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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가우/박창기
적막 너머 따뜻한 풍경 끌어안기/겸허하고 신성한 ‘마음의 그림들’
우리가 그 이유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에는 ‘참’을 참으로 규정해 주는 궁극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시인은 침묵과 적막 속에서 근거 자체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다.
진정한 위기는 근거의 상실이다.
궁극적 근거를 굳게 믿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적막은 따뜻한 적막이다.
시인은 시집을 감동스러운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 한다.
-문학평론가 김인환 님의 해설에서
마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꿈
중진시인 이태수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침묵’이 중심 화두인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2012), 『침묵의 결』(2014)에 이어 내놓은 2년 만의 시집으로
‘적막’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마음의 그림들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1974년 《현대문학》 등단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초월’을 기본 명제로
더 나은 세계 꿈꾸기로 일관해 온 시인은 근년 들어 신과 자연, 자연이 함축하는 언어, 인간의 언어와 비인간의 언어 등
이 세계의 본질과 현상에 천착하면서 부단히 신성을 환기해 왔으며,
이번 시집은 그 연장선상에서 부드러운 서정적 언어로 한결 그윽하고 원숙한 경지를 펼쳐 보인다.
220회 詩하늘 시낭송회는 이태수 시인과 그의 새 시집 『따뜻한 적막』(문학세계사, 2016)을 초대합니다.
더운 여름이라 편안하게 지내시도록 8월은 비워두었는데 지원금 덕분에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중진시인을 모셨습니다.
이번에는 대관 때문에 수요일에 모시게 됨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초저녁 좋은 사람과 나들이 하신다 여기시고 다녀가십시오.
좋은 시와 성악가의 멋진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일시 : 2016년 8월 10일 수요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남구 남구청소년창작센터 창공홀(경북여상 정문 앞)
(대구 남구 중앙대로 45길 53)/053-664-3100
-회비 : 없음
-시인의 시집은 공연 전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제공 : 시하늘 여름호, 시낭송용 작은 시집
-이태수 시인의 시세계 해설 및 질의 : 김상환 시인
-음악 : 바리톤 박영국/피아노 박은순
-연락처 : 찬솔 010-9358-5594/김양미 010-2824-8346/가우 010-3818-9604
*이태수 시인 약력
-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함
-시집 『그림자의 그늘』(1979, 심상사), 『우울한 비상의 꿈』(1982, 문학과지성사), 『물 속의 푸른 방』(1986, 문학과지성사),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1990, 문학과지성사), 『꿈속의 사닥다리』(1993, 문학과지성사), 『그의 집은 둥글다』(1995, 문학과지성사),
『안동 시편』(1997, 문학과지성사), 『내 마음의 풍란』(1999, 문학과지성사),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문학과지성사),
『회화나무 그늘』(2008, 문학과지성사), 『침묵의 푸른 이랑』(2012, 민음사), 『침묵의 결』(2014, 문학과지성사),
육필시집 『유등 연지』(2012, 지식을 만드는 지식인),
-시론집 『여성시의 표정』(2016, 그루), 『대구 현대시의 지형도』(2016, 만인사), 미술산문집 『분지의 아틀리에』(1994, 나눔사) 등을 냄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지냄
-대구시문화상(1986,문학), 동서문학상(1996), 한국가톨릭문학상(2000),
천상병시문학상(2005), 대구예술대상(2008) 등을 수상함
*이태수 시편 감상
미시주의, 또는
-이태수
나는 미시적 거시주의자,
아니, 거시적 미시주의자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수 있다
