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 한강 / 문학과지성사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난해하지 않다. 다만,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하는 지점에서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정리가 안된다는 것은 생각을 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생각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은 소설이 나에게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줬다는 말이 된다.
정운형, L과 E는 각각의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각각의 아픔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
작가는 정운형이라는 예술가의 시각에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보려 한다.
예술의 장르 중, 굳이 3차원으로 표현해야 하는 조소를 작가는 선택한다. 운형은 석고로 사람의 몸을 뜬다. 라이프캐스팅(Lifecasting)이라 부른다. 삶을 평면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나는 나의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거울을 통한 평면의 모습뿐이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전체를 보지 않고 먼저 부분으로 접근한다. 무엇이 전체를 대변하는가. 전체로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으면,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운형은 손에서 시작한다. 한 개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고, 변수가 객관적인 기준에 잘 적용되는 부분이 아마도 손이라고 생각한 듯싶다. 손은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을 담당한다. 그는 손이 아름다운 사람을 찾는다.
L은 손이 아름다웠다. 손으로부터 시작하여 운형은 그녀의 몸을 석고로 뜬다. 계부의 성폭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했던 그녀, 과도비만으로 스스로 괴물이라 여겼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망가져 가고, 속은 텅 비어 간다. 외모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L.
"이 사진 보면 다들 이쁘다구 그래요. 웃는 얼굴이 귀엽다나. 웃기죠. 그때 이미 지옥이었는데."
"웃음이란 게 얼마나 웃기는 가짠지. 사람들은 모르니까." 117
"그러니까, 너 없이 돌아갈 그 세상이라는 게 너한테 무슨 의미라는 거지?" 164
E의 손은 상처의 손이다. 육손이로 불리던 어릴 적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어릴 적 자신을 철저히 감추기를 원하는 그녀는 어느 선 이상으로 그녀를 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를 밝혀보지만, 그것은 자신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인 것을 그녀는 배운다. 시골의 육손이가 아닌 철저한 미모의 지성인으로 자신을 지켜간다.
천천히 알게 됐어. 진실이니, 고백이니 하는 따위는 웃기는 거라는 걸. 그걸 들은 사람은 반드시 이용하게 돼 있어.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별수없어.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이용해. 아주 화가 나거나, 모욕을 주고 싶어지거나 할 때∙∙∙∙∙∙ 295-296
얼굴과 복장이 사람을 사로잡아버리면 다른 것은 잘 안 보인다는 걸 알게 됐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키나 몸집이 어땠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는 걸. 297
운형은 어떤가. 차가운 미소, 거짓 미소, 미소 속에 숨긴 어머니의 차가운 모습, 총기사고로 두 손가락을 잃은 망나니 외삼촌,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산을 받고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와, 새엄마와 배다른 형제자매들이 있는 그의 삶도 평범하지 않다.
"나보다 더 큰 몸을 가진 여자를 떠서, 그 틀집 속으로 들어가 죽는 것. 그렇게 영원히 함께 있는거야." 293
운형이 P의 작업실을 찾아간다. E와 하룻밤을 지냈다는 것을 운형에게 말한다. P가 느끼는 E와 운형이 느끼는 E는 다르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P가 방금 꺼내 썼던 얼굴을 벗는 것을, 지극히 단순한 얼굴로 돌아 가는 것을, 그 벗어놓았던 얼굴을 잠시 후 다시 걸치는 것을 보았다. 236
다른 사람의 몸을 뜨는 것을 통해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으나, 정작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던 운형은 E를 통해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차가웠던 손은 따뜻하다.
"네가 날 꺼냈고 ∙∙∙∙∙∙ 또 난 널 꺼낸 건가?" 315
자신의 석고를 다 깨버리고, 그들은 자유를 찾은 듯 보인다. 그리고 운형은 원했던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작가의 눈에서나 그들의 모습은 인지되었고, 세상은 그들을 찾지 못하고, 잊혀진다.
나에게 이 소설은 잊혀질 것이다. 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