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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사자란과의 거래
"...어,어쩌죠 해리나?"
"이...이...멍청한...! 어우-!! 속터져!!!!!"
"해,해리나..."
"넌 적당히란 말도 모르니?"
"....이런 마법이 갑자기 시전될줄 제가 알았겠습니까아..."
이미 터진일 어쩌겠냐는 식의 나의 현실 도피성 대답에, 해리나는 더욱 열이 치미는지 뒷목을 잡고
시뻘겋게 달아오른것이 끓는 고춧기름같은 얼굴을 한손으로 부채질하며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지가 몇써클인지도 모르는 멍청이가 세상에 어딨어!!!!!!"
".......여기요..."
해리나의 말에 내가 눈치를 슬쩍보며 오른손을 소심하게 들어 올리자, 기어코 울화통이 터진 해리나가 힘줄이 심지굳게 튀어나온게 사람 몇 잡고도 남을 험악하게 생긴 주먹으로 내 뒷통수를 있는 힘껏 가격했다.
- 뻐억ㅡ!!
"아아악!!!!!!!!!!"
나는 눈알이 튀어나오려는 아픔을 목구멍으로 삼킨채 눈물을 찔끔 흘리며 해리나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보았고,
해리나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강화벽 부스러기를 마구 발로 짓밟아 으깨며 씩씩댔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거대한 폭발음을 들은 시얀과 노아가 놀란 얼굴로 제일 먼저 돔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이윽고 둘의 뒤를 이어 걱정 가득한 얼굴의 유라크가 먼지 풀풀 날리는 연사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 셋은 마법 연사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검술장에서 훈련 수업중이었던 터라 제일 빨리 도착한 듯 싶었다.
물론 이들의 표정을 보니, 이 폭발음의 원인과 주범 또한 단박에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도 있을 거라 예상된다.
"이,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유라크가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채 바스러진 돌멩이들을 피해 나와 해리나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차마 설명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나와 해리나는 돔의 파편을 한껏 뒤집어 쓰고 있었고, 일방적으로 쫓긴듯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내 꼴을 보고 일행들은 보나마나 뻔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드디어 한건 했군."
"호오...해리나, 당신 마법수재였군요. 이 정도로 일줄은 미처몰랐는데."
"율리안, 용케 무사하셨네요.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두 분 다 괜찮으세요?"
이 대화로 미루어볼때, 모두가 마법 연사장 돔을 이런 처참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보나마나 해리나 일것이라고 장담함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차마 죄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에 어찌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눈치만 살필 뿐이었고,
그런 일행들을 향해 해리나는 '뭐 이딴 어이없는 모함이 다 있어?' 하는 불쾌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다시 뒷목을 잡고 주저 앉았다. 씹어삼켜도 시원치않다는 듯이 나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그녀의 행동에 영문 모르는 일행들은 그저 물음표를 그릴 뿐이었다.
"아오..!! 내가 율리안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못 죽어!!"
"입이 열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아..."
"에...? 그게 무슨..."
"뭐야. 설마...율리안 니가 친 사고냐?"
끄덕 끄덕.
시얀의 설마하는 물음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요 하고 눈물 겨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예리함으로 따지자면 신내림 급인 노아는 그 말에 눈치를 챈듯 입을 틀어막고 뒤돌아서서 큭큭대기 바빠보였다.
굳이 뒤돌아서서 빵터져 주시는 노아의 센스에 차마 웃지 못할 감사를 느끼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는 나였다.
"...흐윽!! 저도 살고봐야지 어쩌겠나요...!"
"너 정말...! 하아."
"여기 신축한 거라던데...비,비쌀까요...?"
갑자기 앞길에 대한 막막함과 설움이 북받쳐온 나는 시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눈물콧물을 짜며 후회막심한 징징거림을 시작했고
이제서야 사고를 친 후한이 물 밀듯 밀려와 당장 뱉어내야할 돈 걱정에 은근슬쩍 시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넌지시 가격을 물어보는 나였다. 덕분에 평소 화를 잘 안내는 그의 주먹이 흠칫 떨리면서 십자 힘줄이 튀어나오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다행이도 언제나처럼 머리 위에 고운 장식을 심어주진 않았다. 그 대신 내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한대 먹이며 한숨을 포옥 내쉰다.
