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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이상 제33권
양 사문 승민ㆍ보창 등 편집
9. 태자들 ③
2) 성문의 도를 배운 여러 나라의 태자들[學聲聞道諸國太子部]
(1) 균린유(均隣儒)가 세간의 무상함을 깨치고 아라한의 도를 얻다
어떤 국왕의 이름은 범마난(梵摩難)이었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였고, 항상 재일(齋日)이 되면 왕은 태자를 인도하여 부처님께로 갔으며,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설법을 하셨고, 왕은 기쁨과 공경으로 경을 들었다. 태자의 이름은 균린유(均隣儒)라 하였는데,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세간이 무상함과 태어남도 없고 죽지도 않음을 깨닫고서 자신이 가진 영화를 탐내지 않으면서 왕에게 아뢰었다.
“부처님의 세상은 만나기가 어렵고 경법도 듣기 어려우므로, 사문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왕이 이내 허락하였으므로 균린유가 바로 왕을 하직하고 부처님께로 가서 비구가 되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만지시니,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졌다. 엄중한 계율을 받들어 지니면서 힘써 나아가고 부지런히 닦되 밤낮 게으르지 않고 석 달을 지나게 되자 아라한이 되었다. 왕은 그 때에 그가 이미 도를 얻었을 줄 모르고 그가 애써 고생하며 먹는 음식이 거친 것을 보고 매양 가서 공양을 올리면서 그의 마음이 스님들과는 다르다 생각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 안에는 진기한 7보와 음식과 맛있는 찬이 없는 것이 없다. 너는 무엇 때문에 사문 되기를 좋아하느냐?”
그러자 균린유가 이내 몸을 가볍게 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서서 날아다니고 변화하여 몸을 나누고 몸을 흩으며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를 막힘없이 하자, 왕은 그러한 것을 보고 슬픔과 기쁨이 엇섞여서 온몸을 땅에다 던지며 균린유에게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균린유에게 왕을 위하여 괴로움[苦]ㆍ공함[空]ㆍ무상함[非常]의 4제(諦)의 법을 해설하게 하였으므로, 왕은 이내 이치를 깨달아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범마난국왕경(梵摩難國王經)』에 나온다.
(2) 제수(帝須)가 출가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다
아육왕(阿育王)이 처음 왕위에 오르면서 아우인 제수(帝須)『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는 비다수가(毘多輸柯)라 하였고, 『칠요경(七曜經)』에서는 선용(善容)이라 하였다.를 태자로 삼고서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부처님의 법을 믿고 잘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아우는 그 뒤에 놀러 다니면서 사냥을 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한 선인(仙人)이 온몸을 불에다 태우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깊은 신심을 내어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었다.
“여기에 얼마나 계셨으며, 옷과 음식은 무엇으로 하십니까? 만약 편안히 누워 계시면, 음욕(淫欲)이 일어나십니까?”
선인이 대답하였다.
“12년 동안을 지내면서 언제나 나무 열매와 뿌리를 먹었으며, 띠를 엮어 입고 있습니다. 풀을 깔고 누워서도 사슴이 음행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음욕의 생각이 일어납니다.”
제수는 의심하기를 ‘이런 고행(苦行)에도 오히려 음심이 일어나는데, 부처님의 모든 제자는 말이 편안하고 행이 즐거운데 음욕을 보면서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미 음심이 일어났다면, 어찌 싫어하고 여읠 수 있었겠는가?’고 하고서 이내 게송으로 말하였다.
선인은 스스로 큰 고행을 하고
호흡만 할 뿐 음식을 먹지 않으며
나무 뿌리와 잎과 열매로 주림을 채웠어도
능히 애욕을 다 없애지 못했는데,
석가모니의 제자들이야
옷과 밥이 풍족하고 따뜻하고 맛있고
사람들이 제공하는 것 버리지 않으니
빈두산(頻頭山)의 뜬구름이로다.
그리고 제수는 또 말하였다.
“석가의 제자들은 왕을 속이며 공덕을 짓게 하는구나.”
왕은 듣고 대신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우가 외도(外道)를 믿으려 하니 방편을 써서 바른 이해를 얻게 해야겠습니다. 내가 목욕을 하러 욕실에 들어갈 터이니, 경(卿)은 천관(天冠)과 복식(服飾)으로써 나의 아우를 장엄하고서 나의 자리에 오르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왕이 목욕을 할 때에 대신이 제수에게 권하자, 제수는 그것을 따랐다. 왕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나 지금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네가 벌써 왕을 맡았구나.”
그리고는 그를 죽이라고 명하자, 여러 사람들은 무기를 잡고 그를 포위하므로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이 분은 바로 왕의 아우십니다. 왕께서는 참으시고 노여움을 내지 마옵소서.”
왕이 대답하였다.
“내가 참아야겠소. 7일 동안만 잠시 이 나라를 주어서 그에게 왕이 되게 하시오.”
갖가지 기악(伎樂)과 여러 채녀(채女)들을 그에게 공급하면서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가서 문안하게 하였다. 사형 집행인은 칼을 쥐고 문을 지키면서 매일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7일째가 되자 그는 대신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비다수가(毘多輸柯)를 데리고 왕으로써 장엄을 한 아육왕에게 갔다. 아육왕과 대신이 심문을 하였는데, 그 때 아육왕이 물었다.
“네가 7일 동안 왕이 되어서 갖가지 기악을 잘 듣고 보았느냐?”
그러자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7일 동안
보지도 못했고 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맛있는 음식을 맛보지도 못하였고
감촉[觸]을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저의 몸이 장엄하게 갖추어지고
여러 채녀들이 있었다 하여도
생각하는 것은 오직 죽음 두려워하는 일인 까닭에
이런 일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기녀(伎女)의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와
궁전과 그리고 침구와
대지(大地)의 모든 값진 보배에는
애초부터 즐겨 하는 마음 없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할 사람이
칼을 잡고 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또 방울을 흔드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에게 죽음의 두려움 품게 하였습니다.
죽음의 말뚝을 나의 심장에 박았기에
아름다운 5욕(欲)을 알지 못하였고,
이미 죽음 두려워하는 병에 걸려 있었기에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죽음이 다가옴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밤이 이미 지난 것도 몰랐습니다.
왕은 다시 아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한 번 사는 동안에 죽음의 괴로움[死苦]을 생각하느라 비록 훌륭한 5욕을 얻었으면서도 애욕을 내지 않았는데, 출가한 비구는 12입(入)에서 한량없는 생사와 3악도(惡道)의 고통을 생각하고, 또 인간 세상과 천상의 사방을 달리며 구하여도 마침내 무너짐에 돌아감은 마치 텅 빈 마을에 사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무상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우고 있다 함을 생각한다.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은 언제나 이런 관(觀)을 지으니 어떻게 하여 번뇌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왕이 방편을 써 부처님 법으로 교화하자, 비다수가는 말하였다.
“저는 이제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왕은 두 손으로 그 아우의 목을 끌어안고 말하였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네가 부처님의 법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이런 방편을 쓴 것이니라.”
이 때 비다수가는 갖가지 꽃과 향 및 여러 음악으로써 부처님 탑에 공양하고 갖가지 음식으로써 뭇 스님들께 공양하였다.『아육왕경(阿育王經)』에 나온다.