둘 다 틀리고 다 맞을 수도 있다
아니, 맞는 게 틀리고 틀린 게 맞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날이 오고 달이 오고 해가 오고
다시 오고 가고 다시 오다가 가다가 오고 가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물방울이나 이슬방울들처럼
풀잎에 맺히듯 글썽이고 싶었다
맑고 투명하게 반짝이고 싶었다
작아지면서도 그 외연을 넓히고 넓혀
이 풍진세상을 안아 올리고 싶었다
풍진을 다 떨쳐낸 세상을, 우주를
꿈꾸며 깊이 끌어안고 싶었다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커지고 또 커지고 싶어진다
풍경 소리
-이태수
풍경 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정처 없이 길을 가다가 듣는 이 소리는
비몽사몽,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손길 같다
가까이 끌어당길수록 아물거리지만
잊었던 노래의 몇 소절처럼 그윽하다
저녁 한때의 마을과 멀어지는
외딴길 언저리,
어둠살에 묻히는 소나무 등걸에 기대선다
낮달도 서산마루를 막 넘어가고
별들이 흩어져 앉는 동안
마냥 그대로 붙박인다
갈 길도 가야 할 길도 아예 다 내려놓고 싶다
여전히 어둠을 흔드는 풍경 소리,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들여보낸다
안 보이는 어떤 부드럽고 커다란 손이
검은 구름 사이로 어른거린다
마을의 불빛은 왠지 점점 더 멀어져 보인다
한낮의 정적
-이태수
구름 그림자가 내 앞에 멈춰 선다
나도 발걸음을 멈춘다
잠시 서 있는 동안
새들은 날렵하게
나무에서 나무로 옮아앉는다
누군가 저만큼서 가까이 다가온다
무슨 말이라도 건네려 하는지,
헐렁한 모자 깊숙이 얼굴 파묻은 채
그냥 지나치려 하는 건지,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초침이 채근하듯 나를 올려다보고,
어지럽게 또 한 떼의 말이 밀려온다
나는 그 말들도 채근도 애써 밀어낸다
스쳐가는 사람의 꾸부정한 뒷모습,
마치 안으로 잦아드는
자기 그림자 같다
새들도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고
구름 그림자가 다시 제 정적을 밀며 간다
바람과 나
-이태수
문득, 가던 길을 멈춰 선다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갔다가 되돌아오는지
길가의 풀과 나무들, 마음을 흔들어 댄다
흔들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순간에도,
아무리 멀어도 가야할 길은 가고야 말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도 바람은 나를 흔든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지?
바라보면 저만큼 내가 떠밀려간다
떠밀려가다가 다시 떠밀려온다
멈춰서 있는 순간에도 떠밀려간다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떠밀려가다가 되돌아오고
오다가 가지만
떠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수평선
-이태수
해변의 외딴집 낯선 창가에 앉아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하늘과 바다가 올라가고 내려오려 하지만,
서로 끌어당기고 끌어들이려 하지만,
팽팽한 경계, 그 사이로
작은 어선 몇 척이 떠간다
바다와 하늘은 끝내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한다
끌어당겨지지도 끌어들여지지도 않는다
해가 서녘에 기울 때까지
수평선 멀리
괭이갈매기들을 따라나서는 마음에
날개를 달아보려 할 따름이다
해변의 낯선 외딴집 창가에 앉아
올라가려는 마음과 내려오려는 마음을
끌어당기고 끌어들이려할 뿐,
하늘과 바다 사이에 보일 듯 잘 안 보이던
내 마음의 수평선도 차츰 뚜렷해진다
그 수평선을 홀로 들여다봐야만 한다
유리벽
-이태수
유리창 너머의 오동나무 빈 가지에
뛰어내리는 겨울 햇살
앞산이 몇 발자국 다가서는 듯하더니
멈춰 서버린다
앞산은 따스한 유리창 이쪽과는
여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몸이 굳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창밖의 앞산 자락을,
그 응달의 나무들과 마른풀들까지
앞마당으로, 다시 창 안으로
지그시 끌어당긴다
안으려 해보지만 품을 수는 없다
창유리에 부딪치는 바람소리,
간헐적으로 희미한 새소리
유리창은 그 투명함만큼이나
확실한 벽이 돼버린 것일까
이 벽은 안팎을 확고하게 분할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헛손질을 하게 된다
아마도 새봄은 먼 데서
느린 걸음으로 오고 있겠지만
바람은 여전히 유리창을 흔들어댄다
어떤 평행선
-이태수
담장 아래 연초록 풀잎들이 돋아난다
