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홀리네이션스선교회 김상숙 권사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
2020.12.25.(금) 저녁 오륜교회 금요기도회에서는 홀리네이션스선교회 김상숙 권사님이 강사로 말씀을 증거해 주셨다. 2020 다니엘기도회 강사로도 섬겨주셨던 권사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고 있는 현장의 역사를 증언해 주셨다. 감사^^
시편 119편
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주의 말씀은 나의 즐거움, 내 길의 빛입니다
https://www.oryun.org/tv/?menu=59&mode=view&tid=52653#url
[역경의 열매] 김상숙 <1> 조건 없이 치료 도와… 30명 본국 돌아가 교회 세워
‘하나님이 보내신 영혼’이라 생각… 선교회 앞엔 아픈 외국인들 줄서
김상숙 권사(첫줄 오른쪽 세번 째)가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직원,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 캐나다 의료 선교사인 셔우드 홀 박사 묘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제공
‘모두 조건 없이 전액을 돕는다.’
2000년 홀리네이션스선교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고수하는 원칙이자 행동 지침이다. 돌이켜보면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 환자들을 ‘모두’ ‘조건 없이’ ‘전액’ 원칙으로 돕기로 한 것은 성령이 주신 특별한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주셨기에 기적과 은혜가 넘치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 만약 교회에 나온 사람이나 교인 등록자에 한해 치료비 일부만 돕고 수술비나 입원비는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겪을 축복의 기회는 놓쳐버렸을 것이다.
사역 초기 중환자들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온 몸에 고름이 흐르는 희귀병에 걸린 외국인, 간농양 환자, 손가락이 잘린 환자, 뇌출혈 환자, 폐결핵 환자 등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선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병원에 입원비 대신 우리 선교회의 전화번호를 주고 병원으로부터 그의 입원비를 대신 낼지를 전화로 물어 온 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도 우리는 그 환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영혼으로 받아들였고 기꺼이 치료비를 내주었다.
소문은 빨랐다. 우리의 도움을 받은 외국인들은 아픈 동료들에게 선교회의 존재를 알렸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국으로 퍼졌고, 선교회 문 앞에는 아픈 외국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 환자라면 누구든 만났고 어디든 찾아갔다.
조지 뮬러는 동역자를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 저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좋은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별해 주셔서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십시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렇게 기도했다.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였던 사람이 사랑의 통로가 되기를 원해 선교사가 되어 홍콩에서부터 섬긴 지 30년이 지났다. 우리가 돕는 대상은 모두 엄청난 물질과 인력을 필요로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한마음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섬겼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행진했다. 우리는 이 사역의 장소를 ‘행복동’이라 불렀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신실했고 사실이었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마 28:20)을 구체적으로 채우셨다. 그동안 행복동에서 필요로 했던 재정은 50억원이 넘는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도 재정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셨고 10원의 빚도 지지 않게 해결해주셨다. 사람에게 구하지 않아도 채우셨다.
행복동을 통해 수백 명의 외국인들이 입원 수술을 받았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세례를 받았다. 30명의 외국인 신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몽골과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영국 등지에서 또 다른 열매를 맺고 있다.
현재 홀리네이션스선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50명 정도다. 교사와 설교자, 찬양인도자, 의료진, 식당 봉사자, 차량봉사자, 통역 담당자, 미용 봉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섬긴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정리=신상목 기자
약력=△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 졸업 △85년 홍콩에서 선교활동 △95년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어 성경공부 교재 번역 등 선교활동 △2000년 경기도 일산에 홀리네이션스선교회 설립 △고양 삼위교회 권사 △저서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 '천국의 풍경이 되어주세요'
원본 링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91669
[역경의 열매] 김상숙 <7> 외국인 근로자들에 숙식 제공할 쉼터 마련
이불 등 집기 채워지는 역사 경험… 실직 형제 등 많을 땐 60여명 거주
외국인들이 홀리네이션스선교회가 마련한 야유회에 참석해 식사를 하고 있다.
나는 주부에 불과하지만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갖고 있다. 주님만 믿고 그분의 지시만 따라가면 모든 일은 그분이 이뤄주신다는 것이다. 9명의 외국인 취직을 위해서도 그저 “하나님 어쩌면 좋아요” 하며 불평 반, 탄원 반으로 기도를 드렸던 게 전부였다.
선교회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예배는 선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삼위교회에서 드릴 수 있지만 오갈 곳 없는 외국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쉼터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기도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쉼터 같은 시설이 왜 필요하냐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홍콩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자매들을 섬기며,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 불법 체류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들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임을 깨닫게 됐다. 이 때문에 만약 내게 그들을 도울 기회가 주어진다면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쉼터를 준비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간구보다 넘치게 베푸셨다. 장소 마련은 재정적 문제를 떠나 매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깨끗한 아파트형 건물 한곳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마침 새로 지어 분양하려는 곳을 발견하고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양이 자꾸 미뤄졌다. 상황이 급해서 하루빨리 장소를 정하려 했는데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만약 그때 거기에 쉼터를 세웠다면 옆에 사는 한국인들과의 갈등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쉼터 공간의 최우선 조건은 외국인들이 예배를 마친 뒤 의료 서비스를 받기 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배장소와 쉼터의 거리도 짧아 이동이 편리해야 했다.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곳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편이 나았다. 결국 주님은 현재 삼위교회 바로 옆 건물을 마련해 주셨다.