다른 날 다시 나가 놀러 다니면서 사냥을 하다가 아련야(阿練若) 처소에 이르렀더니, 담무덕(曇無德)이라는 한 비구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코끼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멀리서 비구를 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제수는 기뻐하면서 또 소원하기를 ‘나는 언제나 저 비구와 같이 될까?’ 하였으므로 담무덕『아육왕경』에서는 야사(耶舍)라고 하였고, 말도 조금 다르게 되어있다. 비구는 제수의 마음과 소망을 알아채고서 이내 신통력으로써 허공으로 날아 올라 제수가 보게끔 하고,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으로 가서 못 물 위에 앉았다가 서서 옷을 벗어서는 공중에다 놓아두고 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였다. 그러자 제수는 보고 말하였다.
“나는 출가하여야겠다.”
궁중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아뢰었다.
“꼭 가엾이 여기셔서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소서.”
왕은 말하였다.
“기악이며 온갖 음식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하려 하느냐?”
왕은 갖가지 방편을 써서 그를 단념시키려 하였으나 의지가 견고하여 끝내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 왕에게 대답하였다.
“환락(歡樂)은 잠시이고 모이면 이별하여야 합니다.”
대왕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장하구나.『선견비바사(善見毘婆沙)』 제2권에 나온다. 먼저 걸식을 다닌 뒤에 출가하여라.”
이 때 왕의 후원에는 한 그루 큰 나무가 있었는데, 풀을 땅에다 깔고 그 아래에 머무르게 하면서 흙발우 하나를 주며 궁중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게 하였다. 비다수가가 발우를 가지고 궁 안으로 들어가자 갖가지의 좋은 음식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왕은 궁중 사람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거지에게 좋은 밥을 주느냐? 지금부터 거친 음식이나 보리밥을 주어라.”
이 때 비다수가는 그것을 얻어먹으면서도 싫어하지 않았으므로,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이런 밥은 이제 먹지 말아라. 너의 출가를 허락하겠느니라. 출가한 뒤에는 언제나 와서 나를 만나라.”
곧 옷과 발우를 마련하여 천승 만기(千乘萬騎)를 딸려 계사(鷄寺)로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면 수도할 수 없겠으므로 이내 비제국(毘提國)의 담무덕 비구에게로 가서 출가하자, 나라 안의 호귀한 여러 장자의 아들 1천 명이 역시 따라서 출가하였으며, 온 백성들이 의아해 하면서 서로가 함께 말하기를 ‘왕위까지도 버리는데, 우리들이야 무엇이란 말이냐?’ 하고 수없는 사람들이 모두가 다 출가하였고, 왕의 외생(外甥) 아기(阿嗜) 바라문의 한 아들도 출가하였다.『불법(佛法)』 제4에 나온다.
제후(諸侯) 백관과 남종ㆍ여종ㆍ심부름꾼까지도 모두 5계(戒)를 지니고 달마다 6재(齋)를 지녀서 여덟 가지 법이 원만하여졌다. 이로 말미암아 찰리(刹利)의 출가가 많이 있게 되어 부처님 법이 융성하여졌으므로, 외도가 쇠망하여 도무지 공양을 잃게 되고 두루 걸식을 다녔으나 얻지 못하게 되자 거짓으로 부처님 법에 들어와 사문이 되어서는 오히려 예전에 가졌던 법을 가지고 인민들을 교화하였으므로, 여러 착한 비구들은 그들과 더불어 일을 같이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 목련자 제수(目漣子帝須)는 제자를 마히타(摩呬陀)에게 맡기고 고요한 아휴하산(阿休何山)으로 숨어 버렸다. 여러 외도 비구들은 그들의 법전으로써 부처님 법을 어지럽히려 하였으므로 마침내 혼탁해져서 혹은 불을 섬기는 이가 있기도 하였고, 혹은 온몸을 불로 태우는 이가 있기도 하였고, 혹은 큰 추위에 물로 들어가는 이가 있기도 하였고, 혹은 부처님 법을 파괴하는 이가 있기도 하였다.
이렇게 차츰차츰 하여 7년이 이르도록 설계(說戒)를 하지 못하자, 아육왕은 대신 한 명을 왕승가람에 보내어 상좌(上座)에게 아뢰게 하였다.
“왕께서는 스님들로 하여금 화합(和合)하여 설계를 하게 하셨습니다.”
상좌는 대답하였다.
“여러 착한 비구들은 외도 비구들과는 함께 포살(布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대신은 차례로 베어 죽이다가 제수에게 이르러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제수가 대답하였다.
“바로 왕의 동생입니다.”
그제야 중지하고서 대신이 이내 왕에게 아뢰자, 왕은 듣고 놀라며 괴로워하면서 즉시 절로 가서 물었다.
“여러 비구들이여, 누가 죄를 받겠습니까?”
한 비구가 말하였다.
“둘 다 죄를 받습니다.”
한 비구가 말하였다.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던 왕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왕은 의구심이 생기므로 여러 비구들에게 물었다.
“나의 의심을 끊을 수 있는 이가 계십니까? 만약 의심을 끊을 수 있다면, 다시 부처님 법을 세우겠습니다.”
여러 비구들은 말하였다.
“제수만이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신을 보내어 제수를 영접하게 하면서 왕의 뜻을 전하게 하였다.
“지금 부처님 법이 벌써 몰락하였습니다. 대덕은 오셔서 함께 세우십시다.”
제수는 대답하였다.
“내가 출가하여 바로 부처님 법을 위할 때가 지금에야 이르렀도다.”
왕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한 마리의 흰 코끼리가 코로 왕의 머리를 만지고 왕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다음 날 아침에 관상쟁이에게 묻자, 관상쟁이는 대답하였다.
“왕의 손을 붙잡는 것은 바로 사문(沙門)의 형상입니다.”
그러면서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제수께서 방금 이르셨습니다.”
왕이 나가서 영접하자 제수가 왕의 손을 붙잡으므로 좌우의 신하가 칼을 뽑아서 해치려 하였는데, 왕은 물 속의 칼 그림자를 보고 힐책하였다.
“전에 경에게 칙명을 내려 절에 가서 스님들에게 서로 화합하여 설계를 하게 하였더니, 나의 뜻을 왜곡하여 여러 비구들을 죽였다. 지금은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왕은 제수를 데리고 동산으로 들어가서 손수 다리를 씻고 기름으로 문질러 주면서 청하였다.
“대덕의 신통력을 보고 싶구려.”
그러자 제수는 두루 사방 1유순씩을 돌면서 줄을 치고 경계를 짓고서 동방에는 수레를 두고, 남방에는 말을 두고, 서방에는 사람을 두고, 북방에는 구리 쟁반에 물을 두고서 저마다 경계 위에서 말을 타게 하자, 경계 밖이 진동하면서 밖으로 나온 다리는 모두 흔들렸으나 안으로 디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왕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먼저의 의심이 바로잡혔도다.”
그리하여 부처님 법 안에서 나쁜 법은 소멸하게 되었으며, 제수는 그를 위하여 『본생경(本生經)』을 해설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먼저 마음을 헤아리고 그런 다음에 업(業)을 짓는 것이니, 온갖 업은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비바사(毘婆娑)』 제2권에서 나온다.
