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 김보람
모자를 잃은 사람의 모자가 궁금해
어두운 방 다음에 더 깊고 어두운 방
진실의 불이 켜지면
전부를 잃고야 말지
수북함과 무성함이 이 공간의 이름인걸
경직된 빗금이 머리로 쏟아져 내린다
덮어도 가려지는 게
많지는 않았는데
여백의 뜻은 처음으로 반복하라는 거야
어서어서 비우렴 얘야
행복해서 울 거야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빛날 순 없어
ㅡ 《시조시학》 2024, 가을호
********************************************************************************************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고 합니다
세속의 행복이 부귀영화에 달려있다고 해서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겠지만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 비상식적으로 위법하지 않다면 팔 벌려 막아서지 않아도 됩니다
목표한 최대치에 이르지 못했을 지라도
도중에 만족할 수 있는 최저치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됩니다
인생 전체가 행복하고 불행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늘 여백을 간직하면서 공간을 비우고 채워가면 될 일입니다
모두를 얻은 것같은 성취의 끝자락이 빗금투성이라면 처음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전부를 잃은 게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