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14,2-10; 마태 10,16-23
+ 오소서, 성령님
오늘까지 제1독서에서 호세아서의 말씀을 듣고, 내일부터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듣습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오늘 회개 이후 이스라엘이 걸어갈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군사력의 중심이 되는 말들 즉 군마를 믿고 있었고, 말의 공급을 위해 이집트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군마를 믿지 않고, 이집트와 앗시리아는 물론 우상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10절의 말씀은 호세아서의 결론인데요, 호세아서가 당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오늘 화답송은 지난번 거룩한 독서 강의 때 다루었던 시편 51장인데요,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이 두 줄 안에 하느님 자비를 표현하는 히브리어 헤섿, 헨, 라하밈이 다 등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헤세드를 따라 저에게 헨을 베푸소서. 당신 라하밈의 크심을 따라 저의 죄들을 지워주소서.”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요, 호세아서가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 자비를 믿고 방종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뱀처럼 사악하고 비둘기처럼 띨띨해서는 안 된다.”고 종종 말씀드렸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복음 선포를 할 때의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산에 가면 가끔 뱀을 만나는데, 우리도 놀라지만 뱀도 깜짝 놀라서 쏜살같이 도망갑니다. 이처럼 뱀은 신중하게 위험을 예견하고 빠른 판단으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습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이처럼 상황 판단을 영리하게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비둘기처럼 순박하라는 말씀은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선포해야지, 사리사욕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의회와 회당은 동족인 유다인들로부터 오는 박해를 의미합니다. 또 총독들과 임금들,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들로부터 오는 박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라 하시는데, 이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오는 박해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카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는 듯 한데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미카 7,6)는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일부러 싸우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바로 그것이 뱀처럼 슬기로운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롭고 순박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가장 큰 지혜는 호세아서가 말한 것처럼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입니다. 또한 순박함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의 순수함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그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박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시련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 생각과 고집이라는 ‘군마’를 내려놓고, 세상의 박해에도 꺾이지 않는 순박한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슬기를 청해야겠습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