뒤에 아라한의 도를 얻고 해탈의 즐거움을 느끼고서야 옛날의 왕과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말하였다.
“‘출가한 후에는 언제나 와서 왕을 뵈어라’고 하였는데, 내가 이제는 본래의 약속을 지켜야겠구나.”
차례로 파타리불다국(波吒利弗多國)으로 가서 일찍이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나라로 들어가서 걸식하였으며, 다음에는 왕성(王城)까지 이르러서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들어가 왕께 아뢰되 ‘비다수가가 지금 문 밖에 있으면서 대왕을 뵙고자 한다’고 하십시오.”
문지기가 왕에게 아뢰자, 왕이 ‘데리고 들어오라’고 말하였으므로, 들어가자 일어나 예배를 하는 것이 마치 큰 나무가 거꾸러졌다가 일어나듯 하면서 합장하고 그를 한껏 보다가 슬피 울며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즐거이 있으면서 화합해야 하는데
그대는 이제 화합을 버리고서
고요한 마음을 맛보고 있구려.
나 이제 그대의 마음 아나니
지혜로써 만족해 함이 없음을.
대신 선호(善護)는 비다수가가 누더기 옷을 입고 흙발우를 가지고 차례로 걸식하여 거칠거나 좋거나 간에 모두 받으면서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비다수가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며 할 일을 다 마치셨습니다.”
이 때 왕이 그를 받들어다 좋은 자리 위에 앉히고 갖가지 음식을 손수 드리자, 먹기를 마치고 발우를 씻어 한 곳에다 두고서 왕을 위하여 설법하였다.
왕은 지금 자재(自在)함을 얻었으니
방일(放逸)하지 않음을 닦아야 하시며
3보(寶)는 매우 만나기 어려우니
왕께서는 간절히 공양해야 하십니다.
그리고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으므로 백성들 모두가 보았으며, 왕과 대중들은 합장하고 자세히 보면서 눈을 잠시도 떼지 않다가 왕은 물었다.
다시는 친한 벗의 사랑 없음이
마치 새가 허공을 나는 듯하오.
나는 탐염(貪染)의 쇠사슬 때문에
자재로이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선정(禪定)에는 훌륭한 과보가 있으므로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겠지만
욕심과 애정에 눈이 멀어
이 법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대는 이제 신통의 힘으로써
나의 애욕 일으킴을 업신여겼습니다.
나는 본래 슬기롭다고 자만하였으나
지금은 그대가 가장 훌륭하십니다.
우리들은 세간의 법에 집착되어
거룩함을 보고서야 두려움을 알고
지금 우리들은 슬피 우는데
그대로 말미암아 이제 나를 버렸도다.
비다수가는 변방에 가 닿았는데, 닿자마자 병이 들게 되었으며 병이 위중하고 머리에는 부스럼이 생겼다. 그 때 왕은 듣고 심부름꾼과 의약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으며, 뒤에 조금 낫자, 그는 의사와 심부름꾼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는 몸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우유를 먹었으므로 우유를 얻기 위하여 소가 많은 곳으로 갔다. 그 때 분나바타나(分那婆陀那)[양(梁)나라 말로 증장(增長)이라 한다.]라고 하는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외도를 믿고 있었다. 어느 부처님 제자가 보고 왕에게 아뢰었다.
“야차(夜叉)에게 한생각 동안에 외도의 제자와 화상(畵像)을 가져오게 하십시오.”
왕이 크게 화를 내어 분나바타나국의 모든 외도를 다 죽였으므로 하루 동안에 10만 8천의 외도들이 죽었다. 또 어느 한 외도의 제자가 외도의 법을 사랑하여 발가숭이 신[形裸神]을 섬기면서 여래(如來)가 그 신(神)의 발에 예배하는 것을 그렸는데, 그 때 왕이 또 그 일을 듣고는 다른 사람에게 칙명을 내려 이 사람과 그의 친족들을 잡아오게 하여 한 방 안에 가두어 놓고 불로 태워 버렸다. 이 때 왕은 널리 칙명을 내렸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든지 한 니건(尼揵)의 목을 가져오면, 나는 한 개의 금전을 주리라.”
비다수가는 소를 기르는 곳에 이르렀다. 병이 든 지 여러 날이라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발톱이 모두 길고 날카로운 데다 옷이 해지고 빛이 없었다. 그 때 소를 치는 여인은 가만히 생각하기를 ‘지금 이 니건이 나의 집으로 들어왔구나’ 하고 그의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당장 이 니건을 죽여 머리를 베어서 왕에게 드리시오. 반드시 금상을 받으리다.”
남편이 칼을 뽑아 가지고 가자 비다수가는 생각하였다.
‘이 업보(業報)를 보니 벗어날 길이 없겠구나.’
그리고 이내 죽음을 맞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가지고 왕에게로 와서 상을 타려 하는데, 왕은 혹시나 하여 곧 그 의사와 심부름꾼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바로 비다수가의 머리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기절하여 버렸다. 한참 만에 대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번뇌가 없는[無漏] 사람도 이 고통을 소멸시키지 못하였으니, 대왕께서는 중생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푸십시오.”
왕은 그의 말에 따라 모두에게 널리 명령하였다.
‘다시는 니건을 죽이지 말라.’
여러 비구들이 의아해 하며 우파급다(優婆笈多)에게 물었다.
“비다수가는 옛적에 어떠한 업을 지었기에 지금 이런 과보를 받게 되었습니까?”
우파급다가 대답하였다.
“과거 세상 때에 어느 한 사냥꾼이 사슴을 많이 죽였다. 큰 숲 속에 하나의 샘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사냥꾼은 그물을 치고 그 줄의 덫을 물가에다 놓고 여러 사슴들을 많이 죽이고 있었다. 이 때가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나오시기 전인데, 어느 한 연각(緣覺)이 물가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를 마치고는 씻고 나무 아래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이 때 그 사슴 떼들은 연각의 냄새를 맡고 물가로 가지 않았는데, 사냥꾼은 앉아서 사슴이 오는 것이 보이지 않자, 곧 그 자취를 찾아 벽지불에게 이르러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앉아서 일부러 사슴을 오지 못하게 하였구나.’
그리고 즉시 칼로 벽지불을 죽였다. 옛날의 사냥꾼이 바로 지금의 비다수가인데, 많은 사슴들을 죽였기 때문에 지금 병의 고통이 많았고, 또 벽지불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수없는 세월 동안 늘 지옥에 있으면서 여러 괴로움을 받았으며, 5백 세상 동안을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태어날 때마다 언제나 남에게 살해를 당하였는데, 지금 이것이 최후의 과보로서 비록 아라한이 되었다 하나 다른 이에게 살해를 당하였다. 가섭불(迦葉佛)의 가르침을 따라 출가하여 보시하기를 좋아하였고, 언제나 남에게 법을 전하고 교화하였으며 스님들께 공양하였으며, 어느 한 부처님의 발조탑(髮瓜塔)에 향과 꽃과 번기와 일산과 갖가지 음악으로써 공양하였으므로 이 업보 때문에 큰 성바지에 태어나서 10만 년 동안 언제나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다시 마음으로 서원을 세웠기에 이 업의 인연으로 아라한이 되었다.”『아육왕경(阿育王經)』 제3권에 나온다.