"잊었냐. 네 가문은 이런거 몇개 날려먹은것 정도로는 꿈쩍도 안하는 재산탄탄한 공작가라고. 황가의 재산보다 그의 사유재산이 많을 정도니. 지금 해야될 걱정은 그게 아닐텐데?"
"맞다. 그랬었군요!! 그럼...무슨 걱정을 더 해야하는데요?"
내가 '오오오!!! 그랬었지, 참!!!!' 하고 눈물 겨운 표정으로 만세를 외치고는 그럼 그 외에 뭐가 걱정이냐며 천진난만하게 묻자,
니가 그럼 그렇지. 하고 괜한 기대를 품었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시얀이 입을 열었다.
"이 라헬 대륙 전체를 통틀어 울프람의 마법 연사장 천장에 저만한 구멍을 내줄만한 마법사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모르긴 몰라도...여럿 되지 않을까요?"
"........."
"시얀. 뭘 새삼스레 '이런 바보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거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거야. 지 써클이 몇인지도 모르는애가 그걸 알거라고 기대한거야?"
"그래도 혹시나...아무리 멍청한 율리안이더라도 세살짜리 꼬마도 안하는 짓을 매일같이 하는 율리안이더라도 설마 그건 알줄 알았지."
"너도 참. 기대가 크다."
내 대답에 마치 얼어붙은 듯 할말을 잃고만 시얀을 향해 새삼 뭔 기대를 하냐며 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는 해리나와,
그녀의 물음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면서 스스로에게 한심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하아.' 하는 숨을 공기중으로 토해내는 시얀이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
"무슨 남의 험담을 당사자 앞에서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에욧!!!!!!!!!!"
아니, 내가 모르고 싶어서 모르나?
내가 제피아르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중에는 현존하는 마법사의 숫자와 그들의 써클에 대한 통계따윈 나와있지 않았단 말입니다아!! 그들에 대한 통계 자료는 모두 신의 울타리 안 크로스 마법탑이 보유하고 있으며 철통같이 비밀시 되어왔기 때문에 모르는게 당연하다구요!!
어느 책에나 써클을 올리는 것이 고난이도의 정신적 수련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나가 없어서는 1써클의 마법사가 되는것 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써있긴 했지만, 늘상 붙어계시는 분들이 워낙 기본 상식을 월등히 넘어서는 인간들이라 이런 사람들이 꽤 되는구나 라고 그저 생각해 왔던것 뿐이었다. 그러나, 울분을 토해내는 내 외침에 이어진 시얀의 다음 말은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을 통째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4써클 반열에 오른 마법사 정도는 한 나라에 많으면 열댓정도는 되지. 특히나 마법국인 카자드에는 스물 한명이 존재하고 있고. 하지만, 5써클 이상의 마법사는 크로스 마법탑 소속 인간 이외에는 드래곤이면 모를까, 아무도 만난적이 없단 말이지. 게다가 5써클 이상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나이 먹은 노인네들이야. 해리나같이 젊은 나이로 4써클 반열에 오르는것은 타고난 재능이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천부적 재능이기도 해서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신동에 가깝지. 크로스 마법탑은 전대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마법 인재만 데려다 키우기 때문에 6써클 반열에 올라있는 마법사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알려져있어. 그렇기에 나라간의 전쟁이 터지면 각 나라에서는 공격이나 치유를 위해 마법탑의 마법사들을 비싼 돈을 주고 고용을 하지. 그게 크로스 마법탑을 유지시키는 원동 자금인거야. 4써클까지는 그렇게 고가가 아니나, 5써클이면 값이 그 배로 뛰고 6써클은 혼자서 1천의 병사와도 대치할수 있기에 부르는게 값이라고. 그런데...그 6써클의 마법사도 이 마법 연사장의 마법 차단 강화벽을 흠집이나 좀 내면 모를까 이렇게 구멍을 뚫어버릴수는 없다 이 말이다. 왜냐하면, 이 마법 차단 강화벽이 크로스 마법탑에서 거금을 들여 개발해 낸 것이니까 말이야."
시얀의 설명에 해리나와 노아, 심지어 유라크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사람은 정녕 나뿐인듯 나는 놀라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눈만 꿈뻑일 따름이었다.
"...그...그 말은 즉..."
"적어도 네가 6써클 이상의 대마법사란 뜻이다."
