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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일기 스크랩 천둥치는 새벽에 막 피어나는 작약
찰라 최오균 추천 0 조회 74 18.05.16 11:2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막힌데는 뚫어야 한다

 

천둥소리에 새벽잠에서 깼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천둥소리다.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요즈음은 포성소리와 기관총 소리가 멎어 조용한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포성소리와 천둥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포성 소리는 펑~ 하고 울림이 적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 듣기에 썩 유쾌하지 않지만, 천둥소리는 쾅쾅쾅~ 콰앙~ 우르르르 쾅~ 자르르르 하며 울림이 길고 자연의 리듬이 있어 오케스트라에서 큰북과 작은 북의 울림소리처럼 상쾌한 느낌이 든다.

 

여명이 밝아 오는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나는 커피 물을 올려놓고 오래된 낡은 전축을 켰다. 이 낡은 전축의 앰프는 친구가 버린다고 하여 가져온 것인데 쓸 만하다. 스피커는 금가락지 창고에 방치된 고물 인켈 스피커를 연결하였더니 제법 소리가 괜찮다.

 

나는 지붕에 안테나를 달고, 실내 스피커는 전에 금가락지 주인이 설치해 놓은 노래방 스피커에 연결을 하고, 고물 인켈 스피커는 전축 선을 길게 뽑아 현관 테라스 데크에 설치를 했다. 거실에 설치한 앰프만 켜면 온 집안팍에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주로 FM라디오를 하루종일 은은하게 작은 소리로 켜놓고 듣는다.

 

내 덕분에 아내의 화단에 있는 화초들과, 텃밭에 자라나고 있는 작물들도 더불어 하루 종일 음악 감상을 한다. 이곳 연천에서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채널은 KBS FM 춘천방송(91.1메가헬스) 하나뿐이다. 다른 선택사항이 없어 하루 종일 클래식음악을 듣게 된다. 식물도 음악을 들으면 성장이 촉진된다고 하지 않은가?

 

나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끓는 물을 커피 잔에 부어 휘저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음악소리와 함께 빗방울 소리가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커피를 마시며 화초들을 보다가 비가림이 된 테라스에 놓여있는 화분들이 좀 딱하게 보였다. 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적당히 주기는 하지만 어디 자연 비만큼 하겠는가? 마침 비가 좀 자지러져서 나는 커피 잔을 놓고 화분들을 하나 둘 들어서 비를 맞을 수 있는 곳에 놓아 두었다. '얼시구~ 좋아라!' 화분들이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것 같다.

 

 

 

 

다시 천둥이 우르르르 쾅쾅 ~ 자르르르르르~하며 크게 울렸다. 천둥소리에 놀라 구름들이 부들부들 떨었을까? 곧 빗방울이 굵어지며 세차게 떨어진다. 굵어진 빗방울을 맞으며 화분 속의 화초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빗가 거세게 내리자 홈통에서 물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닌가? 아차! 매년 장마가 오기전에 홈통에 쌓인 낙엽을 청소를 해주었는데 금년에는 폭우가 좀 빨리 찾아온 셈이다. 그대로 두면 지붕에 고인 물의 무게로 홈통이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창고에서 사다리를 꺼내와 비옷을 입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게로 홈통에 쌓인 낙엽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집 뒤꼍에는 아름들이 참나무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매년 가을이면 바람에 휘날려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지붕위에 쌓여 홈통을 메우곤 한다. 모든 일은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집을 에워싸고 있는 참나무가 신선한 산소를 내품어주어 고맙기가 이를 데 없는 반면 매년 떨어지는 낙엽들로 홈통이 홍역을 치른다.

 

벼룩이 무서워 초가 삼간을 태운다고 하지만 참나무를 베어낼 수는 없이 않은가? 수고스럽지만 매년 지붕에 울라가 낙엽을 긁어내는 작업을 해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나는 지붕 여기 저기 홈통에 가득 찬 낙엽을 양동이로 한가득 긁어내고 처마 밑 홈통은 나사를 풀어 막힌 낙엽을 끄집아 냈다. 그러자 빗물이 홈통으로 좔좔 흘러내린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막힌 곳은 뚫어내야 한다.