(3) 기타(祇陀) 태자가 5계(戒)를 버리고 10선(善)을 행하면서 부처님께 청하여 법을 듣고 첫 도과(道果)를 얻다
기타(祇陀) 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옛날 5계를 받았으나 주계(酒戒)는 지니기가 어려워서 지은 죄를 벗어나기 두렵사오니, 이제는 5계를 버리고 10선의 법을 받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술을 마실 적에는 어떤 것이 나쁘더냐?”
기타가 대답하였다.
“나라 안의 세력이 강한 이들은 때때로 서로가 인솔하여 술과 음식을 가지고 함께 재미있게 놀게 되는데, 기쁘고 즐거워지면 저절로 다른 나쁜 것이 없어지오며, 술을 받고서 계율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행해지지 아니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사람들이 너와 같을 수 있다면, 평생 술을 마신들 무엇이 나쁘겠느냐? 그렇게 행하는 이라야 복이 생기고 죄가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선행을 하는 데는 무릇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가 있음[有漏]이다. 두 번째는 번뇌가 없음[無漏]이다. 번뇌 있음의 선행을 하는 이는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받고, 번뇌 없음의 선행을 하는 이는 생사의 고통을 건너서 열반(涅槃)의 과보를 받느니라. 만약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나쁜 업을 일으키지 않으면 착한 마음의 인연으로 착한 과보를 받게 되니, 네가 5계를 지닌들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그 뒤에 기타 태자는 생각하였다.
‘사위성(舍衛城) 안의 여러 세력 있는 성바지와 찰리(刹利)와 왕실 등이 조그마한 다툼으로 해서 드디어는 큰 원수가 되어 저마다 모책을 써서 병사를 일으켜 서로를 친다. 양가(兩家)는 모두 나라 안의 호걸이요 모두가 또 친척이라 차지하거나 말거나 할 만한 것이 아닌데도, 시끄럽게 하고 싸우는 것은 옳은 간[諫]을 따르지 않아서이니 깊이 근심할 일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 선왕(先王)의 대신 제위라(提韋羅)는 그의 문종(門宗)의 부귀와 세력의 강함을 믿고 업신여기고 조롱하기를 잘하였으므로 성을 내어 죽여 없애려고 그 일을 부왕에게 아뢰었다. 부왕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앙심을 품고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근심하며 음식조차 먹지 않았더니, 태후(太后)가 내가 근심하고 고통하는 것을 보고 갖가지로 달래고 타일렀다. 그러나 내가 그치지 못하자 좋은 술을 나에게 권하며 마시게 하였다. 이 때 나는 모후에게 아뢰었다.
≺선조께서 서로 계승하며 나라연천(那羅延天)을 섬겼으므로 만약 술을 마시게 되면 하늘이 반드시 노하실까 두려우며, 모든 바라문들이 꾸짖고 벌할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밤의 고요한 때에 궁중 문을 가만히 열고 사람들이 알지 않게 하고서 두 번 세 번 권유하였으므로 마지못해 따르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나자 근심과 원한을 잊어버렸고, 궁녀들을 불러모아 21일 동안 놀고 즐겼더니, 이로부터는 한(恨)을 잊을 수가 있었다.’
이것을 생각한 뒤에는 충신에게 칙명하여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들을 마련하게 하고서 여러 신하들을 불러 왕의 전각 위에 모아 놓고, 충신은 유리(琉璃) 주발을 마련하여 주발에 서 되[升]를 받게 하고, 왕이 먼저 한 주발을 기울이면 사람들은 감로(甘露)의 묘약(妙藥) 한 주발을 마시게 하였다. 그 뒤에는 국사를 논하고 또 함께 여러 기녀(妓女)와 놀게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음악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즐거워져서 원한을 잊어버리고 패연(沛然)히 근심이 없어졌다. 왕은 다시 주발을 가지고 여러 임금들에게 말하였다.
“선비는 덕을 닦아서 여러 세대를 서로 이어받으며, 거룩한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서 어기지 않아야 하느니라. 여러 임금들은 무엇 때문에 작은 일로 인하여 성내고 다툼이 그와 같은고? 만약 참지 않으면 나라와 후사가 망할까 두렵도다. 이 때문에 거듭 타이르나니 마땅히 중지하기를 바라노라.”
여러 임금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중한 어명을 공경히 받들어서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한 화평이야말로 술의 공이다.『미증유경(未曾有經)』 하권에 나온다.
(4) 구나라(鳩那羅) 태자가 육안(肉眼)을 잃고 혜안(慧眼)을 얻다
아육왕(阿育王)의 부인 이름은 발마바지(鉢摩婆底)[양(梁)나라 말로는 부용화(芙蓉花)이다.]였다. 한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형색이 단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눈[眼]이 으뜸갔으므로 사람마다 보고서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내인(內人)이 왕에게 아뢰었다.
“부인께서 아이를 낳으셨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아이 이름을 달마바타나(達磨婆陀那)[달마(達磨)는 양(梁)나라 말로 법(法)이고, 바타나(婆陀那)는 양나라 말로 증장(增長)이다.]라고 지었다.
바로 이 아이를 안고 아육왕에게 보이자, 그 때에 왕은 보자마자 기뻐하면서 게송을 말하였다.
나의 아이는 눈이 단정하고 엄숙하니
공덕으로써 만들어졌도다.
광명이 아주 눈부시게 빛나니
마치 우바라꽃[優波羅花]과 같구나.
이 공덕의 눈으로써
하나의 얼굴을 장엄하니
그 면목(面目)이야말로 단정하여서
마치 가을의 만월(滿月)과 같구나.
구나라(鳩那羅)가 장대하여지자 그의 비(妃)를 맞게 되었는데, 비의 이름은 우차나마라(于遮那摩羅)[우차나(于遮那)는 양나라 말로 금(金)이고, 마라(摩羅)는 양나라 말로 만화(鬘花)이다.]였다.
그 때에 아육왕은 구나라를 데리고 계사(鷄寺)로 갔는데, 그 절에는 상좌(上坐)인 6통(通) 나한(羅漢) 야사(耶舍)라는 이가 계셨다.
이 때 야사는 구나라를 보매 얼마 있지 않아서 눈을 잃게 되겠으므로 곧 왕에게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구나라에게 제 업을 짓게 하지 않습니까?”
이 때 아육왕은 구나라에게 말하였다.
“대덕께서 네가 할 일을 말씀하셨으니, 너는 따라야 할 것이다.”
이 때 구나라는 야사의 발에 예배하고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제가 할 일을 가르쳐 주소서.”
야사는 대답하였다.
“너는 그 눈이 항상 변함 없는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 구나라야,
언제나 눈을 생각하기를
무상하고 병들고 괴로움이며
많은 괴로움이 모인 것이라 여겨라.
범부는 뒤바뀌어서
그로 말미암아 허물을 일으킨다.
