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강원도 어느 풀밭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가 휘저어 놓은 공기의 요동으로 인하여 그 해 가을 뉴욕에 태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소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부른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떤가? 옛날 어떤 두 나라가 있었는데, 그 두 나라가 전쟁을 하여 그 중 한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 나라가 망한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그 원인은 단지 어느 한 말의 편자(말이 신는 신)에 있는 못 하나가 잘못된 데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얘기인즉, 두 나라의 전력은 매우 비슷하였는데, 전쟁에서 어느 소대장이 탄 말의 편자가 벗겨지는 바람에 그 말이 넘어지고 이로 인하여 그 소대장이 죽었다. 그러니 그 소대의 전력이 약화되고, 소대의 전력이 약화되니 중대의 전력이 약화되고, 중대의 전력이 약화되니 대대의 전력이 약화되고, 이렇게 하여 그 나라의 전력이 적군에 비하여 약해져서 결국 전쟁에 지고, 이로 인하여 한 나라가 망해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가상적인 것이긴 하다. 또한, 그 나라가 망한 원인을 그 편자의 못에만 돌리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를테면, 소대장이 죽었을 때 이에 대처하는 전술을 준비하지 못한 것도 패인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편자가 튼튼하였다면 전세는 달라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못 하나가 잘못된 것은 정말 하찮고 작은 일이다. 그런데, 그 작은 원인으로 인한 나라의 멸망은 어마어마하게 큰 일이다. 작은 원인이 큰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작은 자극이 큰 자극에 비하여 작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뉴턴적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뉴턴은 물체의 질량이 같다면 큰 힘이 작용할수록 운동의 변화가 크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물체에 여러 작용이 있을 때, 대표적으로 큰 작용만 고려하고 다른 작용은 무시해도 그 나타나는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쇠구슬이 떨어지는 데에는 중력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분자들에 의한 저항도 작용한다. 그러나, 그 저항은 중력에 비하여 미미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중력만 고려하여 낙하의 문제를 푼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 이상화된 상태를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은 작용은 작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뉴턴의 철학은 작용과 효과간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작을 때이거나 작용과 효과의 관계가 선형적인 관계에 있을 경우에 국한하여 성립한다. 작용이 반복하여 가해지는 경우 그 효과는 엄청나게 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네를 탈 때, 작은 굴림을 반복함으로써 큰 흔들림이 나타나는 현상이나 작은 빗방울들의 작용으로 평원이 꼴짜기로 변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지각을 변화시키는 정도는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그 미약한 작용이 수천만년 계속됨으로써 그랜드캐년과 같은 깊은 꼴짜기도 생기고 금강산과 같은 절경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의 요인이 물로된 빗방울이 아니고 다른 종류의 액체로된 빗방울이었다면 지구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액체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 한 방울 한 방울이 지각에 가하는 작용은 너무나 비슷하여 구별이 불가능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도 수천만년 반복이 되면 엄청나게 큰 차이를 가져와서 지각의 모습은 지금과는 아주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같은 논의가 이 우주의 모습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천지창조의 순간에 초기 조건이 아주아주 조금만 달랐다고 하여도 이 우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태초의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지구와 같은 행성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태초의 조건이 조금만 달랐어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천지창조가 다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지금과 같은 우주가 다시 창조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지금과 같은 우주의 탄생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작은 변화가 큰 효과를 가져오는 예는 한 인간이 인생을 살아 가는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성장하여 어떤 특정한 인물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어떤 계기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계기는 매우 하찮은 경우가 많다. 담임 선생님께 어떤 꾸중을 들었다거나 칭찬을 들었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와 유사한 매우 하찮은 어떤 일이 계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한 계기가 있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갑자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수십년이 지난 다음에는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백두산 정상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찮은 이유로 약간 동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약간 서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하찮은 이유로 인해서 동해 바다로 가느냐, 서해 바다로 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의 작은 행동들이 모두 심각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초기 조건의 작은 변화가 큰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그 조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비 한 마리가 지구의 기후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비 뿐인가? 내가 내쉬는 숨결에도 기후가 변할 것이다.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에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어떤 한 조건의 변화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작은 변화가 먼 훗날 이 우주의 상태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나비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효과도 매우 크다. 그러나, 그 효과의 구체적인 모습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뉴턴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 가능하지 않다. 자연 과학은 지금까지 예측 가능성이라는 뉴턴적인 환상 속에서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뉴턴적인 생각으로는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때인 것 같다.