저버리지 않은 언약같이,
못 견디도록 사무치는 그리움처럼,
북풍한설 다 밀어내고 햇살을 끌어당긴다
지난 겨우내 참아온 말, 너를 좋아한다는
그 말, 안으로 굳게 빗장 지른 채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것 같은 그 말 한 마디,
남몰래 햇살에 꺼내보다 깊이 끌어안는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는 물,
영영 되돌릴 수 없는 화살 같지만
봄은 또 발자국소리도 없이 먼 길 돌아서 오고,
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이내 지고 말겠지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새들이
담장 옆 빈 나뭇가지에 앉아 밝게 지저귄다
나무들도 제자리에서 힘껏 달리고 있는 중일까
내 마음 알 리 없는 너는 저만큼 가지만
그래도 이 평행선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아무도 몰래 쟁이고 또 쟁여온 말.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 말이
설령 안으로만 반짝이는 유리알 같더라도,
풀잎 이슬
-이태수
키 큰 은행나무 아래
작은 풀잎들이 이슬방울들을 매달고 있다
빗살무늬처럼 담벼락을 타고 내리는 햇빛,
먼 산은 여태 안개비단자락을 걸쳤다
이따금 실바람도 휘감긴다
이슬방울들은 글썽이다 이내 기화한다
더러는 땅바닥으로 굴러 내린다
나는 은밀하게 그 풍경 속에 깃들인다
이슬처럼 흘러내릴 것만 같은 마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오늘도 아침은 그렇게 온다
막 뛰어내리는 햇살을 받고 있는 풀잎에
투명하게 반짝이는 이슬방울들,
이슬처럼 작지만 맑아지고 싶은 꿈의
이 덧없는 사방연속무늬
키 큰 은행나무와 먼 산은
그나마도 이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득히 높은 옥빛 하늘이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듯이,
내가 나를 물끄러미 들여다봐야만 하듯이,
어떤 나들이
-이태수
멧새들이 떼 지어 날아든다
산 너머 먼 숲에서 나들이 온 건지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고층아파트 사이 키 큰 나무들 가지마다
끌고 온 길들을 허공에 죄다 풀어놓는지
새들은 알레그로에서 모데라토로,
모데라토에서 다시 알레그로로 목청을 바꾼다
바람도 슬며시 끼어든다
나무들이 춤추듯 술렁거리고
진초록 잎사귀들이 햇살을 되쏘아댄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드럽고 커다란 손이
이 오후 한때를 어루만져주는 걸까
무거운 마음 떨쳐내려 애쓰던 나도
한나절 땀 흘리며 올랐다가 내려온 산길을
지그시 끌어당겨 들여다본다
가고 싶은 길이 이제야 보일 듯도 하다
새들은 제멋대로 길을 만들었다가는 거두고
거둬들였다가는 새로 깔면서 가는지
옥빛 하늘 자락 흔들며 저만큼 멀어진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따라나선다
등 굽은 소나무
-이태수
산소의 나무들을 바라보면 가슴 찡하다
푸근한 길들을 빚어 끌어안는
저 등 굽은 소나무들
오랜 세월, 비바람 불고 눈보라쳐도
오로지 제 빛깔로만
독야청청 우람한 저 모습
하루에도 몇 번 흐렸다 개였다
흐려지는 사람의 길,
이 미망의 길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성자 같다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안으로 삭여서인지,
바늘처럼 돋아난 진초록의
무성한 잎, 그 입술들
세상이 바뀌고 아무리 달라져도
말 없는 말들만 낮지만 높게 쟁이듯이
등 구부린 채 하늘을 끌어안는 저 나무들
요즘은 나 홀로
-이태수
요즘은 혼자만 있을 때가 잦아졌다
나 홀로 느긋하게
온갖 생각의 안팎을 떠돈다
거기에 날개를 달아보거나
내 속으로 깊이 가라앉을 때가 잦다
빈 집에서 빈 방 가득
생각들을 풀어내다 거둬들이다 하면서
나 홀로 술잔을 기울일 때가 좋아졌다
혼자 마신 술에 젖어
술이 나를 열어주는 길을 따라
나 홀로 유유자적 거닐 때가 좋다
적막이 적막을 껴입고 또 껴입으면
혼자 그 적막을 지그시 눌러 앉히곤 한다
눌러 앉혀 다독이면
그윽하게 따뜻해지는 적막이 좋다
나 홀로, 늘 혼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가고 떠나가고
-이태수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나무를 떠나고
물고기들이 물을 떠난다.
사람들이 사람을 떠나고
강물이 강을 떠난다. 미련들이 미련을 떠나고
구름들이 하늘을 떠난다.
너도 기어이 나를 떠나고
못 돌아올 것들이 영영 떠나간다.
허공 깊숙이, 아득히, 죄다 떠나간다.
비우고 지우고 내려놓는다.
나의 이 낮은 감사의 기도는
마침내 환하다.
적막 속에 따뜻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