그 때에 구나라는 궁중의 고요한 곳에서 혼자 앉아 생각하기를 ‘눈 등의 모든 감관은 괴롭고 무상한 것이다’고 하였다. 이 때 아육왕의 첫 번째 부인 미사락기다(微沙落起多)라는 이가 구나라의 처소로 와서 그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눈을 자세히 보다가 음심이 일어나서는 손으로 그를 끌어안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큰 힘을 지닌 사랑의 불이
지금 와서 내 마음을 태우는 것이
마치 불이 땔나무를 태우듯 하는데
그대는 나의 뜻을 이루어 주어야 한다.
구나라는 귀를 막으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금은 저의 어머님이 되셨으며
이것은 법이 아닌 사랑이므로
마땅히 버리고 여의어야 하리니
나쁜 길의 문으로 들어가시게 됩니다.
모후는 성을 내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의 처소에 왔는데
너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구나.
너는 이미 나쁜 마음을 먹었으니
오래잖아 순식간에 스러지리라.
구나라는 말하였다.
차라리 제가 죽을지언정
깨끗하지 않은 마음 내지 않겠습니다.
만약 나쁜 마음 낸다고 하면
인간과 천상의 착한 법을 잃게 됩니다.
착한 법을 보전하지 않으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겠습니까?
미사락기다는 항상 구나라의 허물을 엿보면서 그를 살해 하고자 하였다.
북쪽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은 덕차시라(德叉尸羅)였다. 왕을 거역하므로 아육왕은 구나라에게 명하였다.
“네가 그 나라로 가거라.”
구나라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은 생각하기를 ‘힘써 장엄을 갑절 더하고 도로를 엄하게 다스리어 늙음과 병자와 죽음 등을 모두 보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하고 그렇게 하였다. 이 때에 왕은 구나라와 같이 한 수레에 타고 그를 전송하였는데 길이 가까워지자 헤어지려 하면서 손으로 아들의 목을 안고 구나라의 눈을 보며 울면서 말하였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구나라의 눈을 본다 하면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있던 병도 모두가 낫게 되겠구나.
관상쟁이가, 왕이 아이의 눈만을 자세히 보면서 딴 일은 하지 않음을 보고 이내 게송으로 말하였다.
왕자의 눈이 맑고 깨끗하여
왕은 들여다보고 환희에 차며
국토의 모든 백성으로서
보는 이마다 하늘처럼 즐거워하지만
만약 눈을 잃게 될 적에는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하리라.
구나라는 차례로 가서 덕차시라국에 닿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듣고 반 유순까지 나와 모든 길을 엄히 다스리고 곳곳에 물을 놓고 오는 이들을 기다렸다. 이 때 모든 백성들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덕차시라의 사람들은
물을 가득 담은 보배 단지와
모든 공양 거리를 가지고서
구나라왕을 영접합니다.
이 때 왕이 이르자마자 백성들은 합장하고서 말하였다.
“저희들은 왕을 영접하여 싸움을 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함께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왕을 서로가 싫어함은 다만 왕께서 보낸 대신이며, 우리 나라에 와서 정치하는 이가 법도가 없어서일 뿐이니 부디 그를 폐하여 주소서.”
이 때 백성들은 모든 공양 거리로써 구나라왕을 공양하고 나라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 때에 아육왕은 몸에 중한 병을 얻었다. 똥이 입으로부터 나왔고 모든 부정한 즙(汁)이 털구멍으로부터 나왔다. 어떤 훌륭한 의사도 낫게 하지 못하므로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구나라를 불러오시오. 나는 정수리에 물을 부어서 왕위를 물려주어야겠소. 나는 이제 몸과 목숨에 연연하지 아니하오.”
그 때 미사락기다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왕의 병환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왕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모든 의사들을 끊었다.
미사락기다는 모든 의사들에게 말하였다.
“밖에서 남자거나 여자거나 간에 병이 왕과 같은 이가 있으면 그를 데리고 들어오십시오.”
이 때 아비라국(阿毘羅國)의 어느 한 사람의 병이 왕과 꼭 같았다. 그 때 병든 사람의 아내가 의사를 찾아왔으므로 의사는 대답하였다.
“데리고 오십시오. 내가 그를 보고 그에게 약을 처방하겠습니다.”
아내는 의사에게 보냈으며, 의사는 왕의 부인에게 보냈다. 이 때 왕의 부인이 이 병자를 데려다 사람 없는 곳에다 놓아두고서 그의 배를 째서 생장(生臟)과 숙장(熟臟)의 두 장(臟)을 꺼내게 하였더니, 한 마리의 큰 벌레가 있었다. 벌레가 위로 가면 똥이 위로 나왔고, 벌레가 아래로 가면 아래로 나왔으며, 만약 좌우로 가게 되면 털구멍으로 나왔다.
이 때 왕의 부인은 마리차(摩梨遮)를 벌레 곁에다 놓았으나 벌레는 죽지 않았으며, 다시 필발(蓽鉢)을 벌레 곁에다 놓았으나 벌레는 역시 죽지 않았으며, 다시 마른 생강을 벌레 곁에다 놓았으나 벌레는 역시 죽지 않았으며, 큰 마늘을 벌레 곁에다 놓았더니, 벌레는 이내 죽었다.
이 때 왕의 부인은 이 일을 구체적으로 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이제 마늘을 잡수셔야 병이 곧 나을 수 있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찰리(刹利)라, 마늘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생명을 위하시어 약이라는 생각을 하시고 잡수십시오.”
왕이 드디어 먹었더니, 벌레는 죽고 병은 나아서 대소변이 본래와 같아졌다.
왕은 깨끗이 목욕을 하고는 부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뜻대로 해 드리리다.”
부인은 왕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왕께서는 7일 동안만 저에게 왕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소서.”
왕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당신이 왕이 되면 반드시 나를 죽이리다.”
부인은 또 말하였다.
“7일이 지나면 저는 왕을 반환할 것입니다.”
이 때 왕이 허락하였으므로 부인은 임시로 왕이 되자 덕차시라 사람에게 글을 주어 구나라의 눈을 가져오게 하려 하였으며, 글을 다 쓰고 나서는 치인(齒印)으로 도장을 찍어야 했다. 왕이 잠을 자므로 부인이 글에 도장을 찍으려고 왕 곁으로 다가갔더니, 왕이 놀라 깨었다. 부인은 왕께 아뢰었다.
“무엇 때문에 놀라십니까?”
“내가 꿈을 꾸었더니 수리가 구나라의 눈을 파려 하였습니다.”
부인은 대답하였다.
“구나라 왕자는 지금 아주 편안하기만 합니다.”
두 번째 다시 꿈을 꾸었으므로 놀라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다시 꿈을 꾸었소.”
부인은 물었다.
“꿈에 또 어떠하셨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는 구나라의 수염과 머리카락이며 손발톱이 모두 다 길고도 날카로우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인은 대답하였다.
“그는 지금 편안하게 있으니 근심하지 마소서.”
