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출장에 나섰던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21일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급거 귀국했다.
대형마트·기업형수퍼마켓(SSM)들의 모임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2일 이마트 최병렬·롯데마트 노병용 사장 등 대형유통업체 사장단과 함께 재래시장 대표 격인 전국상인연합회 진병호 회장, 동네수퍼 대표 격인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김경배 회장과 만났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다 죽인다", "왜 합법적인 영업도 못하게 하느냐"며 서로 으르렁대던 양측은 이날 홍석우 장관 등 지식경제부 간부들과 함께 협의를 갖고 합의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대형마트·SSM이 자발적으로 월 2회 이상 휴무하고, 신규 매장 출점도 지역 중소상인들과 협의해 결정하기로 한 것. 또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가칭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다음 달 15일까지 발족시키기로 했다.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상인단체 대표들이 자율적으로 상생 방안에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강제휴무' 조례에 대해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을 내며 저항하던 대형유통업체들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중소상인들과 상생 방안에 합의했다.
'강제 휴일' 조례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도 완화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날 모임에는 양측의 중재자로 정재훈 산업경제실장, 박원주 산업경제정책관 등 지경부 고위 간부들도 참석했다.
홍석우 장관은 "한발씩 양보하면서 내실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가운데) 주재로 상생협력 간담회를 가진 대형유통업체와 중소상인단체 대표들이 합의문을 발표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최병렬 이마트 대표,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 김경배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홍 장관,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진병호 전국상인연합회장, 소진세 롯데슈퍼 대표. /홈플러스 제공
이날 합의는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이들의 모임은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5차례 이상 이어져 왔다.
한 대형마트 임원은 "법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상생과 화해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지경부 중재로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댄 끝에 대형 유통점과 골목상권이 자율적으로 합의하는 획기적인 상생안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동네 수퍼마켓 모임인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측은 "정치 논리에 휘둘리며 획일적인 규제를 일방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골목상권을 살리고 대형마트·SSM에 납품하는 농민·중소기업, 입점 상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자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SSM은 이미 지역상인·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휴업일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경기 파주, 전남 순천 등은 휴일이 아닌 평일에 월 2회 쉬는 것으로 조정됐다.
경기 고양시는 매월 1·15일 휴무하는 방안을 22일 행정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