"에에에에엑~??????????????"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진지성 가득한 시얀의 눈빛을 읽고야만 나는 급작스럽게 회전하는 두뇌의 열기로 인해 이마를 짚고 풀썩 주저 앉아야했다. 그러나 사돈 남말하듯 자기 일 아니라며 낄낄대는 해리나와 여전히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큭큭거리는 노아를 보며 울상이 된 얼굴로 '어쩌죠!!'를 연발하는 나였다.
이 사람들아!! 웃지만 말고 해결책을 좀 얘기해보란 말이다!!!
"큭큭...정말 물건이구나, 너."
"6써클 이상의 마법사에게는 대마법사라는 호칭이 붙여지고, 감히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특권을 손에 넣게 되지."
"제국의...황제라 할지라도 말입니까?"
내가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못한다는 부분에서 유독 두 눈을 야행성 오크의 그것처럼 빛내며 되묻자,
해리나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씩씩대며 '결코 그렇다 해도 넌 해당사항 없어!' 하고 면박을 주었다.
뭐 꽤나 마음에 드는 특권이긴 하다만, 그런 특권에 놀아나줄 해리나와 시얀이 아니었기에 나는 진즉에 특권을 쓸 심산일랑 고이 접으며 남 모를 아쉬움에 눈물을 훔쳤다.
"그런거에 좋아할 때가 아니야. 만약 네가 7써클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8써클이라면..."
시얀의 눈동자가 얼핏 크게 동요하듯 흔들린것 같았다.
우수에 가득 찬 황금빛의 눈동자가 마치 추수절의 잘익은 벼처럼 바람을 타고 일렁였다.
"8써클이...왜요...?"
궁금증에 못이겨 시얀의 황금빛 논두렁을 바라보며 묻자 그가 내 시선을 은글슬쩍 회피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마법탑의 마법학장이 명을 다하고 그 자리가 부재중인지 12년째인데, 8써클인 마법학장을 대신할 자가 나타나질 않는다는게 문제지."
"그게 그러니까 왜요?"
"네가 8써클임을 마법탑 측에서 눈치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데려가려 할거다."
"저를 학장 자리에 앉히려고 말입니까? 그런거야 제가 거절하면 그만 아닌가요?"
"말이 좋아 학장이지. 그 마력은 마법석탑 유지기 가동에 다 빨려버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어."
"학장에 오른 마법사는 10년을 채 살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물론, 8써클 열반에 오른 이들이 모두 100세가 넘은 늙은이라는 이유도 한몫하겠지만요. 그러니 율리안처럼 어린 나이에 그만한 마력을 가동시킬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면 더더욱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늙은이보다야 더 오랜시간 버틸수 있을테니."
산채로 마력이 뽑힌다고? 그깟 마법석탑 유지를 위해?
매일같이 자신의 마나를 빨아먹히니 오래 살리가 없음은 당연지사한 이야기였다.
시얀의 설명에 유라크까지 나서서 한껏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덕에 나는 이를 딱딱 부딪히며 다가올 공포에 몸을 덜덜 떨어대야만 했다. 그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겉만 번지르르하게 평화 유지 중립국이었지, 속내는 완전 인간을 마나 생산기 취급하는 끔찍한 곳이 아닌가!
"네가 그런곳에 끌려가도록 두진 않을거다. 그건 내가 용서못해."
"율리안, 절대 수상한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돼요!!"
"아아~ 적당히를 모르는 인간의 수명이 짧은건 알겠는데, 나도 내 마법 연습 대상을 뺏어가는건 용서 못하지."
"목숨걸고 지키는게...친구니까."
"이...이거 다들 왜이러세요! 그놈의 연습 대상하느라고 일이 이 지경이 된거 모르십니까아! 그리고 노아, 그 칼 내려놔요! 아직 안끌려간다니까!"
이거 마치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는 애끓는 우정....은 커녕 그저 연사할 마법의 목표물이 되어줄 '마법 연습 대상'과 엄청난 공작가 가문의 힘까지 붙여주면서 나를 애보기 하듯 유모 역할을 톡톡히 해준 시얀의 소유욕, 마찬가지로 각각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기 위한 그저 '율리안 농간하기'가 아닐런지 매우 심히 굉장히 진심으로 심기가 어지러워지는 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속에 섞여있는 이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고 있기에나마 이렇게 걱정을 털어내며 밝게 웃어본다.
비록 그 진심이 1%가 안될지라도.
