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내가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나를 지키고
김용아 지음|푸른사상 시선 186|128×205×8mm|144쪽|12,000원
ISBN 979-11-308-2128-3 03810 | 2023.12.31
■ 시집 소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어둠 속 작은 빛과 같은 시편들
김용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가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나를 지키고』가 <푸른사상 시선 186>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물질주의와 비인간화가 심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역사와 사회로부터 희생된 자들의 손을 잡고 연대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 시인 소개
김용아
5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 『월간 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3년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헬리패드에 서서』가 있다.
■ 목차
제1부
동백산행 기차 / 여름 옥수수 / 가까운 세계 / 이팝꽃 ― 2022. 10. 29. 이태원으로부터 / 비누 연습 ―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SPC 노동자를 위하여 / 먼 길 / 배관공의 비눗갑 / 너희들은 꽃단풍으로 살라 하였으나 ―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부쳐 / 폐재에서 / 먼 여행 / 어느 봄날에 / 더 먼 곳에서 돌아온 남자 / 어떤 복직식 / 터널 안에 보선원이 있다 / 8분 46초
제2부
리멤버 희망버스 / 꿈의 다른 이름 / 코로나바이러스 ― 코로나 백서 1 / 저물녘의 강 / 용접공 / 르포가 되어버린 르포 작가 / 동인시영아파트 / 돌아온 손 / 갈색 안전화 한 켤레 / 그늘의 일 / 안전모 / 밤의 말을 받아적다 / 문신 /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도 배려이다 / 행진
제3부
논에는 국경이 없다 / 코로나 학교 가기 ― 코로나 백서 2 / 거리의 아이들 ― 코로나 백서 3 / 제7의 감각 / 목련꽃 그늘 아래 / 봉평집 / 열무 한 단 ― 코로나 백서 4 / 마늘 창고 / 오늘도 너는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중얼거렸다 / 재개발 예정 지구를 지나며 / 슬픔의 방정식 / 색 / 아버지의 눈 / 봄맞이꽃 / 그레고리안의 저문 강
제4부
그 개의 마음은 어땠을까 / 이게 무슨 필사냐고 말하지만 / 소나무에게 / 무중력을 배울 시간 / 한반도 습지 1 / 한반도 습지 2 ― 옥수수 연대기 / 한반도 습지 3 / 한반도 습지 4 ― 오래된 미래 / 한반도 습지 5 ― 서강에서 / 한반도 습지 6 ― 우리는 강에 기대어 산다 / 한반도 습지 7 ― 1인 시위 / 한반도 습지 8 ― 서강의 성자 / 한반도 습지 9 ― 한반도 습지 생태 보고서 / 하송리 두물머리에서 / 기대어야 산다
작품 해설 : 귀가의 권리 - 맹문재
■ '시인의 말' 중에서
어느 날 대형 빵 공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행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무사히 돌아가게 하는 일
강이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하는 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용서하는 일
어둠 속 작은 빛으로 이어져 있어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게 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희미한 빛이 누군가에게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를
■ 작품 세계
현대사회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업재해자, 외국인 노동자, 국가폭력 희생자, 역사 희생자 등인데, 시인은 그들 중에서 노동자들을 우선 호명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노동자의 수가 2천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인 비중이 높아졌지만,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등 고용불안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에는 물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노동시간도 길고, 산업재해도 많이 일어난다. 시인은 이와 같은 노동 환경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을 품는 것이다. (중략)
김용아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사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염원하며 그들의 손을 잡는다. 시인의 행동은 자본주의 시장의 가치 기준으로 보면 이윤이 없다. 기회비용으로 보면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들을 부르며 포옹하고, 그들의 귀가를 가로막는 세력에 맞선다. 개인적인 슬픔을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사회적 존재성을 인식시키고, 그들의 불귀에는 국가와 역사의 책임이 있다는 것도 제시한다. 시인의 자세는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질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적 존재자들에게 귀서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박탈당했고, 지금도 빼앗기고 있다. 시인은 그들을 인간적인 도리로는 물론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껴안는다. 아픔에 함몰되지 않고 귀가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비누 연습
―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SPC 노동자를 위하여
(전략)
뜻밖의 긴 기다림 끝에 다가온 것은 나를 기다리던 익숙한 손길이 아니었어요. 그때 들었어요. 그녀가 작업장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요. 저도 당연히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졌지요. 닳아 없어지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은 어쩌면 닮은 것 같습니다. 하루 내내 모래바람이 일어 나는 붉은 행성을 지나 어딘가로 끊임없이 나를 찾아 떠나는 희미하게 빛나는 별 비누 거품을 내며 손을 깨끗이 씻은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이 언젠가 그녀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이기에 그곳에 가닿는 일은 좀 더 늦어도 괜찮을 일입니다.
먼 길
서울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다니던 소녀상
영월까지 내려왔다
라디오스타 야외 박물관
동해 바다를 뒤로한 채
앉은 소녀는
곧 건너야 할 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듯
의자에 앉아 있다
그날 이후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먼 길 돌아
이곳에 다시 앉은 이유는
단 하나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저물녘의 강
저물녘 강가에서
모두 같은 강을 바라보는 것 같지만
강물 소리에 섞여드는 이국의 언어
강과 가장 가까운 계단에 앉아
영상통화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속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낮고 깊은 목소리
간혹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핸드폰 속을 벗어나
긴 장마로 높아진 강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지만
끝내 어두워지는 강을 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높이로 흐르는 강이지만
이국의 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처음 마주하는
낯선 강이었다는 것을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뛰어노는
저 먼 나라 내 아이들의 숨결 소리가
잡힐 듯 건너오는데
강은 너무 빨리 어두워진다
한반도 습지 3
내가 아무리 간절하다고 해도
서강에 기대어 사는
물까치보다 못하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간절하다고 우겨도
한반도 습지
굽은 소나무에 기대 우는
매미 울음소리에 가닿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간절하다고 내세워도
배추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수요일 아침마다
군청 네거리에 서서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
피켓을 드는 것은
내가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나를 지켜주리라는 것을
일상의 풍경들이 무너지면
나 또한 무너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