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정권은 왜 단기간에 몰락하였는가?
별무리모둠 : 조 선 아
@학습목표 : 무인정권이 단기간에 몰락한 이유를 알고, 반성적 태도를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탐구해 보자.
@목차 : 무인정권의 시작
무인정권의 횡포
무인정권의 몰락
#무인정권의 시작
문신들은 문치주의에 입각하여 권력, 재력 등을 독차지하였으나 무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또한 문신들은 향락 생활에 도취하여 먹고 즐기는 데에만 신경을 썼고, 무신들은 그들의 호위병 구실밖에 하지 못하였다. 대장군마저 하위 문신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군 사령관직 또한 문신에게 빼앗길 정도였다. 이렇게 차별을 받는 무신들이 품은 불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결국 의종 24년, 무신들은 반란을 일으켜 문신들을 제거하고, 명종을 옹립하여 허수아비로 세워둔 채 정권을 휘어잡았다.
⇒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권력을 독차지 했던 문신들이 몰락을 하였다. 정치를 할 때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되고, 백성들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만 한다.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독재가 생겨나기 때문에 권력은 적절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 무인들의 횡포
무신들은 중방을 중심으로 문신들처럼 권력을 남용하였다. 그들은 고위관직부터 하위 말직에 이르기까지 관직을 독차지하였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사유지를 확대해 재력을 키웠다. 무신들의 이러한 행태는 이전 문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이 부렸던 횡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백성들은 무신들에게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리하여 전국 곳곳에서는 민란이 발생하게 된다.
⇒ 문신들이 횡포를 부려서 그 것을 막아보자고 혁명을 일으켰는데, 자신들도 막상 혁명에 성공하고 나자 문신들처럼 횡포를 부림. 호위호식 하는 자세는 백성들에게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그들로 인해 자신들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백성들과 교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무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횡포만 부렸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권력자가 돼서 겸손과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무인들의 몰락
무인정권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지고 민란이 잦아지자, 무인정권에 반하는 세력은 날로 커지게 되었다. 결국 참다못한 문신들과 일부 무인 세력들은 몽고에 도움을 요청하여 무신 정권을 타개하였다.
⇒ 결국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몰락함.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횡포를 부리다가 오랑캐들에게 나라의 권력을 넘겨줄 정도로 나라의 기강이 흔들림
즉,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다간 나라가 휘청거리다 무너지게 된다.
#결론
무인들은 문신들이 집권하면서 독재를 한 것에 대해 무엇이 잘못되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문인들 보다 더욱 심한 횡포를 부린다. 우리는 무인정권 시작부터 몰락까지를 보면서 우리가 어떤 것을 반성해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첫 번째로 우리는 권력의 분배를 통해 독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자신이 권력을 잡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제일먼저 백성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장과 이익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의견조율을 해서 협력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별무리 모둠 선정 [무인정권] 6 대 중요 사실
우선순위 |
중요 사실 |
선정 이유 |
1 |
936년 |
후삼국 통일 |
왕건이 친신라정책으로 통해 신라인들의 민심을 사게 되어 후백제 후고구려를 통일 시킨다.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이루게 된 우리민족의 통일이라서 후삼국통일은 더욱 의미 있다. 그리고 한반도가 한 나라로 통일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고려건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
2 |
1126년 |
이자겸의난 |
문벌 귀족사회에서 이자겸이 세력을 갖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권세를 독차지한 사건이다. 하지만 욕심이 커져 인종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려다 결국 실패하여 이씨의 세력이 몰락하고 만다. |
3 |
의종 24년
(1170) |
무신의 반란
(경인란) |
국왕을 호위하던 장군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은 왕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군인들에게 문관을 모조리 죽이라고 선동하며 반란을 일으킴. 무신들과 군인들의 합류는 이 반란을 쉽사리 성공시킴. |
4 |
1231년 |
몽고의 침입 |
거란인들을 몽고와 고려가 협공을 하면서 몽고와의 접촉이 시작된다.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으로 자처하고 고려에게서 많은 공물을 취하여 갔다. 하지만 요구가 너무 심해 고려는 불응하였고 그 후로 몽고와 고려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몽고와의 항쟁이 시작되었다. |
5 |
1236~51년 |
대장경판 완성 |
당시 불교문화권에 있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몽고군을 막겠다고 팔만대장경판을 제작한다. 그만큼 항쟁이 힘든 싸움 이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 대장경중 가장 오래되고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띄고 있는 대장경이다. |
6 |
고종45년 |
무인정권의 몰락 |
참다못한 문신세력은 결국 적인 몽고와 손을 잡아 무신들을 척살하였다.
