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초 동명항을 내려다 보는 야트막한 언덕.
그 언덕 위에는 하얀 외벽의 소담한 성당이 있고 바로 옆에는 사이 좋게 개신교 감리교회가 우뚝 서있다.
전쟁 중에 세워진 성당이 여전히 그때 그 규모로 남아 있다면 감리교회는 건물 크기에 걸맞게 교세가 매우 큰 듯하다. 자체 소유의 대형 버스와 부속건물(시설, 요양원) 등으로만 미루어봐서 그렇다.
교회 바로 앞에는 작년(23년)말에 입주하기 시작한 43층 규모의 고층 아팟 3개동이 들어서 있다. 속초항(동명항)은 물론 속초/외옹치 해변, 속초 시내 전역, 외설악 능선과 대중소청봉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천혜의 입지인데 그만 저들이 그 정면을 가로 막았다. 교회 본관 포인트에서 남아 있는 전망(뷰)이라고는 설악 능선(다행히 주차장에서는 동명항을 내려다 볼 수 있다)정도인데 이마저도 조만간 가리워질 것이다. 이미 또다른 신축 고층 아팟이 왼쪽 한켠을 막아 섰고, 남은 오른쪽 하늘 공간에도 건설 현장에서 한창 열일 중인 크레인이 얼기설기 서있다.
성당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비록 교회를 가로 막은 고층 아팟에서는 살짝 비켜서 있지만 주변을 에워싼 낮은 재래식 주택 부지(이미 모두 빈집, 폐가다)에는 역시 어느 디벨로퍼 하나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동명동 성당은 물론 가톨릭 춘천교구 차원에서 이를 막아보기 위해 나섰다. 알박이 용도의 부지 매입을 위한 성금 모금 등 무진 애를 쓰고는 있으나, 글쎄다. 게걸스러운 포식자인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교세가 몇 배나 더 클 감리교회도 막지 못했던 ‘괴물’을.
2.
한때는 속초 시내 어디에서도 설악의 능선을, 울산바위를,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터다. 자본에 밀려, 세태에 밀려 지금은 건물 사이 사이로 언듯 언듯 스쳐가듯 그렇게 바라다 뵐 뿐이다. 그나마 다행일 것은 도시 외곽에 남아 있는 논밭, 개천 등지에서는 설악의 자태를 아직까지는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언제 위협을 받을 지는 모르는 일. 조만간 몇 년 내에 고속철 역사가 그 들판에 들어설 계획으로 있다. 해안을 따라 줄지어 고층 아팟이나 레지던스가 들어서는 일은 불문가지, 당연지사다.
어찌 비단 속초에 한정된 문제아닌 문제이겠는가.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규모가 더 큰 전국 주요 도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먼저 겪고 있는 중이고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나라 밖 비슷한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 이 또한 물어 무엇하겠는가. 하물며 변방 소도시 속초의 일은 애시당초 고민거리도 아닐 것인즉.
3.
근데, 내가 무슨 낯으로 지금 이를 한탄하고 있는게냐.
언덕 위 바로 그 아팟에 세상 편한 자세로 퍼질러 앉아
내다 보이는 풍광을 거만스레 즐기는 것도 모자라
이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는 경망스런 좀생임에랴.
잔뜩 흐린날,
평일 아침미사 참례 중인 마눌을
성당 밖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며.
https://youtu.be/HilNxfU22D4?si=PIaxsCxArlnRnNv2
(정태춘/박은옥_#바다로가는시내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