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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게시글
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낯선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 놓고 외 / 김환식
동산 추천 1 조회 64 16.06.05 18:4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낯선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 놓고 / 김환식

 

 

한 생의 부그러움을 가려보던

손바닥으로

겹겹이 연못을 덮고 있는 것이다

정작 내게만은

보여주기 싫은

서먹서먹한 아픔이 있는 것인 듯

무엇인가 역력히 감추는 것이다

억새풀이 날을 세운 못 둑에 앉아

낯선 손바닥 하나를 뒤집어 놓고

찬찬히 손금이 가는 길을 동행할 한다

아! 언제 잃어버린 그리움일까

못물은 온통

그리움의 흔적들로 뒤엉켜 있다

손바닥 하나로 손바닥만한 하늘을 반쯤 가린 채

정작 내게만은 굳이 보여주기 싫은

아득한 이야기가 있는 것인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수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다

 

 

 

 

 

손금보기 / 김환식

 

 

몇 일째

가출한 저녁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비도

불면과 이미 통정을 하고만 것인지

가끔씩

창문을 흔들어 보는 것이다

나는 거실의 앉은뱅이 책상앞에 앉아

낡은 통나무 의자의 나이테를 더듬어 보았다

군밤을 까먹듯

나이의 맛을 헤아려 볼 수는 없었지만

내 살아온 흔적을

조용히 음미하고 싶었던 것이다

손바닥을 펴 보았다

얼마나 두 주먹을 움켜쥐고 살아왔으면

내 손의 손금 조차 낯설기만 한 것일까

의미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손바닥엔

수없이 음각된 상형문자들

날 조각한 우리 부모님도

참 쓸데없는 고생을 많이 하신 것이다

이 낯선 손바닥에

누군가

삶을 황칠해 놓고 도망친 것인데

 

 

 

 

 

 

연어 / 김환식

 

 

운명처럼 고향을 떠난 후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았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것이다

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멀고 험했다

고요히 삶을 영면하기 위하여

고향의 강에서 한생을 접으려는 것이다

장엄한 여정이었다

엇갈린 행로마다 슬픔이 어렸다

닫혀있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그 거친 해류를 헤엄쳐 온 것일까

귀향은 아름다운 몸짓이다

누구나 이승을 떠나기 전에는 

잠시라도 쉬어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다

연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에서 태어난 붕어는 강에서 한생을 마친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도 바다를 꿈꾸었다

꿈이 없는 삶은 의미없는 삶이란 것을

연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에서 삶을 임종하려고

연어는 담담하게 먼길을 걸어온 것이다

강물이 어룽거렸다

산란은 거룩한 의식이다

 

그리고 

고단했던 삶을 조용히 임종하는 것이다 

 

 

 

 

 

 

천수답 / 김환식

 

 

멀리서 보면

추수가 끝난 계단식 논바닥들은

산비탈에 음각해 둔

선 굵은 농부의 투박한 지문 같았다

 

논바닥이 얼어붙기 전에

쟁기질을 하고

서둘러 논둑을 다듬어야 했다

봄비가 제 때 내리지 않아도

절기에 맞추어 삶을 모내기 할 수 있도록

겨우내 논바닥에 물을 채웠다

 

여러날 밤

문풍지가 울고

아이들은 팽이를 치고

연을 날렸지만

나는 새벽부터 아침햇살을

논바닥에 가두었다

 

영영 오지않을 것 같았던

봄은 오고,나는 

삶의 매듭이 풀린 논바닥에 

산그림자 몇 조각을 띄워놓고

맑은 호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달팽이 / 김환식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려운 곳이 또 가려운 것이다

말없이 등을 내밀었다

아내는 말갛게 웃을 뿐이다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

손끝은 이미 가려운 곳을 족집게질 했다

부부란 그런 것이다

묻지 않고도 궁핍한

삶의 형색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칸막이 커튼속에 갇혀

아버지는 달팽이처럼

등을 웅크리고 돌아누워 계셨다

손을 잡아드려도

기어이 눈은 뜨지 않으신 채

가만히 내 손가락만 만질 뿐이다

나는 달팽이처럼 더듬이를 꼼지락거리며

아버지의 손등이며

이마 위를 기어 다녔다

등받이 낮은 철재 의자에

석고상처럼 어머니는 앉아 계시고

천명을 다한 듯

가끔씩 형광등이 껌뻑거렸다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가려운 등만 내밀어도

어머니는 그냥 묻지도 않으신 채

달팽이처럼 굽은 등의 어디쯤으로

한걸음에 손끝이 달려갔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의 손가락을 만져 보았다


신호등이 자꾸 껌뻑거렸다

 

 

 

 

조간신문 / 김환식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이름도 생소한 강원도

어느 포구에서

작은 어선이 풀어놓은 통발 줄에

밍크고래 한마리가  걸려 죽었더라는 것이다
기막힌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 단단한 나이롱 통발줄에 목을 매었다니

몇 해 전 삶을 폐업하고

옥상 빨랫줄에 목을 맨 지인이 생각났다

그 때도 조간신문에 실린 부고를 받았는데

오늘도

밍크고래의 부고를  받아보는 것이다

평소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굳지 조문해야할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부고를 받고보니

조간신문에 찍혀있는 수더분한 삶의 흔적들이 

산더미같은 파도에 쓰러지는 것이다

 

 

 

 

대궐 한 채 / 김환식

 

 

밤마다

대궐 한 채 짓는다

그 대궐 한 채

오늘 밤은 허물고 다시 지을 것이다

서산에 걸린 해를 보며

스스로 조급증이 생긴 것이다

방치했던 삶의 유적을 발굴하면

거기 슬픔처럼 숨어있을

사유의 우물도 만날 수 있을까

서둘러 두레박을 내린다

대?이 비어있듯

사유의 우물도 비어있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본다

사랑방도 먼지가 그득하다

세월도 투명한 유리창 같고

삶도 허상으로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하늘이 운다고

창문도 덩달아 울고 있다

누가 처음으로

하늘의 눈물을 비라고 불렀을까

삶의 창문도 비에 젖는다

늘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나보다 당신을 위해 운 날이 많다면

내 삶은 제법 행복할 것이다

속절없이 눈물이 난다

 

대궐 한 채가 또 무너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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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12.06 11:01

    첫댓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입니다.
    졸시를 아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환식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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