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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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위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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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애는 어쩌면 오늘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왠지 오늘 날씨가 너무도 좋았다.
평상시보다도 하늘이 더 파랗게 보였고,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울음소리가 아닌 노래소리로 들렸다.
오늘은 늑장부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윤애는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나가는 길.
시립도서관, 강석을 처음으로 기다렸던 곳.
역시나 그 앞에 공중전화가 윤애를 반기고 있었다. 전화를 하면 받아줄 것만 같은데….
하지만 윤애가 알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라고 나온다.
그 전화번호의 주인을 알고 있는데, 그 주인은 갑자기 사라졌다.
"저기, 언니…."
누군가의 목소리에 윤애가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조금 낯익은 얼굴이 있었지만, 누군지 퍼뜩 떠오르진 않았다.
귀여운 인상의 소녀. 교복을 보니, 윤애가 다녔던 학교. 지금 윤주가 다니는 그 학교 학생인 듯 했다.
"누구?"
"윤애 언니… 맞죠?"
"으응, 맞는데…. 누구지?"
윤애를 언니라고 부르는 여학생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지만, 동생 윤주의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
"정연이 언니랑 친했던 후배였어요."
"……. 정…연이라고…?"
"네…. 정연 언니가 부장되기를 간절히 바랬던…."
"……만화클럽…?"
"만화클럽엔 이제 없어요. 정연 언니도…. 그리고 윤애 언니도…."
저렇게 슬픈 눈으로 정연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윤애에게 하고 있는 여자 아이.
어쩌면 그래서 인상이 낯익은 것일까…. 학교 후배였구나.
"그런데, 나에겐 무슨 볼일……?"
"필요해요…. 정연 언니와의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추억…?"
"윤애 언니 말고는 없어요. 정연 언니를 사랑하는 사람은 윤애 언니뿐이잖아요."
"……."
"저도 정연 언니를 사랑했어요! 너무 사랑했어요!"
"…저…."
"전…. 저는……. 으흑…."
마침내 글썽글썽하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으흑흑…! 언니!"
갑자기 윤애에게 안겨드는 이 여자아이는 대체 누구일까.
정연이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이 여자아이는…….
한동안 그 여학생을 달래고 달래고……. 윤애는 오늘 도서관으로 갈 수 없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하지만, 정연의 이름을 울면서 이야기하는 이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정연 언니를 사랑했어요……."
한참만에 울음을 그친 그 여자아이의 첫 마디는 역시 그 이야기였다.
정연을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하지만 정연 언니를 저를 그저 귀여운 동생으로밖에 보지 않았어요."
정연이가 민혜 선배를 좋아했을 때도, 이랬다고 이야기 들었다.
정연의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윤애의 마음 한 켠이 너무도 아려왔다.
고이 접어놓은 정연에 대한 추억, 그리고 소중한 비밀들이……. 어쩌면…….
이 여자아이도 정연의 마지막 이야기들을 담아두고 있었을까.
"정연 언니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어요. 정연 언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었어요."
"……. 그랬니…?"
"하지만 제 마음은 변치 않았어요. 언제나 정연 언니를 몰래…. 혼자서 그리워하고 바라보았어요."
"……."
"참…. 바보 같죠?"
"아, 아니야…."
"저도 알아요. 제가 바보 같다는 것을. 너무 바보 같아서…. 그래서…."
"…아니야, 바보 같지 않아. 순수하고 소중한 마음인걸…."
윤애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정연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아이는 정연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았다.
정연이와의 마지막 그 밤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일찍 깼더라면, 하고 늘 후회하게 만들었던 그 밤.
하지만 정연은 윤애를 원망하지 않고, 윤애를 아껴주는 좋은 친구였다.
친구, 그래…. 그랬다.
"윤애 언니도 정연 언니를 사랑했죠…?"
"…사랑?"
"다 알아요. 언니의 눈에는 늘 정연 언니를 담고 있었다는 것을."
"……."
"그리고 언니의 죽음으로…. 윤애 언니도 너무 힘들었다는 것도요."
이 아이는 너무 당돌하게, 그리고 단정짓는 버릇이 있나 보다.
윤애는 그저 피식, 웃었다.
어쩌면 윤애도 그렇게 오해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석을 알게 된 후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힘든 나날, 죽고 싶었던 날들을 이기게 해 준 강석에게 더 마음이 기울였기에….
정연에게는 미안하지만….
윤애가 사랑한 것은 바로 석이다.
"저와 종종 만나 주세요, 언니. 단지 그것 뿐이에요, 언니."
언니, 언니…. 살갑게 부르는 귀여운 여학생을 보면서 윤애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외로운 아이, 그 외로운 손을 잡아주는 것 뿐이야….
윤애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자신이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웠던 그 때, 잡아준 석이의 따뜻한 손을 떠올리면서.
"제 이름은 민경이에요. 채민경."
"채?"
"네, 최민경이 아니라 채민경이에요."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는 민경의 모습에….
윤애도 따라 웃어주었다.
어쩌면 정말 좋은 친구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느낌.
"저는요, 언니보다 두 살 어려요. 윤주랑 같은 나이죠."
"어? 우리 윤주랑 아는 사이야?"
"아니요. 잘 알지는 못해요. 그냥 학교에 언니랑 닮은 아이가 있어서 눈 여겨봤는데…."
"아…."
"전에 언니랑 도서관에 있는 거 봤거든요. 같이 있는데, 딱 자매 같아 보이던걸요∼!"
싱긋 웃는 민경의 모습이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성격이 싹싹하고 좋다는 말은 이런 성격을 보고 말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랬구나."
"네, 언니! 언니랑 밥 같이 먹고 싶은데, 괜찮아요? 제가 사드릴게요∼"
민경의 손에 이끌려 작은 식당에 간 윤애는 곧 민경이가 이것저것 시켰고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물을 컵에 따른 윤애는 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내들어 알약 몇 개를 꺼내었다.
그리고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과 걸릴 듯 말 듯 넘어가는 알약의 느낌은….
언제 느껴도 참 좋지 않다.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언니, 아직도 아파요?"
"응? 아니, 안 아파. 괜찮아."
"그렇구나…. 예방 차원?"
"으응."
왠지 '민경'이라는 이 아이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윤애가 아팠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말이다.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요. 맨날 맨날 보고 싶어요.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래요, 언니."
"응, 그러자. 난 지금 도서관 갈 건데, 민경이는?"
"에헤헤…. 오늘은 공부할 준비를 해오지 않아서요. 내일은 챙겨올게요! 언니, 그럼 내일 봐요∼! 전 집에!"
"그래, 잘가고…. 내일 보자."
고개를 귀엽게 숙이며 손을 마구 흔들어대는 민경이의 모습에 윤애는 웃음이 픽 나왔다.
귀여운 동생이 더 생긴 느낌이랄까.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석이를 만난 것도 아니고, 석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고….
또 오늘 만난 '인연'도 즐겁고 소중한 것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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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us-_-@hanmail.net
잊혀지고 있는 글이지만..;ㅂ; 그래도 가끔은 올립니다..;
다만 쓰는 저조차도 다른 글을 쓰느라 잊어먹곤 해서 탈이죠.
여하튼 써놓은 분량 중에서 조금씩은 올릴게요...;
봐주시는 소수의 분이라도, 정말 언제나 감사드린다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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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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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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