못에 사는 아홉 마리의 독용(毒龍)을 설법하여 이 땅을 보시할 것을 청했으나 용이 따르지 않자 법력(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구룡사라 하였다가, 서쪽 산 위에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쳐 불영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아직도 이 연못을 불영지라 한다. 그 후 조선 태조 6년(1397)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 소운대사가, 연산군 6년(1500)에 소실된 것을 양성당 법사가 중건하였다.

 

불영사를 드나드는 개울에는 자갈과 물고기가 보이는 깨끗한 강물이다.

고기는 많지만 여기서는 잡으면 안되고 아래로 내려가서 잡아야 한다. 피라미, 꺽지, 메기, 민물뱀장어, 민물게, 은어, 개피리, 쪽거지(돌고기), 퉁구리, 미꾸라지,

자라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 불영사계곡

명승 6호인 불영사계곡일원은 근남면에서 수곡리, 행곡리, 서면 하원리 불영사에 이르는 계곡 일대로 불영사를 중심으로 15㎞의 계곡을 따라 그림 같은 자연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러 모양의 바위와 낭떠러지가 많아서 특별한 이름을 붙인 장소가 30개 정도 있다.

 

여름철에는 계곡 맑은 물로 인해 피서지로, 봄과 가을은 드라이브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고, 겨울철에는 아름다운 설경을 구경할 수 있어 사시사철 어느 때고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톤치드의 발원지 측백나무숲과 성류굴

왕피천이 굽이돌아 선유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곳에 위치한 성류굴은 울창한 측백나무와 함께 사계절 관광객이 찾는 천연석회암 동굴로서 천연기념물 제155호이다.

 

전장 472m의 길다란 동굴은 천연석회암동굴로서 종유석과 석순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12개의 광장과 5개의 못으로 형성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성류굴은 원래 이름이 선유굴(仙遊窟)이었으며,신선이 노닐만큼 주변경관이 아름답다는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성류굴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생겨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굴앞의 사찰에 있던 불상을 이 굴속에 피난시켰는데, 여기서 '성불(聖佛)이 유(留)한 굴'이라고 성류굴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동굴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연무동석실, 은하천오작교, 용신리선녀교 등으로 이어지는 광장은 저마다 신비경을 뽐내고 있다.

 

● 망양정(望洋亭)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望洋)해수욕장 근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곳 주위의 아름 다운 풍광은 시, 그림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조 숙종(肅宗)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보고 이 곳이 가장 낫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글씨를 써보내 정자에 걸도록 했다.

 

주위 송림에 둘러 싸인 언덕 아래로 백사장이 있고 왕피천(王避川)이 바다로 흘러가며, 멀리 망망대해가 정자에서 한 눈에 들어온다. 옛부터 해돋이와 달구경이 유명하며, 조선 조에는 숙종(肅宗)이 친히 이 곳에 들러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고, 정 철(鄭 徹)과 김시습(金時習) 등 유명 인사들도 이 곳에 들러 풍광을 즐겼다.

 

왕피천이란 의미는 임금이 이곳까지 피난을 한 곳이 라고도 하며, 혹은 임금이 피서(휴양)을 위해서 머문 곳으로 전해온다.

 

망양해수욕장은 비교적 수심이 얕고, 폭이 좁지만, 동해안에 있는 해수욕장 중에서는 수온이 높은 편 이다. 무성한 송림이 있어 산책하기 좋으며, 주변이 아주 조용하다. 파도가 잔잔할 때는 바다에 엎드려 있는 거북바위를 볼 수 있다.

 

 

 

            ◈ 풍물, 전설 한 마당

 

 

양성법사와 인현왕후 전설

불영사부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62호)란 명칭으로 지정된 조선 전기 승려인 양성당 선사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선사는 연산군 6년(1500)에 소실된 불영사를 중건하고 중종 11년(1516) 입적하였다. 양성법사에게는 인현왕후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현왕후는 안국동의 감교당에서 죄인을 자처하여 스스로 잡곡밥을 먹고 색옷을 입지 않았다. 이렇게 5년이란 세월을 눈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자결을 결심하고 독약 그릇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한 백발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천축산 불영사(佛影寺)에 있는 중이온데 마마께옵서 괴로우시더라도 3일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하고 홀연히 사라지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인지라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3일을 더 기다렸더니 과연 노승(老僧)의 말과 같이 왕께서 복위시킨다는 전달이 왔고 다시 왕후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민비는 꿈이 너무도 신기하여 왕께 아뢰어 불영사(佛影寺)에 사람을 보내어 꿈에 나타난 노승(老僧)의 화상을 그려 올리라는 명을 내렸는데 사자가 불영사에 와서 찾아보았으나 노승은 간 곳 없고 1516년(중종11)에 돌아가신 양성법사(養性法師)의 화상과 같아 복사하여 민비에게 드리니 민비께서 보시고 현몽한 노승이 틀림이 없없다.