지금 쉼터에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많을 때는 60여명까지 될 때도 있다. 이곳을 찾는 누구든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쉼터는 외국인들에게 내 집 같은 곳이다.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가 쉴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은 형제들이 찾아와 쉬기도 한다. 쉼터가 있었기에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쉼터에선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채우시는 역사가 일어난다. 한번은 외국인들이 많이 몰려와 이부자리가 모자랐다. 그래서 시장에 가려고 하자 갑자기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거기 덮는 것 좀 필요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이부자리를 사려던 참이라고 하자 “당장 오늘 갖다 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은 예배시간에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오케스트라 책임자는 접이식 의자 50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전화를 했다. “접이식 의자는 몇 개 없어요. 권사님도 잘 아시잖아요.…잠깐만요.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네요.”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바로 전 주일에 교회에 등록한 성도 한 분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접이식 의자를 사오셨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필요한 수량의 접이식 의자는 모두 채워졌고 연주회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 의자는 지금도 교회 식당에서 잘 사용하고 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상숙 <11> 신학생 장학금 후원… 2009년부터 결실
학비·기숙사비·매달 생활비 지급, 학생들 선교사로 귀국해 교회 세워
러시아 카잔교회 성도들이 2012년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교회는 홀리네이션스선교회가 지원한 올가 전도사가 세웠다.
“어떡하지요?” 2009년 초 선교 헌금에 동참하던 몇 분이 연락을 해왔다. 불경기가 심해 더 이상 헌금을 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본래 우리의 공급자는 하나님 한 분이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해 결산을 해보니 모두 8억850만원이었다. 3억7700만원이었던 전년도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 침체된 경기 탓에 헌금하는 회원들은 줄었지만 헌금액은 훨씬 증가한 것이다. 2008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중국, 캄보디아, 러시아 등까지 우리가 지원하는 신학생이 4명이나 더 늘었던 참이었다.
선교회가 신학생을 후원한 것은 러시아에서 온 올가 자매 때부터였다. 지금은 전도사가 된 올가는 2001년 초 우리 선교회에 처음 왔고 스테반 전도사는 2002년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선교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우리가 초청한 학생은 아니었다. 처음엔 교통비를 조금씩 지원했다. 그러다 올가 전도사를 전적으로 지원하게 됐고 스테반 전도사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기에 생활비만 댔다.
선교회가 본격적으로 장학 사역을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였다. 첫 번째 학생은 앞서 언급했던 중국동포 김영훈 전도사다. 장학 사역을 시작하기 전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서 선교사들의 희생을 되새긴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장학금을 지원해 10명 이상의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싶다’고 서원했다. 이후 김 전도사를 시작으로 하나님은 몽골 캄보디아 학생들을 줄줄이 보내주셨다. 불과 2년 만에 서원했던 숫자 10명을 넘어 12명이나 지원하게 됐다. 지금은 30명이 넘었다.
선교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학비 전액과 기숙사비, 그리고 매월 생활비 50만원씩을 지급한다. 1년에 한 번씩 고국에 갈 수 있는 왕복 항공료도 지원한다. 졸업하면 노트북 컴퓨터를 선물로 주고 졸업 후에도 계속 지원한다. 2009년부터는 이들 학생이 선교사가 돼 고국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러시아와 몽골에 각 5000만원씩을 후원해 교회를 세웠다. 나는 계산에 익숙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선교회에서 지출한 장학금이 지금껏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넉넉히 채워주셨다는 사실뿐이다.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보고 큰 교회에 다니는 어느 의사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을 다른 교회에 연결시켜 주면 권사님이 그처럼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수없이 몰려드는 외국인 환자들을 계속 받을 때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권사님, 이렇게 오는 환자를 다 받다가는 권사님이 먼저 망가지겠어요.”
그때마다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여전히 풍성하게 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눈으로 확인하며 이 사역을 기쁘게 감당할 뿐이다. 우리 선교회는 모금을 하러 다니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넉넉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고수해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정말 다급해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여호수아 3장을 묵상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한 믿음을 갖고 한 걸음씩 내딛었고 그 믿음으로 물이 온전히 끊어진 요단의 마른 땅을 건널 수 있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빛과 소금-노희경] 디모데와 요한의 ‘옥중편지’
“사랑하는 울 엄마, 또다시 새로운 형제들과 지내게 됐습니다. 110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있는 노역장으로 출역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새로운 곳에 예비하셨을 섬김과 도전을 기대하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며칠 전 받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일부다. 홀리네이션스선교회 대표 김상숙 권사는 매일 오전 함께 나누면 좋을 만한 글을 보내주는데, 이 메시지 제목이 ‘디모데와 요한의 편지’다. ‘옥중’ 두 아들이 써 보낸 손편지를 정리해 보내준 것이다.