왕이 다시 잠이 들자, 부인은 대왕의 이[齒]로 몰래 도장을 찍어서는 사신을 시켜 덕차시라 사람에게 보냈다. 왕의 꿈에 또 이가 저절로 모두 빠져버리므로 다음 날 맑은 새벽에 목욕을 마치고 관상쟁이를 불러서 꿈을 말하자, 관상쟁이는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런 꿈을 꾸게 되면, 아들의 눈을 잃게 되어서 아들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때에 왕은 듣고 곧 일어나 서서 합장하고 서방의 신(神)을 향하여 주원(呪願)하였다.
지금 한마음으로 부처님과
청정한 법과 스님들께 귀의하오니
세간의 모든 신선들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온갖 모든 성인들께서는
모두 구나라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사자(使者)가 글을 가지고 덕차시라국에 이르렀다. 이 때 거기 백성들은 이 글이 왔음을 보고서도 구나라를 생각하여 일부러 이 글을 숨겨 놓고 그에게는 주지 않았으나, 거기 사람들은 다시 생각하기를 ‘아육대왕은 몹시 두려워할 만한 사람으로 공경하고 믿을 수 없구나. 그의 아들조차 오히려 눈을 빼려 하는데, 하물며 우리들에게 악행을 하지 않겠는가?’ 하고 글을 구나라에게 주었다. 구나라는 글을 받은 뒤에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만약 나의 눈을 도려내겠다면 뜻대로 하라.”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이내 전타라(旃陀羅)를 불러서 말하였다.
“그대가 구나라의 눈을 도려 파내라.”
전타라는 합장하고 대답하였다.
“저는 이제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월(滿月)에서
그 광명을 제거시킬 수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그대 얼굴의
명월 같은 눈을 없앨 수 있으리다.
이 때 구나라는 이내 보배 관을 벗으면서 전타라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의 눈을 도려 파내면 나는 너에게 주겠느니라.”
거기에 모습이 얄밉고 열여덟 가지로 못생긴 한 사람이 있다가 구나라에게 말하였다.
“제가 눈을 도려 파낼 수 있습니다.”
그 때 구나라는 이내 대덕 야사(耶舍)께서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선지식(善知識)을 생각하나니
이는 진실한 말씀이네.
이 이치를 생각건대
눈이란 무상한 줄 알겠네.
나의 선지식은
능히 이롭게 하시는 이
그는 이미 말씀하셨네.
눈이란 괴로움의 인연이네.
나는 언제나
온갖 것이 무상함을 생각하나니,
이는 스승님의 가르침이라
스스로 깊이 기억하네.
나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은 머무르지 않는다고 보니
마땅히 왕의 명을 따라
그대는 나의 눈을 가져라.
못생긴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한 눈을 파내어서 나의 손 안에다 놓아라. 나는 그것을 보고 싶구나.”
그러자 이 때에 이 못생긴 사람이 그의 눈을 파내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성을 내고 꾸짖으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눈이 청정하고 때[垢]가 없어서
마치 달이 공중에 있는 것 같다.
네가 이제 이 눈을 파낸다 하면
못에서 연꽃을 뽑아냄과 같으리라.
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부짖는데, 이 못생긴 사람은 이내 그 눈을 도려 파내어서 구나라 손 안에다 놓으므로, 이 때 구나라는 손으로 받아서는 눈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본래 언제나
모든 빛깔을 잘 보는데
지금에는
무엇 때문에 보지 못하느냐?
예전에는 보는 이마다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 하더니
이제야 살펴보니 진실하지 않고
다만 헛되고 거짓일 뿐이어서
마치 물 위의 거품이
텅 비고 진실이 없는 것 같구나.
너에게는 힘이 없고
자재함이 없으므로
어떤 사람이 이런 것을 보면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리라.
모든 법은 모두가 다 무상함을 생각하다가 수다원(須陀洹)의 과위를 얻고서 또 못생긴 사람에게 말하였다.
“남아 있는 한 눈도 네 뜻대로 도려 파내라.”
이 때 그 못생긴 사람은 다시 도려 파내어 구나라 손 안에다 놓았다.
이미 육안(肉眼)을 잃게 되면서 혜안(慧眼)을 얻었으므로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이제야말로
이 육안을 버렸다.
혜안이란 얻기 어려운 것인데
나는 지금 이미 얻게 되었도다.
왕께서는 이제 나를 버렸으니
나는 왕의 아들이 아니며
나는 지금 법을 얻었으므로
법왕(法王)의 아들이 되었느니라.
지금으로부터는 자재로워서
괴로움의 궁전을 떠나게 되었고
다시 자재하게
법왕의 궁전에 오르게 되었네.
구나라는 그의 눈을 파내게 한 것이 바로 미사락기다임을 알고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디 왕의 부인께서는
오래 살고 부유하고 즐거우시며
수명을 언제까지나 보존하시어
돌아가심이 없게 하여지이다.
그의 방편으로 말미암아서
저는 할 일을 이룩하였습니다.
구나라의 아내는 남편이 눈을 잃게 되었음을 듣고 기절하였는데, 물을 뿌리자 깨어나서 울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눈의 광채는 사랑스러워서
옛적에 보면 기쁨이 나더니
이제 보니 그것이 몸을 떠났으므로
마음에 큰 번뇌가 생겼습니다.
구나라는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울지 마십시오. 내 스스로 업을 일으켜서 스스로 이 과보를 받았습니다.”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온갖 세간에서는
업(業)으로써 몸을 받는 것이어서
뭇 괴로움으로 몸이 되어 있는 줄
당신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온갖 것이 화합하였으나
이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일임을 알아야 하고
마땅히 슬피 울지 않아야 합니다.
구나라는 그의 아내와 함께 덕차시라국으로부터 아육왕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직까지 땅을 밟은 일도 없었고, 그 몸은 연약해서 일을 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구나라는 거문고를 잘 탔고 또 노래도 잘 불렀으므로 그의 본래 길을 가면서 걸식을 하여 생명을 이었다. 점차로 떠돌아 오다가 본국에 닿게 되어서 궁중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 때에 문지기는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도로 나와서 마구간에 가 머무르다가, 5경(更) 무렵에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눈을 이미 잃었으나
4제(諦)로 벌써 보았도다.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지혜가 있으면
12입(入)을 볼 수가 있으며
이 지혜의 등불로써
나고 죽는 괴로움을 해탈하게 된다.
만약 훌륭한 낙(樂) 구하려 하면
마땅히 이것을 생각해야 할지니라.
왕은 노랫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금 설하는 이 게송과
그리고 거문고 타는 것 들으니
바로 내 아들인
구나라의 소리와 같구나.
만약 그가 온 것이라면
어째서 나를 보러 오지 아니할까?
왕은 한 사람에게 명하였다.
“듣건대 구나라의 소리와 같다. 맑고 묘하고 슬프고도 좋아서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마치 코끼리가 새끼를 잃고 돌아와 두려워서 불안해 하는 것 같구나. 너는 가서 보고 틀림없거든 데리고 오너라.”
심부름꾼이 보니 두 눈이 없고 피부는 찢겨 드러나 알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돌아와서 대왕에게 아뢰었다.
“그는 외로운 장님이었는데, 그의 아내와 함께 마구간에 있었습니다.”
이 때 왕은 듣고 몹시 괴로워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옛날 꿈에서 본 바와 같이
구나라는 눈을 잃게 되었구나.
이제 그가 장님이었다면
구나라임을 의심할 것 없도다.
