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물질, 그것이 문제다
텔레비젼의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다이슨이란 청소기를 사용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기 청소기가 있는데 새삼스럽게 욕심을 내는 것 같아서 사기를 머뭇거렸다. 아주 많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줄을 끌고 청소기를 돌리는 게 무언지 모르게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줄 없는 그 청소기가 사고싶었다. 때마침 아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 양가
모두 가전을 갈아타자는 제의에 에어컨과 인덕션, 다이슨 청소기를 들여놓게 되었다.
신규 아파트와 판매점이 제휴를 맺어 할인률을 높일 때 같이 하자고 하면서 아들이 일사
분란하게 해결해 주어서 삶이 갑자기 유쾌해졌다. 이 때 나는 아들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문제를 기꺼이 해결해 준 것이 기분 좋았다.
아들 생각을 하면서 재미나게 청소를 하고, 줄이 없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꾸 청소기를
든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무튼 집은 나날이 깨끗해지고 나는 청소가 즐거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독일제 라미 만년필을 주신 적이 있다. 잉크가 줄어드는 것이 투명
유리관으로 보이는 자주 빛 만년필은 애장품 1호가 되었다. 그 만년필을 사용하기 위해
필기를 자주하고 공부를 충실하게 하였다면 미제 색연필 한 케이스가 생겼을 때 나는 지리
노트를 원색인쇄 노트처럼 만들었다. 도구가 나를 즐겁게 하여 주어서 그 과목 자체도 좋아졌다.
새 청소기가 생기고부터 하기 싫던 청소가 재미가 붙고 집에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자주
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청소를 한 후 먼지를 매회 버려야 하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그냥
두고 사용하였다.
어느 날 청소가 돌아가는 소리가 달라졌다. 누름 버튼을 잡고 이동을 하면
“후이~~~~~~잉” 하고 달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날 따라 " 후이잉...타르륵"하고 끊어지고 또
그러기를 반복하는 거다. 나는 충전이 덜 되어서 그런가 하고 이틀이 지나 다시 해봐도 같은 현상
이 나타났다. 분명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접촉 불량인가 하다가 망가트릴까봐 아들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 주일, 토요일에 딸이 왔다. 수도꼭지와 샹들리에 고쳐놓은 것을 보고 브라보를 외치더니
청소기를 내밀자 분해를 시작한다. 갈그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딸애가 다시 조립을 하여
청소기를 돌리니 "후이......잉" 하고 제대로 소리가 난다.
"어떻게 했어?"
"엉. 이물질이 끼었네요."
"이물질....."
나는 이물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현관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노인 분
생각이 났다. 자신이 쓸모가 없는데 살아서 뭐하나 싶다고, 매끈한 벽면에 툭 불거진 돌
같다고 그냥 일찍 갔으면 좋겠다고 그런다. 몇해 전 겨울에 눈이 온 날 계단에서 미끄러져
고관절을 다치더니 재활센터에서 6개월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 후로 내내 지팡이에 의지하고
외로운 삶으로 이어진다. 아들과 함께 살지만 아들이 친구가 될 수도 없고, 아무하고나 편하게
잘 놀지도 못하는 분이다. 지나치게 추워도 나가기가 어렵고, 더워도 견디기가 어려우니 요즈음
가끔 아파트 현관 창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어느 한 장면도 우리네 미래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입장인데, 92세 내 어머니는 홀로 집을
지키면서 자식들이 들락거리기를 한없이 기다린다. 다소의 자유가 주어지면 외로움이 크고,
한 집에서 가족과 지내면 쌍방이 숨막힐 듯 하니 현실적으로 노인 문제가 보통 일은 아니다.
이 시대에 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어느 만큼 일 때 무리 없이 잘 돌아가는 청소기처럼
느껴질까. 노인이 ‘불거진 돌, 이물질’이란 느낌이 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노인의 아들은 효자다. 어쩌다가 내가 고운 옷을 입고 외출을 하면 자신의 어머니는 나 같은
옷을 못 사드렸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자신의 아내를 들먹여야 하는 입장인 것 같은데 오직
어머니에게 마음이 가 있다. 본인은 ‘불거진 돌’처럼 느껴질 수 있고 다른 가족은 청소기의
이물질처럼 느겨 질 수도있다.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시대의 변화가 커서 전통을 고수하고
원만하게 살기가 힘이 든다. 그래도 기도를 마치고나면 사랑이 비 오듯 하지는 못해도 어머니가
있는 일상의 삶이 돌아간다. 이물질 꺼낸 청소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