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summer night 2008
2013 7 24
편지
김종학 화백의 희수전이 최근에 있었다
희수를 맞아 현대갤러리 3 건물 모두에 그의 일생 혼을 넣어 그린 대표작들을 전시한 것이다
한국에 살아 있는 화가 중 아마도 가장 값비싼 화가가 아닐까
화려한 꽃그림 대작들과 사랑스런 작은 작품들인데 버릇으로 궁금해 물은 한 작품 값이 2억 8천, 다행히 비매품이라 했다
그의 전시를 전에도 보았으나 정감있고 서정적인 작품들도 있지만 너무 강하고 너무 화려하고 너무 담대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 꼭 이맘때 삼청동 입구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김종학의 편지" 라는 제목의 전시가 보여 그저 들어간 것이 마침 오픈 리셉션이 시작되어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2층에 전시된 그림과 글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일반 전시와 다른 것이 오랜 세월 써온 편지 그리고 그 화선지 귀퉁이에 채색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족자 스타일의 표구로 해 전시한 것이다
딸과 아들에게 보낸 것들이다
나는 그의 인생을 전혀 몰랐으나 하나하나의 내밀한 편지를 읽으며 눈을 떼지 못했다
서른 해도 더 전 아빠가 엄마와 헤어져 귀양살이만 같았던 설악산에 들어가 오래 못보게 된 자녀에게 절절한 마음의 편지를 썼고 오랜 세월이 지나 그것을 작품과 함께 공개한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공개하려고 쓴 것은 아닐 것이다
못보게 된 딸과 아들에게 아빠의 마음과 사랑을 글과 그림으로 전하고 그림을 통한 아빠의 존재와 내면 이야기, 아이들이 아빠를 못보고 자라지만 바르게 컸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이혼이 드문 시절 마음이 무너졌지만 아빠는 너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이야기, 딸이 아빠가 제대로 된 화가라는 말을 나중에 못듣게 되면 어떻하나 걱정하는 아빠의 초조감, 그래서 이를 악물고 수행과도 같은 그리는 수련을 인적 없는 깊은 설악산에서 외로이 하는 이야기 등 참으로 가슴애리고 아픈 그 속살을 들여다 봄이 절절하고 민망해지나 남들 후렁후렁 흞고 지나는 걸 나는 세세히 보았다
무명 시절 갈 데가 딱히 없어 형이 있는 설악산을 향하는데 어린 딸이 '이거 아빠 쓰던 드라이기' 라며 떠나는 이삿짐 트럭에 밀어 넣는 장면도 나온다
트럭을 따라 달려오다 우는 딸과 멀어지며 이름 없는 화가 아빠는 울었다
갑자기 만나게 된 우리나라 대가의 작품을 본 것도 감사한데 기대하지도 못한 그 화가의 지나온 삶과 가슴 속 세밀한 움직임, 그 편지를 받은 아들과 딸의 지나간 30년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처럼 보았다
마음이 얼얼해졌다
그림을 대개는 화가의 지나온 역정과 비하인드 휴먼 스토리를 모르고 본다
고흐처럼 세계적인 화가가 되어서 100년 후 안들으려도, 귀잘린 이야기며 살아서 그림 한점 못 판 이야기, 동생 테오가 화가 형을 일생 뒷바라지해 같이 나란히 묻힌 이야기 등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절로 알아지는 경우 이외엔 그렇다
그래서 공부 안한 우리는 눈으로만 보고 맘대로 상상해 버린다
보고 나오는데 그 날에 맞추어 펴낸 같은 제목의 두툼한 책 "김종학의 편지" 를 화백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1년 후 맞게 되는 희수전
화가의 진솔한 마음을 들여다 보기 전과 후는 그 그림을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 삶의 잔상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다
진정한 예술가는 창작과 삶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내면의 저 깊이와 존재의 근원에 이르며 그것만이 신神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화백의 넉넉한 모습을 다시 마주하며
김종학 화백의 그림과 편지집 2012
월하 moonlight 2012 acrylic on canvas 를 배경으로 한 화백 - 2013 7
화백의 외손주 심용우 외손녀 Emma와 딸 현주씨 시인과 행복이 가득한 집 잡지 이영혜사장
※시인 이승신 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