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지방은 산부인과 없어 ‘新원정출산’… 어쩌다 ‘출산난민’까지
입력 2023-03-15 00:00업데이트 2023-03-15 08:59
동아DB
저출산 여파로 산부인과가 줄줄이 폐업함에 따라 비수도권 지역의 분만 인프라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분만실은 1176개로 2년간 152개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분만 취약 지역도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42%인 105곳으로 급증했다. 분만 취약지란 차로 1시간 내에 갈 수 있는 분만실이 없어 응급 대응이 어려운 곳을 말한다.
분만 취약지역 임신부들은 다른 지역 산부인과로 ‘원정검진’을 다니고, 출산일이 다가오면 친정집 근처 산부인과나 산후조리가 가능한 타 지역 산부인과로 ‘원정출산’ 길에 오른다. 강원도는 화천 인제 양구 등 5개 취약지역 임신부들의 원정출산을 돕기 위해 강원대병원 옆에 출산 3주 전부터 머물 수 있는 아파트를 마련했다. 충북도는 보은 옥천 괴산 등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지역에서 임신부 전용 구급차 6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임신부들은 구급차를 타고 1시간 넘게 걸리는 타 지역 산부인과로 원정검진을 다닌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구급차 안에는 분만키트도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원정검진과 원정출산을 경험한 ‘출산난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건 상상도 못 하겠다”고 한다. 분만 수요가 줄면 산부인과가 폐업하고, 산부인과가 없어 출산율이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큰 것이다. 분만 취약지역 유산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전국 시도와 시군구의 출산 정책 예산이 1조809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27% 늘었는데 이 중 70%가 출산지원금 같은, 개인에게 직접 주는 예산이었다. 일시적인 현금성 지원보다는 분만과 육아 인프라에 투자해야 출산율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산부인과 폐업의 원인 중에는 의료 인력 부족도 있다. 분만의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넘게 대기해야 하는 일이 잦은 데다 의료소송 위험이 커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의료진이 부족해 분만 시기를 정할 수 있는 제왕절개 분만만 하는 곳도 늘고 있다. 분만 취약지역 산부인과 지원을 늘리는 한편 과실이 없는데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료진의 우려를 해소할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