 

 

 

▲홈통을 막은 곳에서 꺼낸 낙엽

 

 

홈통을 정리하고 나니 내 마음이 다 개운해 진다. 나는 다시 테라스에 앉아 화단의 꽃들을 감상하며 잠시 망중한 즐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붓처럼 맺혀 있던 꽃창포 한 송이가 막 터져 나와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꽃송이가 워낙 큰데다 빗물을 머금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꽃창포가 고개 자꾸만 수그러들며 땅에 닿을 것만 같다. 나는 꽃창포 가운데 막대를 박고 꽃창포 송이를 한데 모아 줄로 묶어주었다. 창포는 비로소 고개를 쳐들고 막힌 숨을 쉬듯 긴 숨을 토해낸다.

 

 

 

 

모란이 뚝뚝 떨어진 자리에 작약이 핀다?

 

꽃창포 옆 작약도 빗물을 머금고 막 꽃잎 하나를 기지개를 펴며 수줍은 듯 피어나고 있다. 작약의 꽃말이 수줍음이라고 하던데 정말 꽃말처럼 수줍어 보인다. 부끄러움을 타서 신부들의 부케로도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저토록 겹겹이 싸여진 꽃잎이 활짝 피면 얼마나 탐스러울까? 아마 오늘 오후쯤에는 꽃잎이 더 많이 벌어질 것 같다. 작열하는 5월의 햇살에 퍽퍽 피어나는 작약의 자태는 얼마나 아름울꼬? 막 터져나오는 작약의 꽃봉오리 앞에 선 나는 가슴이 벅차다 못해 두근두근거린다.

 

 

 

 

작약의 영어 이름은 피오니(peony)'인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패온(Paeon)'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패온은 올림퍼스 산에서 채취한 작약의 뿌리로 저승의 왕플로토의 상처를 치료해준 이야기로 유명하다.

 

작약에 대한 또 다른 신화 하나. 파에온이라는 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먼 나라 싸움터로 간 바람에 혼자 살고 있었다. 공주는 이제나 저제나 왕자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지만, 왕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숱한 세원이 지난 어느 날, 눈 먹 악사 한 사람이 공주의 집 대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주는 그 노래 소리가 하도 구슬퍼 귀를 기울여 듣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노래는 왕자가 전쟁터에서 공주를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는데, 왕자는 죽어서 그 자리에 모란꽃으로 피어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주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결국 공주는 악사의 노래가 가르치는 대로 왕자가 죽었다는 이국땅으로 찾아가 모란꽃으로 변해 버린 왕자 곁에서 사랑하는 왕자를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공주의 정성은 마침내 하늘을 감동하게 했고, 공주는 작약꽃으로 변해 왕자의 화신인 모란꽃과 나란히 지내게 되었다 

 

 

 

 

 

이 신화에서 보는 것처럼 모란과 작약은 때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둘 다 모란과 모란 속해에 속하고 꽃도 서로 닮은꼴이어서 언 듯 보아서는 구분을 하기가 어렵다. 허지만 모란은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는 나무과이고, 작약은 땅에서 올라오는 풀에서 피어나는 식물이다. 모란은 크고 화려하여 꽃 중의 왕으로 불리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 부귀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작약은 함지박처럼 탐스럽게 큰 꽃을 화사하게 피운다고 하여 함박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란이 피어 뚝뚝 떨어져 질 무렵 모란이 진 자리에 작약이 따라서 피어난다. 모란의 개화시기는 4~5월이고, 작약의 개화시기는 5~6월이다. 바늘이 가면 실이 따라가듯 피는 꽃이다모란이 남성의 꽃이라면 작약은 여성 꽃이라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paeonia suffruticosa’(모란)‘paeonia lacroflora’(작약)의 학명 중 처음 나오는 속명이 같은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신화야 어쨌든 오뉴월 무려 두 달간이나 내 곁에서 함박웃음을 웃으며 화려하게 피워줄 작약을 생각하니 아침마다 커피 잔을 들고 꽃을 감상할 생각을 하니 그 기쁨으로 가슴이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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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5.16 11:53

    첫댓글 모란과 작약의 신화가 재미있어 스크랩해갑니다. 서울도 모란은 다 지고 작약이 피어납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작약 이름은 함박꽃이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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