너는 다시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을 데리고 오너라.
아들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마음 안온하지 않구나.
심부름꾼은 분부를 받고 다시 그 으로 가서 구나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바로 누구의 아들이시며 이름과 성은 무엇입니까?”
구나라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아버님의 이름은 아수가(阿輸柯)이고
증장(增長)이며 성씨는 공작(孔雀)이십니다.
모든 대지(大地)를
모두 그가 다스리고 계십니다.
나는 바로 그 분의 왕자로서
이름은 구나라인데
요사이는 법왕(法王)이신 부처님께 갔으므로
지금은 법왕의 아들입니다.
심부름하는 사람은 구나라와 그의 아내를 데리고 궁중으로 왔다. 이 때 왕이 구나라를 보았더니 바람과 햇빛에 그을렸고, 풀과 해진 비단이 섞인 의상(衣裳)을 입었으며 모습이 바뀌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 때에 왕은 의심을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네가 바로 구나라가 맞느냐?”
구나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왕은 기절하며 땅에 쓰러졌으므로 곁의 사람들이 왕을 보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왕께서는 구나라가
얼굴은 있으나 눈이 없음 보시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태워
평상에서 땅으로 쓰러졌네.
곁의 사람들이 왕에게 물을 뿌리자 비로소 깨어나서 자리로 돌아와 구나라를 안아다 그 무릎 위에 놓고 다시 그의 목을 껴안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의 옛날의 용모를 생각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의 단정하고 엄숙하던 눈은
지금 그 어디에 있느냐?
눈을 잃게 된 인연을
너는 이제 말해야 되느니라.
너 이제 눈이 없으니
마치 공중에 달이 없는 것 같다.
형용이 바뀌었으니
그 누구의 소행인고?
너의 옛날의 용모야말로
마치 신선과 같았는데
누가 자비의 마음이 없이
너의 눈을 깨뜨렸느냐?
네가 세간에서
그 누구와 원수가 되었느냐?
나의 고뇌(苦惱)의 뿌리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었구나.
네 몸의 그 아름다운 빛깔을
그 누가 깨뜨렸느냐?
오뇌(懊惱)하는 마음의 불이
지금 나의 몸을 태우는도다.
마치 벼락이
수목을 꺾고
오뇌의 우레가
나의 심장을 깨뜨리는 것 같다.
이러한 인연을
너는 이제 빨리 말하여라.
이 때 구나라는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과보는 벗어날 수 없다 함을 못 들으셨습니까?
벽지불(辟支佛)에 이르기까지
역시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온갖 모든 범부들은
모두가 업(業)으로 지어지는 바라
선과 악의 업연(業緣)이야말로
때가 되면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온갖 모든 중생들은
제가 지어서 제 과보를 받는 것이니
저는 이 인연 알기 때문에
눈을 없앤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괴로움은 제 자신이 지었고
따로 지은 사람이 없는 것이라
이러한 눈의 인연이야말로
남으로 말미암아 지은 것이 아닙니다.
온갖 중생들의 괴로움도
모두가 또한 그러하여서
다 업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라
왕께서도 이 일을 아셔야 하십니다.
왕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다만 그 사람을 말만 하여라.
나는 성내는 맘 내지 않을 터이니
네가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 어지러워 편안하지 않도다.
이 때 왕은 이는 미사락기다의 소행임을 알고, 미사락기다를 불러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 이제 큰 악행을 지었는데
어떻게 지옥에 빠지지 않았는고?
이제 그대는 법을 어겼으니
나에게 큰 허물 지었느니라.
그대 이제 이미 나쁜 짓 했으므로
이제부터 그대를 버릴 터이나
오히려 선을 행한 사람처럼 하였으니
법답지 않은 짓을 버려 버려라.
왕은 성나는 불이 심장을 태우는지라 미사락기다를 보면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 이제
그 눈을 빼고 싶으며
쇠 톱으로
그 몸을 썰고 싶구나.
도끼로 몸을 빠갤까?
칼로 혀를 자를까?
칼로 목을 벨까?
불로 몸을 태울까?
독약을 마시게 하여
그의 목숨을 없앨까?
왕은 이런 말을 하면서 미사락기다의 일을 다스리려 하였으므로, 구나라는 듣고 깊이 인자한 마음을 내며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미사락기다가
모든 나쁜 업을 지었지마는
대왕이시여, 이제
그를 죽이지는 마셔야 하십니다.
일체의 모든 큰 힘에서
인욕(忍辱)보다 더 나은 것 없음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신 바이며
그것이야말로 맨 첫째입니다.
그 때 왕은 아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사락기다를 초막에다 넣고 불로 태워 버리고 또다시 덕차시라 사람을 살해하게 하였다. 이 때 비구들은 의구심이 생겨서 대덕 우파급다(優波笈多)에게 물었다.
“구나라는 먼저 어떠한 업을 지었기에 지금 이런 과보를 받았습니까?”
우파급다가 대답하였다.
“옛날 바라내국(波羅奈國)에 한 사냥꾼이 있었는데, 설산(雪山) 안에 이르러서 사슴 떼를 많이 죽였다. 또 설산에 갔다가 우레와 번개, 벼락을 만났는데, 5백 마리의 사슴들이 두려움 때문에 석굴(石窟) 안으로 들어갔다. 사냥꾼은 그것을 잡아 모두를 다 얻게 되었으나 만약 모두 죽여 버리면 살이 썩고 문드러질 것이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자, 즉시 사슴들의 두 눈을 후벼파서 그들을 죽지도 않고 도망갈 수도 없게 하고서 뒤에 차차 그들을 죽였다.
먼저의 사냥꾼이 바로 지금의 구나라인데, 수없는 세월 동안 늘 지옥에 있었으며,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세상에 나서는 5백 세상 동안 늘 눈을 도려냄을 당했다. 지금의 이것은 최후의 남은 과보니라.”
비구는 또 물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큰 성바지에 나게 되었으며, 눈이 단정하고 엄숙하였습니까?”
우파급다가 대답하였다.
“과거 오래전 먼 옛날에 사람의 수명이 4만 살 때였다. 부처님의 명호는 가라구촌대불(迦羅鳩村大佛)이셨는데, 세상에 출현하셨다가 남음 없는 열반[無餘涅槃]에 드셨다. 이 때에 수파(輸頗)[양(梁)나라 말로 엄(嚴)이라 한다.]라고 하는 한 왕이 있었는데, 부처님을 위하여 사보탑(四寶塔)을 일으켰다. 그 때에 왕이 죽고 아우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으므로 탑 아래의 물건을 모두 파 가지고 토목만을 남겨 놓았는데, 백성들이 탑이 허물어진 것을 보고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장자의 아들이 물었다.
‘저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로 괴로워합니까?’
여러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세존의 탑에는 본래 네 가지의 보배가 있었습니다. 지금 갑자기 모두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이 때에 장자의 아들은 이내 네 가지 보배로써 본래와 같이 장엄하고 다시 높고 넓게 하여 처음보다 훌륭하게 하였으며, 또 금상(金像)을 만들어서 탑 안에다 모셨다. 일을 다 마친 뒤에는 다시 서원을 세웠다.
