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기가 나를 불렀다
나희덕
돌로 된 아기들을 지나왔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발에 가시가 박혔다
햇빛도 못 보고 죽은 핏덩이들에게
형상을 주고 이름을 붙여준 이는 누구일까
돌아기들은 빨간 모자를 쓰고
이름이 적힌 수건을 목에 걸었다
아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었지만
햇빛과 빗물에 바래 보이지 않았다
아기들이 돌 속에서 웃었다
세상의 고통을 만져본 적이 없는 웃음이다
아기들이 돌 속에서 울었다
세상의 고통을 적신 적 없는 울음이다
머나먼 강가 모래밭에서
돌아기들은 고사리손으로 탑을 쌓았다
강을 건너려고 수없이 쌓았다가 허물어진 돌탑
그 곁에 엎드려 울고 있는 돌아기들에게
돌로 된 어머니가 나타났다
울지 마라, 아가야.
내가 저 강을 건네주마, 내가 너를 낳아주마,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왼손에는 아기를 안은 돌어머니
그녀의 두 발과 옷자락이 젖어 있었다
돌로 된 아기들을 지나왔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가시가 박혔다
한 아기가 나를 불렀다
돌 속에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시안』 2008년 봄호
* 전남 보성군 소재의 대원사에서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이다. 잉태는 되었지만 온전하게 태어나지는 못한 생명들의 원과 한을 달래는데 중심을 두고 있는 절이 대원사이다. 따라서 여기서 “돌로 된 아기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햇빛도 못 보고 죽은 핏덩이들”을 뜻한다. 근대화되고 산업화되는 동안 공공연히 산아제한을 실시해 온 것이 우리나라이다. 그 과정에 살해된 영아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절에선 이들 영아에게 형상과 이름을 주고 있다. 돌로 만든 아기들에게 “빨간 모자를” 씌워주기도 하고 “이름이 적힌 수건을 목에 걸”어 주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에 동화된 화자는 여기서 이들 “엎드려 울고 있는 돌아기들에게” “돌로 된 어머니”로 다가가 “울지 마라, 아가야./내가 저 강을 건네주마, 내가 너를 낳아주마”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때 “돌 속에서 아장아장 걸어 나”온 “한 아기가” 화자를 부른다. 화자도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 중의 하나인 것이다.(이은봉)
[나희덕 시인 약력]
1. 1966년 2월 8일, 충남 논산시(연무대) 출생.
2. 전 조선대, 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전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문리대 학장.
3.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로 등단.
4.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
6. 저서
1)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기능주의자』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등.
2) 수필집: 『반통의 물』, 『상상은 겸손한 발걸음이다』 등등
3) 시평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명의 바깥으로』 등등
5. 수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일연문학상, 백석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