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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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의 고종인산행렬은 왜 종로를 지나지 않았을까?
국장노순결정(國葬路順決定)
국장행렬은 황금정통을 바로 내려가기로 결정됨
<매일신보> 1919년 2월 9일자
국장의 행렬이 통과할 노순은 황금정통을 택할는지 종로통을 택할는지 의론이 두 갈래로 있었더니 작 8일에 황금정통으로 통과하기로 결정되었더라. 원래 국장의 행렬오 말하면 작보에 보도한 바와 같이 경성 중앙의 대로인 종로통으로 가는 것이 좋을 줄로 발론이 있었으나 종로통으로 갈 것 같으면 장의장까지 이르기에 시간과 힘이 더 들 뿐더러 전신줄을 많이 끊지 아니하면 통과할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폐단을 덜기 위하여 대한문에 발인하여 황금정길을 지내여서 황금정통 육정목 왼편으로 꺾기여서 훈련원에 도착하기로 결정되었더라.
(정리 : 2006.4.30,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
[추가]
▲ <매일신보> 1919년 3월 2일자에 수록된 고종인산행렬도이다. 왼쪽 끝이 덕수궁이고, 오른쪽 끝이 훈련원 장제식장이다. 훈련원 오른쪽으로는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새길이 뚫렸으니, 곧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앞길이다.
국장식장(國葬式場)의 내정(內定)
훈련원이 가장 유력하다
<매일신보> 1919년 2월 2일자
국장의례식을 거핼하옵실 장제장은 당초에 홍릉이나 청량리 못 미쳐 왼편의 넓은 터전이나 훈련원 마당의 세 곳을 후보지로 정하여 여러 가지로 조사한 결과 아직도 완정이 되지 못하였으나 아마 훈련원으로 작정되기 쉬울 듯한데 그 조사에 종사하던 모시의 말을 들은즉 홍릉에는 침전과 기타 재실의 설비도 있어 거기를 사용하시게 되면 매우 편리하겠으며 동구가 길고 뒤로 빠지는 길이 없어 행렬이 한번 들어갔다는 다시 돌아 나오기 극히 곤란한 결점이 있고 또 경성에서 너무 거리가 멀어서 여러 가지 불편이 있으며 청량리 못 미쳐의 위치로 말하여도 역시 경성에서 초원한 결점이 있는 것이 유감이라. 이번 국장식에는 상주 전하 이하 참렬제원이 식장까지는 전부 걸어갈 터이오, 기 외에 내지에서 황족 전하도 건너오시리라는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국장의 성대한 의식을 아무쪼록 일반 시민으로 하여금 다수히 배관하는 편의를 도모하여 줄 필요가 있으므로 어느 편으로 보든지 경성에서 너무 멀고 또 전차로 말하여도 외출밖에 없는 청량리 부근은 불편한 점이 많고 결국 훈련원이 제일 적당한 줄로 당국에서는 선택하였으니 훈련원 마당을 식장으로 정하면 행렬이 훈련원에서 황금정 사정목으로 다시 돌아오지 아니치 못한 불편이 있으므로 훈련원에서 동대문밖으로 바로 길을 내여 뚫을 계획을 세우고 실지로 조사한 결과 큰 개천에 튼튼한 다리를 놓을 필요도 있어 치도비에만 일만 삼사천 원이 드는 고로 이렇게 많은 비용를 써가면서 새길을 만드는데 대하여는 다시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으므로 아직 완정이 되지 못하였으나 아직까지는 훈련원이 제일 위에 있는 후보지인 바 수일 중에 완정하여 즉시 역사를 시작하게 되리라더라.
▲ 왼쪽은 <매일신보> 1919년 3월 3일자에 수록된 '덕수궁부근요도'이며, 오른쪽은 <매일신보> 1919년 2월 27일자에 수록된 '국장 제장과 그 부근' 약도이다.
첫댓글 처음보는 사진입니다. 좋은자료 감사해요. 더위조심 하시구요~~
스크랩해도 되지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관람하고 좋은 자료라 생각됩니다. 8월 19일 까지 라는데 지킴이라면 한번 보는 것이 어떨지요?? 더욱이 상영하는 DVD가 좋았는데 구입이 불가능이라 연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