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리따라] 심청이가 된 내 연인 - 천년학 4. -
결국 칠순의 면장부친의 소실이 된 송화.
그 옛날 아버지와 함께 했던 장면이 똑같이 연출된다.
어린 송화가 아버지 품에 안겨 이부자리에서 함께 소리를 하던 장면.
이 산으로 가면 쑥꾹 쑥꾹.
저산으로 가면 쑥쑤꾹 쑥꾹.
진정으로 기쁨에 겨워 다정하게 부르던 노래.
이번엔 면장부친의 품에 안겨, 그 옛날 아버지와 하던 소리를 함께 한다.
아버지의 심사는 어땠을지 모르나, 송화는 아버지께 하는 효심으로
면장부친의 저승길 입구까지 친구를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면장부친, 그 노인네 죽은 뒤에 갖은 보석을 다 놔두고
동호가 준 총알탄피 반지를 끼고 맨몸으로 훌쩍 나설리가 없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는 자신의 정리를 물질로 표현하고픈 것은 같은지,
이번엔 면장 부친이 실은 값을 다 치뤄놓고선
반지 셋중에 하나를 고르라니 송화는 가장 소박한 것을 겨우 집는다.
(눈이 멀어도 알 수 있나 부다)
여기에서 부르는 노래는
평시조
천세를 누리소서, 만세를 누리소서.... 그런 노래다.
이때가 송화에겐 겉으로 누리는 최고의 호사와 점자 공부도 하게 된다.
그러나 동호는 가라오케의 오브리 일인밴드처럼,
방석집에서 북을 치며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에 찌들어, 그래도 아들에게는 그래도 잘해주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게 마눌에게 정 없이,
자식에게만 한다는 것은 부작용만 낳게 되는 게 뻔한데...
매향리 별채에서 송화의 소리를 들으며 죽고 싶다고,
집안 식구들에게 유언을 한 면장 부친은,
매화가 분분히 날리는 정자 같은 자신의 별채에서
송화의 아름다운 자태와 소리를 들으며 자는 듯 행복하게 죽었다.
복도 많은 영감님일쎄.
미색만 밝힌 것이 아니라 소릿꾼을 알아보는 귀는 있으니
반 죄는 면했도다...
78년 제주, 애월.
무당이 살던 집에 세들어 사는 송화.
주막에서 이어도 타령을 부르며, 북고수도 없이
자기 자신의 장구 장단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때 동호는 송화의 탄피 반지를 보게 되고
송화에게 집을 지어줄 궁리를 한다.
판소리는 접은겨?
웨 이어도 타령이요?
그래. 고향이라고 왔다가 하는 수 없이 그러고 있다...
중동에 돈 벌러 간다니, 그 뜨거운 모래폭풍 속에
고생이 아니라 죽을 것 같으니 안 가면 안 되냐고 하지만
동호는 이젠 송화를 봤으니 간단다.
제주도에서 총알이 콩을 볶던 시절에,
어린 송화는 어른신 등에 업혀 나온 기억 밖에 없고
나중에 우익 토벌대 앞에서 땅을 버릴 수 없어 버티다가,
총 맞아 죽은 부모님 이야기를 전해 듣기만 한,
송화는 행여 자신의 삶을 거꾸로 거슬러 가보는 것일까.
하늘과 땅이 편하게 어울리는 용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광활한 갈대 숲을 거니니,
자연스레 송화를 들어올리고 안아 내리니 동호의 한이 반은 내렸을까?
(덕분에 송화는 내려온지 일년만에 고향을 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벌판에 앉아 단둘이 소리를 하는데,
역시 춘향가 중에
천리라도 만리라도...
동호야, 네 은제 가고 옴을 내 뜻대로 하였느냐?
가려거든 갈테마.
오려거든 올테마.
네 한까지 나는 소리로 자아내어 기다림도 없는
기다림을 할테마...
이런 마음이었을까?
감독 임권택
아버지 유봉
동호(조재현 분)
송화(오정해 분)
단심(오승은 분)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 분)
면장부친 (장민호 분)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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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글마당
[길따라 소리따라] 심청이가 된 내 연인 - 천년학 4. -
최장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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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0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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