‘가라구촌대불께서는 본래 세간을 위한 스승이었사옵니다. 저의 훗날의 스승도 금일과 같게 하여지이다.’
비구들아, 옛날의 장자의 아들이 바로 지금의 구나라인 줄 알아야 한다. 그가 가라구촌대여래의 탑을 수리하였기 때문에 큰 성바지에 나게 되었고, 그가 여래의 상(像)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지금 얻게 된 몸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으뜸갔으며, 그가 좋은 스승 만날 것을 발원하였기 때문에 지금 석가를 만났고, 그리고 4제(諦)를 보았다.”『아육왕경(阿育王經)』 제4권에 나온다.
(5) 여러 태자들이 부처님께 “우리와 같은 자로서 출가한 이가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께서 겪으셨던 일을 말씀하시고 모두가 도를 깨치다
옛날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奈國) 녹야장(鹿野場)에 계시면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을 하셨다. 그 때에 큰 나라 왕의 태자가 작은 나라의 왕세자 5백여 명을 데리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서 설법을 듣다가 여러 태자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도는 맑고 묘하고 깊고 멀어서 미치기 어렵사온데, 옛날부터 국왕의 태자와 대신, 장자의 아들들이, 나라와 관리와 백성과 은혜와 사랑과 영화와 낙을 버리고 사문이 된 이가 있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국토와 영화와 낙과 은혜와 사랑이란 허깨비요 꿈이요 메아리여서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며 언제나 보존할 수 없는 줄 알아야 되느니라.”
또 말씀하셨다.
“국왕과 태자는 세 가지의 일 때문에 도를 얻을 수 없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 일이냐 하면, 첫째는 교만하고 방자하여 학문과 부처님 경전의 미묘한 이치로 정신의 근본을 구제하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탐내고 취하면서 가난하고 곤란한 이에게 보시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여러 신하와 장사들이 소유하는 재보를 백성들과 함께함으로써 재물의 근본을 닦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음욕과 좋아하는 일을 멀리하고 감옥과 번거로운 일을 버리고서 사문이 되어서 뭇 고난을 없앰으로써 몸의 근본을 닦지 못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살로서 소생한 이가 왕이 되면 이 세 가지 일을 제거하고서야 스스로 부처가 되기에 이르느니라.
또 세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는 젊었을 때는 학문을 하여 국토를 다스리고 백성을 통솔하고 교화하여 열 가지 착한 일을 행하게 하며, 둘째는 중년에 재물로써 가난한 이와 외로운 이에게 보시하고 여러 신하와 장사들은 백성과 더불어 기쁨을 함께하며, 셋째는 매양 무상한 목숨은 오래 머무르지 않으므로 의당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서는 괴로움의 인연을 끊고 다시는 나거나 죽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세 가지 일이 베풀어지지 않으면 평범한 죽음만 얻게 되느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전세에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서 이름이 남왕황제(南王皇帝)였는데, 7보(寶)가 인도하고 따랐다. 스스로 생각하였다.
‘사람의 생명은 짧고도 빠르며 무상하여 보존하기 어려우므로, 복을 지으면서 도(道)의 참됨만을 구하여야겠다. 언제나 세간의 백성들에게 보시할 것을 생각하고, 소유한 재물은 백성과 함께하며 이미 복덕을 심었거든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서 탐욕을 끊어야만 비로소 괴로움을 소멸하게 되리라.’
그리고 머리를 빗어 흰 머리카락을 뽑아 책상 위에 놓고 왕은 울면서 말하였다.
‘첫 번째 사자(使者)가 홀연히 또 이르렀으니, 의당 출가하여 사문이 되어서 자연의 도를 구하여야겠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손바닥 안에 들고 스스로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제 나의 몸의 머리 위에는
백발이 나서 덮이었구나.
이미 천사(天使)의 부름이 있으니
이제야말로 출가하여야겠다.
사문이 되어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사람의 수명을 다하고는 이내 두 번째 천상에 가 나서 천제석(天帝釋)의 태자가 되었다. 그 후에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역시 대왕과 같았으나 다시 백발을 보고 사문이 되었다. 일찍이 부자(父子)가 되면서, 위로는 천제(天帝)가 되고 아래로는 성왕(聖王)이 되고 중간에는 태자가 되기를 저마다 서른여섯 번씩이어서 수천만 년 동안 되풀이하다가 이 세 가지 일을 행하고서야 스스로 부처가 되기에 이르렀느니라. 그 때의 아버지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태자는 바로 지금의 사리불(舍利弗)이며, 왕손은 바로 지금의 아난이니, 다시 서로가 생(生)을 따라 차츰차츰 왕이 되면서 천하를 교화하였느니라.”
이 때 국왕의 태자와 모든 백성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 5계(戒)를 받아 우바새(優婆塞)가 되고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제5권에 나온다.
(6) 최승(最勝) 왕자가 심은 덕이 견고하여서 끝내 바꾸지 못하다
옛날 비선닉왕(卑先匿王)에게 두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의 아들 이름은 유리(琉離)였고, 둘째 부인의 아들 이름은 기(祇)[양(梁)나라 말로 최승(最勝)이라 한다.]였다. 기가 처음 태어나는 날에는 일시에 사방에서 보물을 받들고 함께 이르렀으므로 왕은 말하였다.
“나의 여러 아들들이 태어났을 적에는 일찍이 이러한 일이 없었다. 기(祇)라고 이름지어야겠다.”
장성하자 학문에 두루 통달하였으므로, 왕은 그를 위하여 따로 사택(舍宅)을 세웠는데 7보(寶)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과 은으로 된 남녀가 문의 좌우에 있었고, 가지고 있는 보배 발우에 7보가 가득히 담겨져 있었는데 밤낮으로 가져가도 발우는 번번이 본래 그대로 가득 차 있었다. 태자가 질투가 나서 군사를 보내어 가서 빼앗게 하였더니, 이 때 하늘의 군사 5백여 기(騎)가 기의 집을 호위하고 있었으므로 유리의 군사들은 보고 두려워서 도망쳐 돌아왔다. 태자가 성을 내고 있는데 기가 왔으므로 물었다.
“내가 밤에 병사들을 파견하여 너를 위로하게 하였더니, 너는 병사들을 안에다 매복시켰다는데 모반하려 했느냐?”
기는 말하였다.
“감히 하지 못할 일입니다. 문무(文武)를 기르지도 않았으며 안에는 한 치의 몽둥이조차 없습니다.”
유리가 파견시켜 검사하게 하였으나, 안팎에 모두 그런 것은 없었으므로 유리는 오해가 풀려 자세하게 부처님께 여쭈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가 심은 덕이야말로 견고한 인연을 만났다. 그 때문에 빼앗을 수 없었느니라. 유위불(維衛佛) 때에 어떤 사람이 절에 나아가서 스님들께 공양을 대접한 뒤에 하나의 남종과 하나의 여종을 보내서 절을 청소하게 하였느니라. 그로부터는 천상과 인간 안에서 복을 한량없이 받았나니, 바로 지금의 최승이니라.”『십권비유경(十卷譬喩經)』 제1권에 나온다.
『경율이상』 33권(ABC, K1050 v30, p.1072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