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칭대명사에 관한 루머
- 이용헌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고 싶을 때 명사가 태어났다.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고 싶지 않을 때 대명사가 태어났다.
언제부턴가 개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돼지도 사람의 대명사로 쓰였다.
언제부턴가 소도 사람의 대명사에 합류했다.
사람이 들어갈 자리에 짐승이 들어가는 일은
짐승의 처지에선 황송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언제부턴가 대명사는 못난 사람을 대신하는 자리에만 쓰였다.
그때부터 개는 억울하여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겼다.
그때부터 돼지는 불만이 가득하여 주둥이가 몇 뼘이나 나왔다.
그때부터 소는 늘 속이 거북해 밤낮으로 되새김질만 하였다.
보다 못한 다른 짐승들이 장마당에 모여 외쳤다.
누가 개보다 못한 검사를 개라 하는가.
누가 돼지보다 못난 대통령을 돼지라 놀리는가.
누가 소보다 못돼먹은 국회의원을 소라 일컫는가.
이후부터 개는 아무 데서나 꼬리를 흔들며 개라는 명사로만 살았다.
이후부터 돼지는 아무 데서나 코를 골며 돼지라는 명사로만 살았다.
이후부터 소는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 소라는 명사로만 살았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명사가 제 이름을 되찾은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기자가 사라진 자리에 기레기가 새로 들어왔다.
어느 날부터 목사가 사라진 자리에 먹사가 몰래 들어섰다.
어느 날부터 보수가 사라진 자리에 뉴라이트들이 들이닥쳤다.
명사는 명사대로 대명사는 대명사대로 비명횡사할 지경이었다.
―계간 《포엠피플》(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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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영주시조문학 회원들이 2024연간집 최종교정을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서 일궈온 문학이기에 다른 어느 때보다 진지했네요
쉴 참에 화제가 된 것은 야당대표에 대한 1심 선고였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견해차는 있었지만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던 듯합니다
농담 삼아 던지는 '탄핵'과 '하야' '유죄'도 인칭대명사가 붙으면 긴가민가해지더군요
세상사 모두는 만만하지 않지만 문학하는 이라면 저마다의 방법으로 녹이고 삭힐 수 있습니다
듣는 귀는 열고 열었던 입은 닫으면서 되새김질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음달 출판기념회를 기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