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월드컵, 이란이 숙적 미국에 0:1로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날.
낙망한 이란인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먼 조상 크세르크세스 1세(BC 519-465)를 떠올렸다.
선왕 다리우스가 마라톤 전투로 실패한 그리스 정벌을 위해 병력을 동원, 빤스에 망토만 걸친 레오니다스 휘하의 300 스파르탄에게 호된 맛을 보긴 했지만, 결국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해 부친의 한을 풀어주고 페르시아의 위엄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러나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이름 외에 하나를 더 남겼다. (비록 먼 훗날 남의 나라 후손에 의해서지만) ‘옴브라 마이 푸’라는 노래를.
‘옴브라 마이 푸’는 헨델 오페라 <세르세>의 아리아.
세르세(크세르크세스 1세)가 나무그늘에 앉아
“아, 이런(편안&아늑한) 그늘은 결코 없었노라.”
감미로운 선율 위에 카스트라토처럼 뾰족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다.
영화 <300>에서 주렁주렁 잡다한 피어싱을 하고, “짐은 관대하다” 레오니다스의 항복을 설득하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걸걸한 목소리완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허다한 미성의 c-테너들이 옴브라 마이 푸~ 불러 제껴 젖혀 클래식 좀 들었다하는 이들에겐 제법 친숙한 노래다.
헨델의 ‘라르고’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의 제목을
2022년 12월 개국한 한경아르떼TV의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게 되신 울 임.선.혜. 소프님이 문패로 내걸었다. 초대 손님으로 온 음악가나 일반 시청자 모두에게 나무그늘 같이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겠다는 의도임에 분명하다. 토크콘서트는 12월 1일 첫-방 이후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편성되었고, 2023년 새해부턴 목요일 오후 9시로 자릴 옮긴다고 한다.
매회의 오프닝 멘트는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쉼이 있는 곳.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과도 같은 쉼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초대에 응한다. 주인을 잘못 만나 삼백예순날 방안의 모습이나 반사하고 있던 TV가 옴마푸 덕분에 매주 1회 존재감을 발한다.
카메라에 익숙한 소프님조차 다소 부담스러울 법한 1-2분 동안의 단독 클로즈업 샷.
준비해 오신 1-2분짜리 멘트가 끝나면 초대 손님이 등장한다.
12월 1일 첫 방송의 게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날카로움과 서글서글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양인모님은 (베를린 거주) 소프님의 이웃이다. 소프님께서는 ‘인간적 친분과 음악적 기대감’으로 2021년 3월 발매한 그의 두 번째 앨범 <현의 유전학> 트랙 1에 힘을 보태신 바 있다. k-클래식의 미래, (연주자에게) 현대음악의 의미 등의 토크에 이어 시청자들은 시벨리우스 콩쿨 우승 기념으로 받은- 금액을 추정하기 곤란한 과다니니(1772년 제작)의 구현-음을 감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게스트로 산적 수염에 앞머리를 훌렁 넘긴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샌님처럼 얌전해 보이는 플루티스트 조성현(3화),
게스트로 나와 앙증맞은 생일 케이크를 받은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4화),
톡톡 개성이 튀어 오르는 금발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5화)
이상 다섯 분이 12월의 초대 손님이 되었다.
5화까지의 옴마푸 시청 소감을 임뽕 차원에서 정리하자면
- (매화) 마당발 울 소프님, 으쩔꺼나!
- (매화) 게스트가 더 빛나야 허눈디, 으쩔꺼나!
- (4화~) 오그라드는 영상편지, 으쩔꺼나!
노래하실 때의 청아한 음성은 잠깐 숨겨두시고
살짝 비음을 얹어 편안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소프님의 옴마푸.
바라건대, 옴마푸가
국내외 유수 음악가들이 출연을 위해 안달을 하는 고품격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흐/헨델/베토벤/모짤... 모든 음악 귀신님들께 기원해본다.
첫댓글 바라건대 옴마푸가 많은 음악가들에게 출연하고 싶은 쉼터로 자리잡게 해 주소서!!!
낭만배달부님. 잘 보았습니다. ㅎㅎ
2023년 첫 꿈을 꾸었습니다.
나무그늘에서 휴식 중이던 소프님이 광포화된 곰돌이 푸와 마주쳤습니다. 날렵하게 나무 위로 피신한 소프님에게 푸가 으르렁거리며
"토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소프님이 씨익 웃으며 요술봉을 꺼내시고, 지휘하듯 원을 그리며
"옴브라 마이 푸~"
올해 첫 뻥이었습니다. 옴브라~~
이젠 방송 진행자로서도 명성을 떨치실듯요^^
그러실 듯여. 문제는 너무 떨치셔서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실까 그것이 걱정.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