무인정권의 핵심이었던 최씨의 마지막 집권자인 최의가 문신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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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역사] 연표
1. 발표 범위 : 무신정권의 시작~몰락
2. 발표 주제 : 무신정권이 단기간에 몰락한 이유
3. 관련 연표 :
연월일 |
한국사 |
세계사 |
비고 |
1019년 |
귀주대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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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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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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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
이자겸의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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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년 |
망이,망소이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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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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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마쿠라 막부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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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년 |
최충헌의 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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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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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 칸, 몽고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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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년 |
고종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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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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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헌장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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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
몽고의 제1차 침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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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년 |
대장경판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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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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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한자 동맹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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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년 |
팔만대장경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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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5~1257년 |
몽고의 제5,6,7차 침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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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 |
원종 즉위, 고려,몽고의 항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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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년 |
삼별초 항쟁, 개경 환도 (무신 정권의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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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정권은 왜 단기간에 몰락하였는가 (2).hwp
무인정권은 왜 단기간에 몰락하였는가ppt.pptx
첫댓글 무인정권의 시작을 연 무신정변은 문신 중심 문벌귀족사회의 문제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고려 귀족정치는 숭문천무 정책에 따라 무를 천하게 여겨 문인과 무인을 차별대우하였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무인들은 정변을 일으켰고, 곧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무신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부패 때문에 민중들은 고통을 받았고, 이 때문에 농민과 천민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끌고자 하는 지도자가 자신 만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한다면 결국 집단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내부가 탄탄하지 않은 집단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인정권이 붕괴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저는 지도자란 집단 구성원의 전체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문신들이나 무신들은 권력을 잡았을 때 똑같이 횡포를 부리고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위한 정책만을 펼쳤습니다. 여기서 권력이라는 것 자체보다는 권력을 잡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잡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 잡은 권력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냐는 중요성 말입니다. 그리고 무신들의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여기서 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백성이라는 점이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힘들게 잡은 권력이라 하더라도 나라의 주인인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못한다면 그 권력 또한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더욱 겸손해지며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소연 : 1) 백성의 소리를 듣기 위한 노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수정하였습니다.
무인정권은 문치주의에 맞서 무인들이 정치개혁을 펼친 것입니다. 하지만 무인들이 정권을 잡은 뒤 상황은 변화된 것 없이 부정부패가 성행 하고 오히려 민란의 발생이 잦아지게 됩니다. 이는 혁명을 성공한 뒤 무신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권력을 가지기 전과 후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권력자는 우선 겸손의 자세와 여러 가지 방면을 살피고 무엇 보다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의 유무에 따른 인간의 욕망을 엿볼 수 있었고 그 힘이라는 것에 대한 본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 힘이 가지는 성격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힘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힘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 또한 힘들다는 것을 무인정권시기 무인들의 행동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높은 권력의 자리는 욕심을 낳게 됩니다. 권력자에게 욕심을 통제하는 인품이 없다면 무인들이 단기간에 무너졌던 것처럼 권력의 자리에서 빨리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는 남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새로운 도전의식을 가진 진취적인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모두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무인들은 문인들의 횡포에 너무나 큰 피해를 보고 결국은 개혁하여 권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정권은 전과 같은 폐해를 대물림했고 결국 그리 길게 가지 못하고 다시 바뀌게 됩니다. 거기에서 힘의 중요성과 항상 한쪽으로 치우쳐진 힘을 경계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인들이 권력을 잡고도 항상 힘을 경계하고 겸손했다면 정권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고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입니다. 교사라는 지도자가 되었을 때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항상 힘을 경계하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번 별무리 모둠의 무인정권 발표를 통해 힘, 권력의 본질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힘의 작용은 그에 따른 반작용을 낳습니다.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연못을 강하게 내리치면 물이 자신에게 튀길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연못에 담가 가볍게 휘젓기만 해도 충분한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데 말입니다.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무신들은 자신들의 횡포에 따른 백성의 반감을 너무 쉽게 여겨 결국 무인정권은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백성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자신이 일으킨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경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신정권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무신들은 문인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권을 잡고 초심을 잃어 부정부패를 하였다는 점에서 우리가 후에 교사가 되었을 때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학생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지적해 주셨던 무신정권이 고려청자, 팔만대장경제작에 이바지한 근본적인 힘이었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무신정권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았던 저의 편협한 관점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인정권에 반발하여 더 나은 정치를 하겠다고 등장했던 무신정권도
역시 초심을 잃고 권력에 찌들게 되었듯이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며 경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인 정권을 통해 힘은 견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밑에 있을 때는 위에 올라가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막상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올라서면 겸손을 잃게 되고 자만해진다는 것을 무인 정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일관성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인 정권과 비슷하게 현대에서 박정희 정권에서 되풀이되었듯이 우리는 이를 항상 각성하고 더는 되풀이되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최씨 정권은 강화도로 옮겨 가서 몽골에 대항했으며 최충헌으로부터 최우, 최항, 최의에 이어지는 동안 7차에 걸쳐 몽골과 전쟁을 치렀다. 다시 권력을 잡으려는 문인들은 외세를 이용해 무인세력을 견제하려고 몽골과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그리고는 일부 무인과 결탁하여 몽골과 강화를 맺고 최씨 정권이 무너졌다. 강력했던 최씨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무인정권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생기고 그 결과 무인정권이 몰락했다. 이는 무인정권이 왜 단기간에 몰락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다. 권력을 잡은 무인은 문인에게 자신들이 받은 설움을 그대로 갚아주면서 문인과의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문인과의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무인들이 고려 사회의 진정한 권력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며 진정한 권력을 얻지 못해 무인정권이 단기간에 몰락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의 입장도 또한 수용하여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인들의 횡포, 몰락은 '힘은 항상 견제되어야 한다.'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사람들과 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인들의 횡포, 무인들의 반란, 무인들의 횡포, 몰락을 통해서 그 시대 사회는 건강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도 역사의 한 흐름에서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되고 성공하면 결국 나중에 잊기 마련입니다. 항상 되돌아보는 자세를 가지고 올챙이적 시절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권력의 견제 또한 필요합니다. 누구든 권력을 잡게되면 권력을 남용하기 마련입니다. 권력을 잘 나누려면 견제기구 또한 필요합니다. 이런 적절한 권력의 견제가 있을 때 비로소 한 사회는 잘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무인정권이 일어나고 몰락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권력이 재대로 분배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힘이 재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누군가는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입니다. 권력의 적당한 분배는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듭니다. 권력을 가진자는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말고 잘 분배하여 원할히 어떤 일이든 유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