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속오계의 고장 경주 건천(乾川)
세계적으로 氣가 센곳이 있다.
중국의 화산, 중동의 시내산, 미국의 세도나, 한국의 계룡산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려고 소개한다. 바로 경주시 건천이다
건천(乾川)은 마른 내이기도 하지만 팔괘중 極陽인 건괘(乾卦)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태극기의 4괘중 하나로서 하늘과 아버지를 뜻한다.
이지역의 땅은 陰의 기운이 센 지역인데 하늘은 陽의 기운인 乾이 들어와서 음양조화가 작용하여 피조물이 되었다.창조물 중 압권은 이지역의 성지(性地)인 여근곡(女根谷)이다. 자연의 조화 중 참으로 오묘하다.

여근곡 뒷산을 오봉산 또는 부산(富山)이라고 한다. 서울의 도봉산에도 여성봉이 있고 근처에 오봉이 있어서 음양의 조화를 맞추듯 이곳 지명 또한 같다. 오봉산 정상에 산성이 있는데 이를 부산성이라 한다. 이곳은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하기위해 군사훈련을 시키던 곳인데 논산 훈련소의 원조격이다.
이곳 산성을 쌓을때 고된 부역을 한사람이 득오란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모함죄를 받아 강제노역형으로 이곳의 산성 쌓는 일에 처해졌는데 이를 가엽게 여긴 선임 화랑인 죽지랑이 있었다. 죽지(竹旨)가 이곳 모량리 태생이다. 득오의 억울함을 해원시켜주고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그 유명한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이다.
이 대목에서 우애(友愛)란 감정이 소환된다.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에도 나오는 핫플레이스(hot place)다. 옛날 영남지역 선비가 한양에 과거보러 갈때도 이곳을 보면 피끓는 젊은 유생이 심쿵하여 답안지를 작성하지 못할까봐 일부러 먼길을 우회했다고 한다. 근자에는 6.25전쟁때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밀고내려오다가 경주를 앞두고 이곳에서 진격을 멈추고 더 나아가지 못했고, 같은 전장에서 미군은 환호작약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의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이 생겼다.
몇년전에 이곳에 사는 농부가 밭둑을 태우다가 불이 산으로 옮겨 붙어 뒷산인 오봉산이 홀라당 타버린 적이 있는데 옥문을 중심으로 음기의 진원지는 불길로부터 안전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이곳 옥문지(玉門池)는 이름부터 요상하다. 짓궂은 사내들이 옥문지에 작대기로 쑤셔놓기도 하는데 그럴때 마다 이 마을 처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하여 못하게 막고있다.지금 이 마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데 수량은 많지 않으나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해마다 젊은 사내의 혼백을 앗아가는 자살나무가 둔덕에 있다. 모두 다 이 여근곡의 기운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좌청룡 우백호 하면서 공부하는 지형도가 있는데 바로 여근곡의 모습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여근 모양의 지형을 명당이거나 흉한 자리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산세가 사람이 다리를 벌린 모습이면 흉한 곳이며, 정숙하게 오므린 모습이면 명당이다. 흉한 산세 아래에는 여자들이 바람기가 거세지고 남자들은 양기가 위축된다고 믿었다.
옛날에 마을에 좋지않은 흉사가 자주있으면 여신이 강짜를 부린다고 생각하여 여근곡 맞은편 야트막한 언덧에 남근을 세웠다. 그런데 지나가던 소금장수가 남근을 훼손하였는데 현재 철도와 고속도로 중간에 길게 누운 언덕이 그때 잘린 남근이라고 한다.
건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널리 알려진 고대 인물중에 신라충신 박제상이 있다.
박제상은 신라의 외교관이자 로비스트였다.
고구려와 왜국에 인질로 볼모로 잡혀있던 왕의 형제를 구출하고 자신은 죽는다는 충(忠)의 표본이었다.
풍수지리하는 사람은 치명적인 직업병이 있는데
항상 현상이 나타난 이면을 본다. 충신이 있으면 열녀가 있기마련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박제상의 부인과 두 딸의 사랑이 승화되어 치술령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천년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곳 사당은 가족을 모신 패밀리 사당(family shrine)이다.
아마 이곳의 기운이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이끈것 같다. 이곳 건천 출신의 김대성이란 역사적 인물이있다. 김대성은 효와 사랑의 아이콘이다.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돕고자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만들었고, 이승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대성은 효(孝)의 표본이다.
김대성의 지극한 효심으로 불국사를 창건하면서
백제의 장인(匠人)을 스카웃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석가탑을 만든 아사달이고 아사달의 젊은 색시가 아사녀이다. 이들의 절절하고 애틋한 러브스토리는 석가탑(無影塔)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사달은 애(愛)의 아이콘이다.
시간을 스킵하여 최 근세로 오면 이곳 건천 사람중에 박목월이 있다. 태어나기는 경남 고성이지만 자라면서 이곳의 산천을 보고 시적 감수성을 키웠으니 목월은 건천사람이다.
그는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했는데 청록파 시인은 이 제목에서 유래한다. 빛나는 재질과 향토적인 서정으로 시의 형식과 내용에서 미학을 추구한 그는 시단에 금자탑을 세웠다.
목월이 대학교수시절에 제자와 사랑에 빠져 도피행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교수란 지위는 높고도 거룩하다. 이것을 팽개치고 사랑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따라하지 못하는 오비같은 쫌생이에게는 신이다. 40대의 유부남 목월이 한 철없는 애정행각이 사회의 지탄을 불러올것은 자명한 일이라, 아무도 모르는 제주도로 도망을 갔다. 윈져공과 심프슨부인의 사랑 얘기에 가깝다.

목월의 부인이 수소문하여 이들을 제주도로 찾아가니 바람많은 삼다도에 문구멍이 숭숭뚫린 사글세방에 홑이불 밖에 없는것을 보고 남녀 옷 두벌과 밥굶지 말라고 생활비 봉투만 내밀고 올라왔단다. 차라리 멱살이라도 잡았으면 바람난 남녀 둘의 결속력이 공고해졌텐데 햇볕정책을 구가한 유익선여사님의 아량에 탄복한다.
이들도 사람인데 제각각 느끼는점이 없겠는가?
철없는 사랑이 밥 먹여주는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밤새 고민하던 불륜 남녀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로 하고 이때 쓴 시에 김성태님이 콩나물 대가리를 붙여 만든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되었으니 바로 이별의 노래다.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이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호온자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땅의 5할은 로맨스이고 나머지 5할은 충과 효가 차지한다. 로맨스는 죄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다.
이런 기운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청도 운문사가 비애(悲哀)와 한(恨)의 진원지다. 비구니들의 구도의 성지 운문사의 아침예불이 그레고리안 찬트라고 한 유홍준 박사님의 심미안을 다시 찬탄한다.
오비 최이락書
고려대 풍수지리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