그렇게 밝게 웃는 나를 보고 시얀이 가뜩이나 지저분한데 모지란 길거리의 바보같다며 언제나처럼 가볍게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면서 말했다.
"절대 어디에도 안보내. 너는 유렉시에르 가문을 통틀어, 나 제피아르 황제의 소유니까."
시안표 햇살보다 눈부신 황금빛의 미소. 평소하는 말은 밉살스럽기 그지없지만 가끔씩 툭툭 내뱉는 한마디가 더이상 내게 없을 만큼의 안도와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나를 못잡아먹어 안달인(특히나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이 잡듯 나를 찾아 뒤져대는 해리나 마녀님) 분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나를 데려가려거든 그들의 쌓인 폭력적 욕구를 해소시켜줄만한 맷집 좋은 장정 여럿 정도는 대기시켜야 할것이었다.
아하하하. 오늘따라 왠지 내 신세가 더 처량해지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어디 제가 간다면 놔주실 분들입니까? 그리고 확실한 것도 아니니, 다들 걱정 마세요. 하하하."
"과연 그럴까? 크로스 마법탑의 정보력을 먙보아선 안될텐데. 울프람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루가 채 안되어 마법탑 귀에 들어가게 되어있어."
까짓거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아 하고 시얀의 등을 팡팡치며 너털스레 웃는 내 등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낯선이의 그림자.
낯익은 그의 말투에 화들짝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하나로 묶은 붉은 머리카락이 매력적으로 어깨 선을 타고 내려오는 학생대표, 그가 서있었다.
"사자란...!"
"회장님 혹은 선배님을 붙여야 하지 않겠어? 귀여운 신입생님. 쿡쿡."
"...뭡니까."
"이런이런. 그 탐스럽고 예쁜 금색 눈동자를 사람 노려보는데 쓰면 쓰나."
"지금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지 싶습니다만. 사자란 선.배.님."
"시얀이라고 했나. 눈에 힘 좀 풀지? 난 도와주려고 온건데."
한껏 생글거리며 미소를 지울줄 모르는 사자란의 표정에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경계하는 우리의 시선에 그가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손가락으로 문 밖을 가리켰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의 눈매가 반달로 휘어진다.
"밖에 학생들과 교수들이 들이닥치고 있어. 아주 큰 소동이 일어날테지, 아마?"
그의 농담하는 듯한 말투에 시얀과 노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검이라도 뽑을 기세로 사자란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조차 그에게는 아이들의 재롱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것인지 생글거리는 눈웃음을 더욱 짙게 띄우고는 말을 이었다.
"율리안이 대가를 지불하겠다면, 도와줄 의향도 있는데."
"...대가요?"
무슨 대가냐고 묻는 내 앞으로 어느새 바짝 다가와 선 그가, 그의 어깨 밖에 오지않는 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도 같은 붉은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그가 뱉은 숨결이 내 머리에 와닿을 만큼 근접한 거리에서 그 모습을 본 내가 심히 인상을 구기며 불안한 눈빛으로 '이게 뭐하는 짓이죠?' 하는 물음을 던지자, 그가 내 귓가에 대고 쿡쿡하는 숨을 불어넣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선불...어때?"
선불? 도대체 뭘...
"무슨 마, 으읍-!!!!"
순식간의 일이었다.
선불이라니 그게 무슨 타작날에 콩까먹는 소리냐고 묻기 위해 막 뗀 나의 입술은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그의 입술에 의해 삼켜지고 말았다. 너무 놀라 사고가 정지된 내 입술을 마치 처음 맛보는 음식인양 음미하더니, 이윽고는 굳어버린 날 대신하여 그의 혀로 내 입을 벌려 입안을 유린한다. 처음 느껴보는 그 말캉하고 기분나쁜 움직임에, 나는 머리 끝에서 발끝으로 달리는 소름을 느끼며 그를 밀쳐내기 위해 바둥거렸다.
"흡...!!!"
그러나, 내 머리카락 속에 그가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 고정시킨 탓에 나는 숨과 함께 차오르는 당황스러움에 몸서리 쳐야만했다.
"너 이새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굳어버린것은 단연 나만이 아니었는지, 황금빛 동공이 무서우리만큼 수축해버린 시얀이 간신히 고개를 떼어낸 사자란의 멱살을 단번에 쥐어잡고는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윽...!"
