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는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30피트 보트 갑판에 몸을 쭉 뻗고 봄의 햇볕을 즐기면서 3노트의 속도로 운하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키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낚시대를 잡고 있다. 낚시줄은 보트 뒤에 끌려오고 있었다.
그는 종일토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낚시 이외에 그는 야생조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양쪽 다 흥미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조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야생조 관찰은 쌍안경을 가지고 다니는 구실도 되었다.
이른 시간에 그는 물총새의 둥우리를 보았다. 보트 전세업자는 배를 2주간 빌려 주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 근래에는 장사가 통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보트라고는 두 척밖에는 없었지만 그중 하나는 영국군의 덩케르크 철수 이후 한 번도 쓰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지만 어려운 고비는 이제부터다. 군의 병력을 추종한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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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병력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평화시라면 부대도 그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부치니까 알기 쉽다. 그러나 전시인 지금
부대의 표지판은 물론이고 그밖의 모든 도로 표지판도 철거되어 버렸다.
이런 때에 제일 간단한 방법은 노상에 차를 세워 놓고 군인이 오면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지만, 페이퍼에게는 차도 없고 이런 비상시에 자동차를 돈 주고 빌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차를 빌릴 수 있다 해도 가솔린을 얻을 수가 없다. 게다가 시골길에서 군용차량을 따라가 군의 주둔지를 넘보다가는 즉각 체포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보트이다.
몇 년 전 지도 판매가 금지되기 전의 일이자만 페이버는 영국에 수천마일의 내륙 수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본래의 하천은 물론이고 19세기에 만든 크고 작은 무수한 운하가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도로 만큼 많은 수로가 있는 곳도 있었다.
노포크도 그런 지역의 하나였다.
게다가 보트는 많은 이점이 있다. 도로를 가는 사람은 목적지가 있지만 수로는 단순히 배를 달리는 장소다. 차를 세우고 자고 있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정박한 배에서 잔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수로는 호젓한 곳이다. 도로 봉쇄라는 건 있지만 수로봉쇄라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불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행장이나 부대의 주둔지는 거의 도로에 접해 있게 마련이고 수로를 고려해서 자리를 잡는 경우는 없다.
페이버는 야간에 탐색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트를 강가에 정박시키고 달빛을 따라서 길도 없는 산허리를 수십 킬로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암흑과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목표물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있을 수 있다.
보트에 돌아오는 것은 다음 날 아침, 날이 새고 2시간쯤 지나서다. 그때부터 그는 배 안에서 대낮까지 잠을 자고 다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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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에는 때때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주위를 살펴보기도 한다. 운하의 수문, 한 채 밖에 없는 농가, 강가에 있는 술집 등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뭔가 군대의 소재에 대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점차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장소를 잘못 안 것이 아닐까? 그가 이 지방을 택한 것은 자기를 패튼 장군의 입장에 놓고 생각한 결과였다.
내가 만약 영국 동부의 기지에서 프랑스의 세느강 쪽으로 상륙한다면 나는 어디에 기지를 둘까. 이 노포크일 것은 뻔했다. 이곳은 광대한 전원지대이며 비행장으로도 넓은 곳이 많았으며 바다와도 가깝다.
상륙작전에 쓸 함선을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가까이에 워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다른 장소가 선택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빨리 그쪽으로 옮겨가야 되겠는데, 도대체 그건 어딜까? 혹시 펜스가 아닐까?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전방에 수문이 보였다. 페이버는 돛을 조절해서 천천히 수문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둑 위의 관리인의 집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입에 대고 외쳤다.
"여보세요!"
그는 경험에 의해서 수문 관리인이 좀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티 타임이다. 차를 모두 마시기까지는 끄덕도 않는 것이 이 친구들의 버릇이다.
이윽고 아낙네 하나가 집에서 나와 페이버에게 손짓을 했다. 페이버도 손을 흔들고 둑에 뛰어내려 보트를 강가에 매고 관리인의 집으로 갔다.
셔츠 바람으로 부엌 식탁에 앉아 있던 관리인이 물었다.
"선생, 바쁘신 것은 아니지요?"
페이버는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네, 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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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차를 대접해야지."
관리인은 부인에게 말했다.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
페이버는 사양했다.
"사양하실 거 없어요. 어차피 차를 끓인 거니까."
"그래요. 고맙습니다."
페이버는 의자에 앉았다.
좁은 부엌이지만 통풍이 잘 되고 청결했다. 잔은 깨끗한 도자기였다.
"휴가라서 낚시를 하러 오셨나 보지요?"
관리인이 물었다.
"야생조 관찰도 겸해서지요. 그러나 이제 낚시 쪽은 그만두고 이틀쯤 육지에서 보낼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 그러면 운하의 저쪽 기슭을 따라가는 것이 좋을 거에요. 이쪽은 출입금지 지역이에요."
"아아, 그래요? 이 근처에 군부대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여기서 반 마일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렇지만,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요.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또 알 필요도 없는 일이지요."
페이버가 대꾸했다.
"암, 그렇구 말구요. 어서 차를 마셔요. 수문을 열어 드릴테니까."
"고마워요."
관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이버도 보트로 돌아가서 밧줄을 풀었다.
후방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관리인이 수문을 열자 서서히 수위가 내려갔다. 이윽고 전방의 수문이 열렸다. 페이버는 돛을 올리고 관문을 미끄러져 나왔다. 관리인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6마일쯤에서 페이버는 둑에 서 있는 큰 나무에 보트를 매었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통조림에 든 소시지와 건빵 그리고 물로 요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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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장을 모두 검은 색으로 갈아 입었다. 어깨에 매는 가방 속에 쌍안경과 카메라 그리고 <앵글리아 지방의 진조도감> 이라는 책을 넣고 회중전등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램프를 끄고 선실의 문을 잠근 그는 육지로 올라갔다. 때때로 회중전등으로 나침판을 보면서 운하를 따라 숲속을고 들어갔다.
보트의 약 반 마일쯤 정남쪽 방향으로 갔을 때 그는 울타리와 마주쳤다. 높이 약 2미터의 철망으로 만든 울타리인데 그 위에는 가시철사를 말아서 올려 놓았다.
그는 숲속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높은 나무로 기어 올라갔다.
구름 밖으로 나온 달이 전방을 비춰준다. 울타리 저쪽은 넓게 트여 있고 땅이 저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솟아올라 있다.
페이버는 경험에 의해서 이와같은 야영지 주변에는 철조망을 도는 순찰병과 시설물을 지키는 보초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내와 세심한 주의만 있으면 이런 순찰병과 보초를 피해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페이버는 나무에서 내려와 울타리 곁에 있는 덤불 속으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우선 순찰병이 언제 그곳을 지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만약 새벽까지 순찰병이 오지 않으면 그는 내일 밤에 다시 온다. 운이 좋으면 그들은 지금 곧 이 앞을 지날 것이다.
순찰 구역의 크기로 보아 순찰병은 하룻밤에 한 번 밖에는 돌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추측한 대로 10시가 좀 지나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3명의 순찰대가 울타리 안쪽을 지나갔다.
페이버는 5분쯤 지나자 담을 뛰어 넘어 정남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 모를 때는 일직선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다. 그는 회중전등을 켜는 것을 피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나무나 장애물 곁을 지났다.
가끔 비치는 달빛 속에서 자신의 몸이 부각되는 일이 없도록 높은 곳은 피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인가가 없는 전원지대의 밤은 흑색과 은색의 추상화다.
발 밑의 지면이 축축한 것을 보니 근처에 습지대가 있는 모양이었다.
첫댓글 언제 책으로 출판 되나요?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