지난 2월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두 아들을 면회하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오전 9시 청주교도소에서 디모데를, 오후 2시 광주교도소에서 요한을 접견했다. 김 권사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고 함께 찬양을 불렀다. 두 아들은 성경말씀을 암송했다. 방음 유리를 사이에 둔 15분의 짧은 만남은 은혜로 드린 예배였다. 디모데와 요한은 김 권사의 친아들이 아니다. 복음으로 맺어졌다. 그들을 아들 삼으면서 ‘디모데’ ‘요한’이란 이름을 선물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두 아들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잘 성장했고 옥중에서 예수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날 만남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치 않다. 김 권사에게 보낸 디모데의 첫 편지엔 ‘사회에서 나는 암적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허접쓰레기로 취급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랬던 그가 감방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독려한다. 아픈 무기수들에게 약을 가져다주고, 설거지도 도맡아 한다. 다른 아들 요한은 종일 목공일을 하고 번 돈을 모아 2년째 설날이면 200만원을 김 권사에게 보낸다. 아들의 돈으로 어머니는 어려운 외국인들을 돌봤다. 허접쓰레기일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명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두 아들에게서 봤다. ‘불안’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불안의 첫 번째 원인으로 사랑의 결핍을 꼽았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사랑만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선풍기 고장으로 하루 종일 노역장 안에서 찜통더위의 위력을 경험했습니다. 저녁때쯤 고쳐진 선풍기가 ‘씽씽’ 돌아가는데, 얼마나 시원하고 고맙던지요. 더위에 지쳐 있던 동료들과 제 얼굴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두 달 전쯤 문틈에 손가락이 끼는 바람에 손톱이 반쯤 까맣게 변색됐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통증에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손톱이 거의 빠져 나와 손톱 깎기로 잘 다듬어 편해졌지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사용하게 돼 감사했습니다.”
찜통 날씨에, 그것도 어두운 ‘담 안’에서 웃고 감사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 해답 역시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두 아들에게서 배웠다. “엄마는 기쁜 일에는 당연히 감사하고, 일상에선 받은 복을 세며 감사하고, 나쁜 일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하지 못한 것은 그 가르침을 그때그때만 깨달았고 어려운 중에는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감사는 새 사람의 증표이다. 감사함으로 앞으로의 상황도 바뀔 수 있다. 안성우 로고스교회 목사는 책 ‘최고의 질문’에서 감사가 사라진 이들에게 ‘리프레이밍’을 처방해주고 싶다고 했다. 프레임을 바꿔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인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새벽기도에 못 나갔다면 하나님이 잠을 주셨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면 그 덕에 운동했다, 지하철이 늦게 와 짜증날 땐 회의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게 리프레이밍이다.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은 바람은 불지 않는다. 짜증나는 여름이지만 한철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있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여름이 가고 있으니 곧 시원한 가을이 올 것이다. 상황을 리프레이밍해 보니 조금은 찜통더위를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노희경 종교2부장 hkroh@kmib.co.kr
[기독출판] 외국인 노동자에 섬김으로 복음 전하며 그들의 ‘마마’가 되기까지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김상숙/생명의 말씀사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 질병 등으로 고통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마 킴’으로 불리는 저자의 생생한 사역이야기이다.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를 이끌고 있는 저자 김상숙 권사는 책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신다. 이 사실을 알고 그분을 신뢰하면 기적은 반드시 나타난다”고 말한다.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는 저자의 신앙모델이다. 그녀는 조지 뮬러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아뢴다. 물질을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는다.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신 주님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성경 1독을 하고 성경을 읽은 시간만큼 기도하는 저자는 먼저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날마다 풍성하게 공급하실 것이다. 재정이 필요하면 재정을,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면 겸손과 온유로 무장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이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그 기적을 매일매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 저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신과의 싸움 즉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우선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첫 순간에는 마치 숨을 죽이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의 긴장된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어느새 오늘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분명 내일도 신선한 만나를 주실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저자의 삶은 1985년, 주재원 남편을 따라 홍콩에서 생활하면서부터다. 주말에 갈 곳이 없어 홍콩의 스퀘어 파크를 가득 메운 필리핀 가정부들을 보며 주님이 홍콩에 오시면 이곳을 찾으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후 선교사들을 위한 숙소, 성경공부 기도모임과 병원선교 등을 위한 장소로 집을 개방했다. 남편이 말레이시아로 임지를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3년간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면서 노동자들을 섬겼고 성경공부 교재 3권을 말레이시아어로 번역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선교회를 시작해 수백 명의 외국인 환자들의 입원과 수술을 돕고 있다.
책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저자와 동역자들의 놀라운 일상을 담고 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지현 기자
*다니엘기도회 11.9.(월) https://youtu.be/Eu-OgC9g_zg
김상숙 권사/ 성경 말씀에 근거한 기도(요한복음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