 

임금께 이 사실을 아뢰고 숙종께서 감복하시고 부처님의 은공을 갚기위해 불영사를 중심으로 사방 10리 안에 있는 산과 전답을 불영사에 사주하였다. 현재 불영사의 재산이 그 때의 것이다.

 

전설 속의 연못인 불영지(佛影池)1

신라 진덕여왕 5년(651), 당나라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의상대사가 화엄법회를 열고 한참 교화에 힘쓸 때였다.

 

어느 날 노인과 8명의 동자가 의상대사를 찾아와 자기들은 동해를 수호하는 호법신장인데 이제 인연이 다하여 이곳을 떠나면서 우리가 살아온 곳에 부처님을 모시는 도량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동안 인연 닿는 스님을 못 만나다 이제야 만나게 되니, 그곳에 도량을 세워 줄 것을 의상대사께 간청하였다.

 

며칠 후 의상대사는 노인의 부탁대로 동해안의 불사 인연지를 찾아 나섰다. 동해안을 거슬러 오르는데 울진포 앞바다에 이르자 당나라에서 부터 의상대사를 사모하여 용이 되어 쫓아와 부석사를 세운 주인공 선묘룡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님을 반갑게 맞아 불사 인연지까지 길을 안내하였다.

 

그러다 문득 천축산 입구에 이르자 "손수 인연지를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선묘룡은 사라져 버렸다. 의상대사는 8일간 혼자 천축산(天竺山)을 돌아보며 절터를 찾던 의상대사는 피로에 지쳐 어느 연못가에 쉬다가 연못을 바라보니 연못 위에 부처님의 형상이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화엄경을 독송하니...

 

지난번 그를 찾아왔던 호법신장이라 칭한 노인과 동자 8명이 연못 속에서 올라와 의상대사의 설법을 듣고,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천축산에 계실 당시의 형상과 똑같으며 연못에 비친 부처님 영상은 천축산서 설법하시던 부처님 모습입니다. 주위 환경은 영산회상이 응화된 것이지요." 라는 말을 남기고 용으로 변해 사라졌다.

 

의상대사는 용들이 살던 연못을 메워 법당을 짓고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불영사라 이름 짓고, 부처님 영상이 나타난 곳에는 무영탑을 조성했다는 설화가 불영사에 전한다.

 

◆ 전설 속의 연못인 불영지(佛影池)2

그 부근 폭포에 독용(毒龍)이 살고 있었다,대사는 처음 독용에게 설법하고 이 땅을 보시 할것을 청했으나 용이 따르지 않자 법력으로 용을 쫓아 내었다, 용은 분하여 산을 뚫고 돌을 부수며 떠났는데 대사가 그 연못을 메워 사찰을 창건 하였다.

 

의상대사는 이어서 남쪽에 청련전을 짓고 무영탑을 세워 비보한 뒤 산 이름을 천축산(天竺山) 이라하고 절 이름을 불영사(佛影寺)라 하였다,처음 연못에 비친 부처님 모습의 바위는 불영암(佛影岩), 용이 산을 뚫었다는 자리는 용혈(龍穴), 용이 도사리고 있던곳을 오룡소(五龍昭) 라고 하며 불영사를 휘감아 도는 광천계곡은 구룡계곡 으로도 불린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연못이 바로 의상대사가 부처님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불영지이다, 그런데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그 뒤 오랫동안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오랫만에 불영사로 돌아왔다.

 

그 때 절 입구의 마을에서 한 늙은이를 만났는데 그는 몹시 기쁘하며 말하기를 "우리 부처님이 드디어 돌아오셨군요"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이를 보았는데 그 후로 불영사를 불귀사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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