그 반동이 얼마나 셌냐하면 사자란의 손에 붙들려 있던 나조차 '아악!!' 소리를 내며 함께 바닥을 굴러야 했으니, 말 다했다.
사자란이 나에게서 떨어진 후에도 분에 못이겼는지 난생 처음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그에게 휘두르는 시얀.
"죽고 싶냐."
"크크크큭...분한가?"
"개자식...!"
어느덧 촉촉해진 입술로 시얀을 비웃으며 터집 입가에서 흐르는 입술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내는 사자란.
그를 향해 평소에는 입에도 잘 안담는 욕설을 뱉어내며 시얀이 매섭게 으르렁거렸다.
"이 정도에 흥분해서 쓰나."
"더 이상 율리안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마. 하나하나 분질러서 씹어삼켜버리고 싶으니까."
"혈기 왕성하군. 내가 뭐랬어?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충고 했지. 쿡."
"함부로 내 것에 손대지 마라, 사자란. 그게 누가 되었건 용서 못한다."
"네 것? 어째서 그녀가 네것이지? 내 생각엔 조금 있으면 마법탑 소유가 될 것 같은데? 쿠쿠쿡."
"닥 쳐."
사자란의 시얀의 무능력 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시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얀이 뿜어대는 짙은 살기가 가뜩이나 하늘에 구멍이 뚫려 통풍이 잘되는 돔 안을 잔뜩 서늘한 기운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쿡, 농담을 모르는 후배는 귀엽지 않다고."
"......."
"이제 좀 비키지? 곧 외부인이 들이닥칠텐데. 혹시 이 일이 마법탑 귀에 들어가길 바라는건 아니겠지?"
"......."
"아아~ 이거 어디 후배님의 찢어발길듯한 눈빛이 무서워서 도와주겠나."
웃음기가 싹 가신 시얀과는 달리 여전히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가지 않는 사자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 일은 옷을 탁탁 털어내며 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그런 시선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얀의 꽉 움켜쥔 주먹과 그에 가세하여 목을 베어버릴 기세인 노아의 살기에 '즐거웠다, 신입들.' 하고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선불, 잘 받았다. 거래 성립이군. 이번일은 내가 해결하지."
사자란의 말에 나는 이 작자가 또 나를 농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껏 그를 노려보며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곧 마법 연사장으로 황급히 뛰어들어오는 교수님과 어느새 영업용 미소를 걸고 교수님에게로 다가가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서 그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이게 무슨일인가!!! 도대체 누가...!"
"아, 교수님. 오셨군요. 소란스럽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마법 하나를 실험하다가 이리 되었지 뭡니까."
"아니, 자,자넨가? 허허. 이거...허기야, 이 벽을 부술만한 능력을 가진건 우리 학교에 자네밖에 없긴하지."
"모든 배상은 저희 가문측에서 할것이니, 큰 소동으로 번지지 않도록 해주시지요."
"아, 그,그러도록 하게...허허허, 별일 아니었구만. 그럼 난 이만 돌아가겠네. 뒷처리 부탁하네."
연사장의 처참한 외관에 굉장히 놀란 얼굴로 이게 무슨일인가 하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오셨던 교수님은 사자란의 몇마디에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별말 없이 그에게 뒷처리를 부탁하며 등을 돌려 나가려는 교수님을 사자란이 잠시 불러세워 귓가에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 말을 다 들은 교수님은 사색이 되어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빠르게 닦아내고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겁지겁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자란의 몇마디로 순식간에 사건이 일단락 지어지자, 우리는 영문 모를 찝찝함 가득한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사자란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음번에 내가 도와줄 일이 또 생겼으면 좋겠군."
그렇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며 피가 고인 입술을 자신의 혀로 스윽 핥는 사자란이었고,
그것이 마치 시얀에게로의 도전장만 같아 못내 못마땅한 것인지 손톱이 박혀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꾸욱 움켜쥐는 시얀이었다.
첫댓글 시얀 더 때려!!!
ㅋㅋㅋㅋㅋㅋㅋ사자란...독자님들께 몰매맞겠네요 ㅋㅅㅋ
와우 사자란ㅌㅋㅋㅋㅋㅋㅋㅋㅋ기회를 놓치지않고 낚아채는구만!!!
기회주의자입니당 +ㅅ+♥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하하; 갑작스레 먼치킨 등극스러운 전개입니다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